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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공주의 남자 22회) 비극 속의 이방인, 현실과 마주하다

by 도희. 2011. 10. 3.

드라마 : 공주의 남자 22회

이제 마지막 회까지 2회차 남았습니다. 역사의 흐름대로 흘러가며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남은 이들은 주어진 운명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공주의 남자> 22회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며 슬퍼하고 아파하는 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세령이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그런 회차였답니다.


송구합니다.
- 세령 -

 

정종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완벽하다며 자화자찬했으나 어쩐지 허술했던 거사는, 너무나 허탈하게 발각되며, 정종과 금성대군 그리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어린 왕까지 모두 수양대군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벗을, 지아비를, 동생을 잃은 그들은 아파하고 또 아파하며 그 슬픔을 감추지않고 있었어요.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늘 뒤늦게 아버지가 지은 죄를 전해듣고 그제서야 아파하고 분노하던 세령이 아버지가 죄를 짓는 그 순간을 실시간 체험하는 것은, 그리고 그 비극 속에서 함께하며 그 슬픔과 아픔과 분노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이었을 거에요.  그렇게, 느꼈고 또 깨닳았겠죠.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귀로 전해듯는 것과 자신의 두 눈으로 지켜보며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를.

그리고 아비의 죄가 자식의 죄는 아니라며 그 누구도 세령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세령과 함께 그 슬픔을 나누지 않았고, 세령은 그들의 슬픔을 나누며 그 아픔을 다독여주기 위한 손을, 차마 내밀 수가 없는 듯 싶었어요. 그렇게 세령은, 그들의 아픔 속에 들어가 함께 슬퍼해주지 못한 채, 먼 발치에서 홀로 아파하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령은,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상왕전하와 관비가 되신 경혜공주마마의 처지도 제게는 아픕니다.
- 세령 -

 

세령이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은 분노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들과 함께 울지도 않았습니다. 감히, 함께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담담한 듯 그들의 슬픔을 지켜보며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마음에 새겨넣는 듯 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나와 평생 속죄를 하며 살겠노라던 세령은, 지아비와 동생 그리고 신분까지 빼앗겨버린 경혜공주의 처소에 차마 들어서지 못한 채, 친구를 잃은 슬픔에 아파하는 승유의 방문을 차마 열지 못한 채, 그렇게 그들의 공간 속에 차마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들의 슬픔을 다독여 줄 위로의 말이 아닌, 송구스럽다는 속죄의 말 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세령은, 그들의 슬픔 속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묵묵히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고서 먼 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이 된 자신을 느끼면서. 그들과 결코 섞일 수 없는 자신을 느끼면서.
아무리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고서 그들의 편에 선다고해도, 그래서 인연을 끊는다해도,
그녀 자신이 수양대군의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령은 새삼 깨닫게 되어버린 듯 싶었어요.

이번 일, 그리고 거사를 도모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죠.
그렇게, 세령은 꿈에서 깨어난 듯 싶더랍니다.

그렇다면 네가 하고자하는 일은 무엇이란 말이냐.
- 윤씨부인-

 

내내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이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승유를 사랑하고 승유의 복수를 묵인하며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겨누는 자와 함께 행동을 하며 그 곁을 지키는 것일까? 신념에 따라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랑하는 정인과 헤어지기 싫어서?

...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걸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내 정인의 칼이 내 아버지의 심장을 관통시킬 것이라는 것. 그리고 거사가 성공하면 아버지는 물론 가족들 모두 죄인이 되어 크나큰 고통을 겪게된다는 것. 크나큰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매우 당연한 댓가라고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인지, 혹은 그저 제자리로 돌려놓기만 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있는 것인지.

거사가 성공하면, 그녀 자신은 승유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올곧은 신념으로 아버지의 잘못을 끊임없이 고하고 결국 그 인연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기에 너는 죄가 없다, 라며 승유와의 관계를 세상이 인정해줄까.. 만약, 그렇게 살아남아 승유와 함께한다해도, 세령이는 어깨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감당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단 한번도 아버지가 죽길 바란 적이 없다는 세령이의 말을 들으며, 이 아이는 아직까지도 순진한 꿈을 꾸고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네가 하고자하는 일은 무엇이냐,는 윤씨부인의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않은 채 (혹은 못한 채) 자리를 뜨는 세령을 보며, 이 아이는 이제서야 그 순진한 꿈에서 깨어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전의 세령이라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위해서 라는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주장했을 듯 싶었거든요. 그렇게 지독하고 아픈 현실에 분노했지만 그 것은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혹은 사랑하는 이들의 현실일 뿐, 세령의 현실은 아니었거든요. 들꽃을 동경하던 화초는 그렇게 바라던 들로 나갔지만 여전히 화초일 뿐이었거든요. 그 연을 끊었다해도 이세령이 수양대군의 딸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현실, 인 것 처럼요. 그 것을 세령이는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싶더랍니다.

그래서 정종의 죽음에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한 채 그저 송구스러웠고, 경혜공주와 승유의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그저 송구스러웠고,  마지막 거사를 앞 둔 승유와 함께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한 채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런지.

그렇게 세령은 외면했던 현실과 마주하며, 소중한 이들의 세계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 싶더랍니다.
다시 돌아갈 곳도 없이, 그 어느 곳에도 있을 곳이 없는 듯,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이세령이라는 한 여인이-.

그리고-.

1) 정종이 죽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또 슬퍼서 흑흑- 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요. 대성통곡 할 수도 있었는데 마침 동생이 귀가해서 멈칫. 그런데 그 순간에 들어 온 동생은 急 감정몰입을 해서 울어버렸고, 연지냥이가 그 앞에서 냐앙~ 거리며 위로해주더랍니다.

2) 사실, 거열형 장면을 그리 생생히 보여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일단, 정종 역의 이민우씨가 많이 아프시니까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며 끔찍하다거나 안타깝다거나 그런 마음이 들기 전에 '아픈사람 데리고 뭐하시는 겝니까!' 라며 버럭. 그런데 그 장면, 이민우씨가 찍겠노라 고집부렸다던가, 그래서 찍으신 거라죠? ...프로십니다.

3) 조만간 합방할 분위기를 솔솔~ 날리시더니 드디어! 그 장면을 보며 '허걱- & 호올-' 거리다가 강석이와 단아의 첫날밤을 떠올리긴 했지만 더 애절절절했던 듯 싶더랍니다. 무튼, 3초예고의 저주를 받아 편집될 줄 알았는데 살짝 나오다가 엔딩박네요.

4) 왕이 된 수양대군은 점점 나약해지고 있는 듯 싶어요. 추락하지 않기 위해, 소중한 것을 지키기위한 발악, 처럼 보인달까? 게다가 공신들의 말에 찍소리 한번 낸 후에 오냐오냐 받아들이는 걸 보니 이런 왕이 되기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나, 싶더랍니다.

5) 어린 왕과 함께 숭이도 총각귀신으로 하차하시는 걸까요?

6) 아, 세령이 동생 숭이 마눌님을 타이틀롤로 한 드라마가 종편채널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요. <왕과 비>의 정하연 작가가 집필하시고, 인수대비 역할의 채시라씨가 다시 인수대비 역할을 하신다던가? 인수대비하면 채시라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저는 김영란씨도 떠오른답니다. '한명회'를 정말 재밌게 본지라! (ㅎ) 암튼, 비슷한 시대의 드라마가 또 만들어지는군요. 캐스팅이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7) 늘 생각하지만 너무 허술해요. 종이 면회 온 경혜공주만 미행했어도 면이는 승유 잡거나 혹은 은신처를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미행을 하지않는 것은 면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요? (...)

8)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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