일상다반사/아무말 대잔치

쓰잘머리 없는 수다 8. 나- 가래떡을 썰다.

도희(dh) 2009. 10. 23. 06:52


0.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오랫 만에 가래떡을 뽑아오셨다. 그리고, 서울살이 열심히 하는 동생에게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것들과 함께 바리바리 싸서 보내더라. 예전부터 쓰잘데기 없는 질투심이 하늘을 찌르는 나는 내꼬야~ 보내지 맛 이러면서 미운 7살 흉내를 내고있었다. 그리고, 동생에 대한 장난기 섞인 질투도 한 일 년정도 하니 씨도 안먹힌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있다. 앞으론 잊을 만하면 해야겠다. 더불어, 동생이 그럼 너도 나와서 살아 라고 결정타를 박아주셨다. 허어, 이 집이 내 집인데 내가 어딜가냐- 라고 째릿하긴 했지만, 엄마는 그럼 내가 나가서 따로 살까? 라며 엄마없인 밥도 잘 안챙겨먹다가 쫄쫄 굶어서 죽을 위험이 아주 큰, 겔름신과 함께 귀차니즘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딸내미의 속을 살짝 뒤집어 주신다. (집을 나갈까 어쩌구하는 이야기는 좀 황당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고있는데, 부끄러워서 말할 순 없다. 이 대화의 주요내용이 밝혀지면........... 자알~들 논다- 라고 할 듯 해서...;;;)


1. 깐족의 시작.

미운 7살스러운 깐족거리는 질투는 씨도 안먹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간간히 심심할 때마다 써먹는 깐족거림이 시작되었다. 마르지도 않은 떡을 가르키며, 내가 떡썰어줄게- 줘봐줘봐- 이러고 있었다. 가래떡은 말이지, 하루 정도 살포시 말려주고나서 썰어야 이쁘게 썰린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기에, 엄마가 괜히 귀찮게 들러붙어 장난질한다고 장난스런 짜증을 낼 것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와 엄마는 남들이 보기엔 참 이해안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이루어진 절친같은 사이라서 서로에게 깐족거리며 장난스레 속을 긁곤한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2. 깐족의 결말.

언제나처럼 블로그를 열어놓고 늦기 전에 포스팅 해야하는데 겔름신이 '하지마. 그게 너한데 밥을 주냐 떡을 주냐'라며 자꾸 귓속말을 해대서, '그렇지, 떡도 밥도 안주지, 이건' 이러면서 모니터만 멀뚱히 바라보고있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떡을 썰어 놓아라 농담인가 싶어 다다다=3 달려나갔더니, 농담이 아니라고 한다. 니가 그리 떡을 썰고 싶었으면 그래, 이번엔 니가 썰어 보아라, 그렇게 말하고 나가시더라. 이건 완전 - 엄마가 아니라 웬수!!!!! 이러고 멍때리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렇다. 나는 그딴 떡 따위- 썰어본 적이 없다. 엄마 골려주려고 깐족거린 것 뿐이었다. 이렇게 깐족거려봤자 원래의 우리 엄마는 시키지 않으니까. 그런데 요즘 엄마가 조금 달라졌다. 나는, 그 것을 잊고있었다. 그러고보니, 고2 학교축째 때 축제기간 내내 죽어라고 김밥만 썰어 본 기억은 있다. 그래서 나는, 김밥은 정말 옆구리 안터지게 잘썬다. 그런데, 떡을 썰어본 적 없다. 하지만, 나는 양파와 김치를 꽤나 잘 써니까(?) 떡- 그까짓 거 싶더라. 그리고 잊어버렸다. 잊어버리면 장땡이니까-.



3. 기억이 나버렸다.


갑자기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것이 있어서 급히- 기본적인 준비를 마치고 미친 척 써내리자 했는데, 첫 줄부터 막혀버렸다. 그래서, 막힌 부분을 풀어내기 위해서 주구장창 그와 관련된 영상과 OST를 들으며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오늘 할 일이 있었던가? 싶더라. 그리고, 떡을 썰어라- 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일단,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잊어버렸으면 아~ 어뜨케~~~~ 나 까맣게 잊고있었어. 엄마 얼굴보니까 갑자기 생각났어~~~ 어뜨카지~~~ㅠ.ㅠ**** 이러고 대충 넘기면 되는데, 그만 기억이 나버렸다. 내가 놀리려고 구라삼아하는 끝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은 얼굴 색 하나 안변하고 뻔뻔하게 잘하는데, 진실은폐를 위한 진짜 거짓말은 너무 웃겨서 못하는 성격이 죄다. 잊어버리지 못하면, 어떻게든 나는 해내야만 했다. 그래서, MP3에 귀에 익히려고 온종일듣던 그 녀석를 집어넣고, PC를 끄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칼과 도마와 그릇과 신문지를 들고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래, 나는 떡을 썰어야 하니까.




4. 귀는 노래를 듣고, 머리는 생각을 하여라.


마침 잘됐다, 싶기도 했다. 첫 줄부터 안풀려서 끙끙대던 그 녀석을 풀어내기 위해선 뭔가 집중할 일이 필요하긴 했다. 멍하니 육체적인 노동이라던가, 그런 걸 하면서 생각할 여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공원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래서 떡을 썰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되겠지, 싶더라. 그리고, 막상 생각해야하는 부분은 내팽겨친 채, 노래를 들으면서 '떡썰이'를 포스팅해볼까- 어떻게 해볼까- 라는 정말 엉뚱한 생각만 주구장창 했다. 떡을 써는 30분 내내... 나는 이런 사람이다.



5. 손은 떡을 썰테니.


그렇게 거실 바닥에 떡상자와 칼과 도마와 그릇을 놓고, 나름 완벽한 세팅을 했다. 그리고, 이제 알았는데, 내 다리가 조금 찍혀버렸다. 아- 이렇게 나의 첫 노출은 다리가 되어버렸나 싶네. 떡 상자는 떡집의 신변보호(?!!!)를 위해서 모자이크 처리했다. 더불어, 신체의 미미한 노출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말만 번지르르한 신비주의를 위해서 주소지를 가리기 위한 모자이크이기도 하다. 저 떡집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가 우리 집이니까...;;;;;;;;;;




떡을 써는 건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첨엔 썰리지가 않아서, 이걸 대체 어떻게 썰라는 거냐ㅡ"ㅡ 라고 혼자 궁시렁도 거렸다. 분명, 되게 잘 썰릴 것 같은 저 칼이 의외로 잘 안들어서 그런 것이다, 라는 생각에 다른 칼들을 찾았는데, 그 많은 칼들은 다 어디에 숨었는지, 과도와 빵자르는 칼 등등의 엉뚱한 톱니모양의 칼들만 눈에 띄더라. 그래- 나는 부엌에 뭐가 있는가는 아는데, 어디에 있는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묵묵히 저 안썰리는 대따 큰 칼로 떡을 썰다보니 요령이 터득되더라. 그냥 눌러 찍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저 칼을 보면 묘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 토드씨의 복수의 면도칼이 떠오른다.
토드가 복수대상자의 목을 스윽- 긋는데 피가 질질 흘릴 때, 우와 진짜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실감나는 소품, 이라며 혼자 놀란 척 웃었던 기억도 나고. 아, 물론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스위니 토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실감난다며 놀란 척 웃을 일은 아니잖는가. 게다가, 찬사만큼 재미나게 못 본 뮤지컬의 영화여서 보고싶던 그 간절한 마음을 눈물로 거두고가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 안봤다. 그나저나- 스위니 토드로 상받은 류님의 '같은 역할을 했던 조니 뎁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라는 그 말이 문득 떠오른다. 류님의 토드를 봤어야 했어, 라는 지금과 어울리지도 않는 망상과 더불어. 지민씨의 러빗부인을 봤어야 했어, 광호씨의 토비를 봤어야 했어. 나는 왜........ㅡ.ㅡ;;;;




아무튼, 나는 시간이 흐를 수록 떡을 잘 썰고 있었다. 나는 역시, 뭐든 맘만 먹으면 잘한다니까, 라는 택도없는 자만심에 가득차서 사진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이걸 왜 찍고있는게냐-ㅋㅋ 이러고 말이지.




그러다가 문득, 떡국 떡은 왜 동그랗게 자르지 않을까- 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의문을 떠올리며 동그랗게 잘라봤다. 엄마는, 그건 니가 먹어보면 알 것 아니냐- 라며 당시의 나의 질문에 핀잔을 주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몇 개를 자르는데, 왜 떡국 떡은 동그랗지않고 비스듬한지 알겠더라. 맛이고 자시고 일단 써는 게 힘들다...............ㅡ.ㅡ;; 그래서 너무나 쉽게 됐어, 이제 안궁금해 라며 쏘쿠울 한 척하며 저 녀석들을 그릇 속으로 넣어버렸다. 모르는 척, 하면서. 나는 호기심이 별로 없는만큼, 포기가 빠르다. 이거, 조금 안좋은 것 같기도 하다, 때때로.




그러다가 석봉어머님이 불끄고 썰었다는 그 가지런한 떡썰기에 도전했다. 그렇게, 한 줄 쓰고 막혀서 안써지는 그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 정리를 위한 정신집중은 어느 새 잊어버리고... 떡썰기에 푹빠져서 놀고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써는 게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혼자 역시 난~ ㅋㅋㅋㅋ 이러고 있었다. 귀에선 OST 속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운명을 가지고 치고박고 달래고 싸우고 울부짖고 있었고, 군중들은 '가면 속의 너~ 인간은 이중인격자~ 넌 속고있어~ㅎㅎ' 이러고 있는데, 나는 혼자 노래와 상관없이 키득대다니. 아무래도, 이 노래는 정말 좋은데 아직 귀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서정적인 베르의 노래가 간절히 듣고싶었지만, 얼른 녀석을 귀에 익히고 베르만큼 머릿 속에 맴돌게 하기위해서 주구장창 듣고 또 듣고있었다. 공연보기 전에 이렇게 했으면, 자막 안보고 그냥 봤겠는데- 새삼스레 나는 뭘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석봉이 엄마처럼 이쁘고 가지런하게 썰었다. 그런데, 불끄고 이렇게 썰 자신은 없다. 일단, 칼이 너무 크고, 나는 석봉이 엄마가 아니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글쓰는 것보단 떡써는 게 쉽겠는데, 라는 생각도 들더라. 나는 한자와 서예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올레에선 석봉이가 결국 떡장사를 했나보다, 이러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떡썰이는 완성되어 가고있었다. 이제, 으쓱- 거리며 엄마에게 자랑 질할 일만 남았다. 엄마가 시켜서 한 것이지만, 일단 했다는 것만으로도 으쓱- 할 수 있으니까. 이건, 나와 엄마의 관계를 잘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언가다...ㅎㅎㅎ

그런데, 이렇게 써는 것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서 지들끼리 들러붙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릇으로 옮길 때 - 들러붙지 않게 따로따로 다 떼어서 놓아야한다. 어른들이 이해가 안되는데도 고집스레 고수하는 방식에는 모두 다 그에 따른 노하우와 연륜이 뭍어있다는 것을 나는 떡썰기를 통해서 배워가고 있었다....;;;



6. 상상도 하지 못한 사고!!!!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다 썬 떡을 박스에 넣기위해서 떡을 신문지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줄을 위해서 들었는데....... 떡과 신문지가 우린 이제 헤어질 수 없는 사이 라며 울부짖고 있더라. 된장..ㅡ"ㅡ+++ 니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냐, 라며 떼어보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더라. 아~ 완벽한 마무리로 멋지게 자랑질을 할 예정이었는데, 나란 사람 이런 사람, 이란 걸 ...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너무 자만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엄마가 떡 썰래서 내가 떡을 썰었는데, 마지막 세 줄이 신문지에 들러붙었어~ 어뜨카지~ㅠ.ㅠ*** 이렇게. 그라자 엄마는 ㅋㅋㅋㅋ 정말 떡을 썰었다구? 아구~ 우리 딸 장해~ㅋㅋㅋㅋ 그건 그냥 놔둬. 씻어서 다시 썰면 되지. 라고. 혼자 조마조마 아슬아슬 긴장하며 전화했는데 너무 쏘 쿠울- 하신 엄마 덕에 되려 허망하더라.

아무튼, 그로인해서 덜 마른 떡은 절대로!!! 신문지 위에 올려놓지 말자. 라는 교훈을 얻었다. 왜냐하면, 둘이 바로 눈맞아서 떨어질 수 없다고 울부짖는 꼴을 고스란히 봐야하니까.




그렇게, 그 세 줄을 빼고 완성된 떡. 나... 아무튼 자뻑하다가 큰 코 다친 기분이다.




더불어, 상자 속에 놔두고 튈 예정이었는데- 전화해서 상황을 보고한 덕에 비닐에 담아서 김치냉장고 속에 잘 보관하라는 특별엄명까지 받아버렸다. 그래서, 입은 주먹만큼 튀어나와서 봉지에 담아서 묶고, 느기적거리며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멍때리며, 아무 것도 정리되지가 않았어- 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시간들이 흐른 지금도 아무 것도 정리된 것은 없다. 왠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아- 나란 사람.....;;;;



7. 마무리.

신문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그 떡은, 현재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나중에 먹을 때 씻으면 된다, 라고 엄마가 그러시더라. 뭐-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리고, 그 녀석은 아무래도 나중에 심심할 때 해주실 떡복이의 운명으로 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 시키는대로 잘했다고 우리 딸 최고 라던 엄마는, 다음 날.... 늦잠자서 밥차리는 거 안돕는다고, 바로 구박모드로 들어가더라. 보통 이렇게 뭔가를 하면 하루 정도는 유효기간이 있었는데- 이젠 반나절도 되지않는 이 슬픈 현실. 아, 내가 요즘 너무 허술하게 굴었어, 란 생각과 요즘 나를 너무 부려먹는 엄마가 살짝 미워진다. 나는 집안 일에 관련된 것은 다 싫다. 나는, 멍때리고 앉아있는 게 제일 좋다. 이래서야 나중에 커서 뭐가 될런지....아, 다 컸나?



8. 그런데.

이렇게 쓰고나니 너무 부끄럽다. 만날 신비주의래놓고, 개뿔...... 나 때때로 싸이코짓 한다는 거 이렇게 대놓고 밝히니 말이지. 그래도, 이미 썼는데 지우면 이거 쓴 시간이 너무 아깝다. 지금 졸린 눈 비비고 쓰고있는데 말이지. 허허. 게다가- 이렇게 쓰니까 왠지 얼굴 붉어지며 부끄러운데, 너무 재밌다... 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