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적도의 남자 12회)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도희(dh) 2012. 4. 30. 08:56

설마, 거래는 아니었겠지?

우리 아버지가 진회장 별장에 갔다는 걸
얘기 안하는 대신 너에게 장학금을 주겠다.

투자가 아닌 거래.

아님, 더 큰 비밀을 숨겨주기 위한 거래가 아닐까.
타살이 아닌 자살을 숨겨주기 위한 거래.

- 적도의 남자 12회 / 선우 -

 


 

선우

1>
13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선우는 경필사건의 공소시효가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준비해둔 시나리오대로 차근차근 복수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선우의 복수는 사건 관련자들의 법적처벌과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혹은 이루고자) 했던 '욕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법적처벌에 한걸음 다가가는 동시에 그가 상대할 이들에게 한발자국 조심스럽게, 그러나 거침없이 다가서고 있었다.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이.

예상대로 '진정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선우와 쿤은 그들의 '시나리오' 대로 다음 스텝을 밟아나갔다. 선우의 '진정서'는 그가 그려놓은 큰 그림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진정서'로 인해 암흑 속에 떨어졌던 선우는 '진정서'를 통해 그 것에 대한 처절한 복수의 시작을 알렸다.

선우와 쿤이 뿌려놓은 떡밥을 신준호와 신정민, 두 명의 검사가 덥썩 물었다. 선우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장일의 소개로 만난 신정민 검사는 장일의 '거짓말'에 선우를 무시하는 듯 했지만 선우의 신분을 알게되며 급 호감을 보이며 사건에 대한 열의를 보였고, 진노식의 뒤를 캐던 신준호 검사는 쿤이 흘린 '진노식이 살인에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떡밥을 덥썩 물고 선우의 '진정서'를 흥미롭게 검토 중이었다.

두 사람은 우연스럽게도 같은 '신'씨였고 장일과 친분관계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장일이 선우에게 소개한 신정민은 장일의 후배였고, 쿤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신준호는 장일의 연수원 동기였다. 상대의 신분에 따라 사건에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속물근성의 신정민과 정의실현이란 열정으로 똘똘뭉친 신준호, 그들은 각자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 각자의 욕망은 어떤 의미에서든 선우가 복수를 위해 펼쳐둔 장기판 위의 훌륭한 말이 되기에 적합했던 것 같다.

신준호의 경우는 아무도 모르게 '진정서'를 검토하며 사건에 접근해가고 있었고, 신정민은 현재 장일에 의해 다른 사건을 맡았지만 어쩐지 이 사건이 선우 쪽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신정민이란 캐릭터가 그 짧은 순간 보여준 속물근성이 인상깊어서 그런가, 이게 다가 아닐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같다.

2>
장일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선우는 '과거의 약속'을 이유로 장일을 만나 '심리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장일은 그저 선우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법적으로 장일의 죄를 묻기보다 기억을 감춘 채 만나 절친 코스프레를 하는 선우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말 몇마디를 했을 뿐인데 불안에 떠는 장일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떠보듯 진실 한 조각을 흘렸을 뿐인데 결국 이성을 잃은 그에게 엊어맞은 선우는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 회사의 창립기념파티에서 장일은 욱한 마음에 폭력을 썼다. 선우를 향한 장일의 폭력은 이로서 세번째다. 15년 전, 13년 전, 그리고 현재. 그 세번 다 선우는 장일의 주먹에 맞아주었다. (13년 전도 맞아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에 깐족대는 장일에게 욱해서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장일이를 패던 선우를 떠올려보면;) 그리고, 이 세번 모두 선우는 욕망을 지키기위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무언가(죄책감 or 두려움)'를 건들며 슬쩍슬쩍 떠보는 형식으로 그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장일은 너무나 쉽게 걸려들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겨둔 마음 한 조각을 들키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아이처럼.

선우의 자극이 있기 직전까지 혹시나 내 욕망이 멀어질까 덜덜떨며 서서히 무너져내렸고 선우의 자극이 결정적 한방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러고보면, 장일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선우인 것도 같다. 그러니, 한때나마 장일에게 '세상엔 경쟁자가 아닌 친구도 있다' 라는 그 따스한 빛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고.

앞서 두번의 자극에서 선우가 장일에게 원했던 것은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선우는 장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그 무언가를 건들며 그를 자극했고 '폭력'이라는 형태로 그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첫번째 폭력 이후 장일은 선우 앞에서 만큼은 '솔직'해졌고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면, 두번째 폭력에서 선우는 장일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죄책감과 그리움과 두려움이란 복합한 감정들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선우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선우는 그 순간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다짐했다.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그 것은, 그런 너여서, 그런 너라고 할지라도, 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듯 드는 중이다.

선우의 세번째 자극은 확인차원인 것 같고. 선우는 정말 어떻게하면 장일이가 욱하는지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장일이의 마음 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이라고 해야할까? 어릴 때부터 앞이 안보이던 시절,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일이가 욱하게 만든 건 선우말곤 없었던 것 같으니까.

3>
진노식과 이용배의 죄가 장일의 죄보다 큰 이유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경필'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장일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선우는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용서'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를 만나고 되새기고 자극하고 시험하며 그에게 여전히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되돌릴 수 있는 기회. 그러면서도 그는 그럴 수 없는 마음과 충돌하는 듯 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다고 되뇌이고, 누가 친구냐고 단호히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 것은, 상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았다. 흔들리지 않기 위한.

그 것은, 끝없는 암흑 속에서 지내야했던 지난 시간과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배신의 상처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함이 매력이던 선우는 더이상 솔직하지 못한 채 한발자국 떨어져서 인간을 대했고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와 유일한 친구 앞에서도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어쩐지, 장일과 만나 심리전을 펼친 날의 선우는 평소보다 더 심한 악몽과 두통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6>
선우는 복수를 위한 시나리오를 짜놓고 한발 앞을 살필 수 있는 인생의 지팡이를 통해 과감한 듯 그러나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선우가 아는 진실보다 모르는 진실이 더 많은 지금의 상황. 그가 어떤 복수를 펼칠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여전히 과거를 바라보며 고통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가 그럼에도 믿고있는 혹은 믿고싶은 광춘과 수미의 배신을 알게되었을 때, 장일의 아버지가 진짜 범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았을 때, 생부가 누군지 알았을 때, 선우는 또 어떤 상처와 고통을 받게될지 새삼 걱정스럽다.

눈을 뜬 선우의 앞날엔 눈부신 빛보다 지독한 암흑이 더 많이 남아있는 듯 싶다. 그러니, 더 힘겨워질 마음을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데이빗 모드 해제하고 선우 모드로 돌아와서 헤밍씨에게 정체를 밝히고 마음을 고백합시다! 왜 그러는지 머리로는 이해가 될 것도 같은데 마음으로는 안된다구욧! (ㅠ)

지원

1>
두 사람은 '나를 알아봐 주세요' 라며 상대방의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원이는 기적처럼 눈을 뜬 선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 서있으면 본인이 알아보겠노라 했었다. 그런데, 알아봤으면서도 지원이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저, 내 목소리 모르겠냐, 아는 사람과 닮았다, 라는 말로 암시를 주며 그가 나를 알아봐주길 기다릴 뿐. 질문을 바꿔보라고, 나에게 더 할 말은 없냐며, 괜한 트집을 잡으며 그녀의 주변을 서성대며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는 선우처럼. 그녀도 확신이 없었을까?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대답을 들어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2>
99.9%라고 했지만, 아마 지원이는 한눈에 그가 선우라는 걸 알아봤을 것이다. 마음에 사진처럼 남은 그 사람을 지원이가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을리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이제 그녀는 눈치채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날 밤, 자신의 사무실에서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노인과 바다'를 바라보는 그를 통해,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파티장에서 우연히 듣게된 그와 그의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서,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모르는 척을 해왔다는 것을.

파티장에서 우연히 들은 선우의 말은 지원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강인한 여인은 그 것에 상처받고 주저앉아 엉엉 울기보다는 서운한 마음을 다잡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지않을까, 싶었다. "그는 왜 나를 모르는 척 할까" 라고. 그 생각 끝에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다려줄 것만 같기도 했다. 어쩌면, 지원은 선우의 실명에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의 뒷통수 맞았다는 말과 그 말에 묘한 반응을 보이던 수미를 통해.

그래서,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우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13년전과 모든 것이 변했으나, 그래서 지원에게 데이빗은 직장 상사이지만, 헤밍씨에게 선우는 여전히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일이한테 한대 맞은 선우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서 살펴보고 (그 시각 쿤은 구경, 금줄은 어디서 노는지 안보였;;) 못마땅한 듯 한심하다는 듯 속상하다는 듯 장일이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면 말이지;

3>
사실은 잘 모르겠다. 선우의 마음을 대충 이럴 것이다, 라고 예상은 하지만 확신이 없는 상황인지라 지원이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이 맞는지, 어떤 액션을 취할지, 갈팡질팡 하는 중이다. 지원이 먼저 선우를 아는 척을 할 것인지, 모르는 척 그의 숨은 조력자로서 그 곁을 지킬 것인지, 뒤늦게라도 선우의 발언이 서운해서 토라져버리릴지. 

만약, 선우와 지원 모두 서로 눈치챈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면 이건 이것대로 재밌을 것 같다. 아, 왠지 나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 감정선만 설득력있게 잡아주면 아련아련 열매 백개정도 먹은 효과가 나지 않을까... 라는 뭐 그런 망상. (첨부터 두 사람이 재회 후에 조금은 엇갈리길 바라고 있었기에, 선우가 헤밍씨 얼굴 모르고 귀국하길 바랬던 1人)

아무튼, 엇갈림은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지원의 손에 있는 편지를 선우가 얼른 받아야하기에. 그 편지를 받아야 선우가 아직 모르는 진실 중 한가지를 알게될테니까. 그리고, 그 후 선우는 그 편지를 쓴 목격자가 누군지도 찾아야하니 말이다. (광춘이 자발적으로 나서진 않을 것 같음;)

4>
선우는 장일과 지원의 관계를 대충은 알고있는 상황이었다. 13년 전 장일 스스로 밝혔으니까. (장일의 짝사랑은 모름) 그리고, 13년 후, 우연히 장일과 지원이 통화하는 것도 봤고. 그 후, 선우는 말했었다. 내가 너무 늦게온 것 같다고. 13년의 인연이 이어진 것에 대한 작은 오해, 같았달까? 그 후, 면접에서 그 오해는 조금 풀린 듯 했는데 파티장에서 확신한 듯 했다.

현재, 지원을 모르는 척 하는 상황이기도 했으나 두 사람의 관계확인을 위한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원의 대답 후 쿤에 이끌려 가며 툭 던진 '동창회 하세요' 라는 그의 말은 '안도'이자 '확인'같기도 했다. 그래, 두 사람은 그저 동창일 뿐이지 별관계 아니구나, 라는. 그리고, 지원은 그렇게 선우가 떠난 후 귀로는 장일의 말을 들으면서 시선과 신경은 오로지 선우에게 향해있었고.

5>
차도남 컨셉에 틱틱거리는 선우를 보고있노라면 제 마음에 솔직하지 못해서 좋아하는 여자애 괴롭히는 개구쟁이 꼬꼬마 남자아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능력도 있으니 지원이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데, 그녀가 그를 아는 것만큼 그또한 그녀를 알기에 장일이처럼 직접적으로가 아닌 은근히 돌려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는 선에서 도와주려는 마음도 느껴지고. '프리티우먼' 놀이는 왠지 태주와 쿤에게 연애강좌 받으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 별표 그려놓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문득. (ㅋ) 지원이 넘 이뻐서 멍하다가 아닌 척 하는 선우 귀여웠음.

6>
그리고, 파티장에서의 선우의 말. 그 전에 선우의 그런식으로 말하는 건 13년 전과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심을 숨기기 위한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자뻑. 아무튼, 그걸 지원이 들었다는 게 문제였다.

장일 

1>
현재 장일은 선우와 진회장을 통해서 정신적 압박을 받으며 그 것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멘붕상태. 선우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진노식을 통해 경필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그에 얽힌 아버지의 진짜 '죄'를 알게되며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 것이 모두 '나'를 위해서 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장일이기에 그 충격과 슬픔은 엄청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선우와의 만남, 과거의 약속, 그로 인한 부탁은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그에게 다가왔고 그를 더욱 버겁게 했다. 선우에게 느끼는 그의 공포와 두려움은 잃을 것이 많기에 더 크고 날카롭게 그를 자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현재 장일이는 스스로를 재정비할 정신조차 없이, 지금 당장 닥치는 일들을 무마하고, 궁지에 몰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나름의 꼼수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록 그는 더더욱 궁지에 몰리게 될 듯 싶었다. 후배 신검과 동료 신검 모두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는 커녕, 그의 시선이 벗어난 곳에서 선우의 말이 되어버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 아직 후배 신검은 아닌가?) 장일은 그렇게 늪에 빠져버린 듯 했다. 벗어나고자 발버둥 칠 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2>
장일에게 '죄책감'이 단 1g도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부러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죄책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와 마주해야만 하고 그렇게 인정해야 하는 것이니까. 장일이 선우와의 만남 후에 느끼는 오한은 지금까지 이룬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의 죄와 마주하는 공포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진실을 말하는 수미에게 결국, "입닥쳐! 거짓말이야" 라는 그의 외침이 그리 말하는 듯 했다.

수미의 '선물'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수미의 화실을 찾아갔을 때까지만 해도,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린채 결국 발악한 것도 마주한 순간이고 인정해야만 하는 진실 앞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수미의 자극에 제발 이제 그만 나를 멈춰달라는 듯 하면서도 모든 걸 다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렇게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의 죄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서 벗어난 후에야 그는 숨을 쉬게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안겨 울어내는 듯 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던 그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수미와의 결혼까지 생각한 것도 같다. 그런데, 나는 예고에서 나온 이 장면을 보며 13년 전 술먹고 지원의 집에 찾아가서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나 괴롭히려고 일부러 쳐들어 온 것 같애' 라며 투정부리던 모습과 겹쳐져 보여서, 안쓰러움보다는 '수미도 너에겐 과분해!'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3>
장일이는 선우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될까? 어쩌면, 정신을 차린 후 수미와의 대화를 힘겹게 되새기다가 "혹시 알아? 선우도 다 알고 있을지" 라는 말을 기억하며 다시금 '의심'을 시작하며 주시하고 그렇게 눈치채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끊임없는 정신적 압박으로 무너져서 그렇지 장일이는 꽤나 똑똑하고 눈치도 있는 녀석이니 말이다.

장일이 선우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알게되면 멘탈재정비 후 반격을 준비할 듯 싶다. 장일이 선우에게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선우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까?' 라는 것이다. 그가 기억을 떠올린 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 그런데, 이미 기억이 돌아왔고 그럼에도 모르는 척 한다는 걸 알게되면 그는 오래 전처럼 대비를 할 것이다. 또다시 자기합리화를 시작하며 제 3차 장일코패스가 귀환할 것이고, 결국 진노식과 한배를 타고 반격을 시작하지 않을까?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될 듯 싶었다.

"적도의 남자" 11회와 12회는 선우의 등장으로 인한 장일의 공포와 두려움을 섬세하게 그려줬다. 나는, 이 부분이 지난 그 사건 직후, 선우의 생사보다 장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던 4회가 많이 떠올랐다. 친구를 배신하고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와 두려움, 그러나 결국 욕망을 버릴 수 없기에,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기에 위해 자기합리화를 통해 살아가기로 하는. 그래서, 이번 11~12회 또한 그의 욕망, 지독한 야망을 위해 진노식이 내민 피뭍은 사다리를 잡는 과정,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장일이의 이런 선택을 이해할 것인지 미워할 것인지는 오로지 시청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는, 그의 끊임없는 멘붕상태를 보면 안쓰러워 지다가도 그의 죄를 떠올리면 마음이 차가워진다. 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려니, 라며. 그러니 사람은 죄짓고 살면 안되는 것이려니, 라며. (...)

4>
현재 장일은 어디 한군데 마음둘 곳 없이 휘청거리는 상황이었다. 그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었다. 철저히 외로운 상황에서 홀로 이 일을 견뎌내야만 했다. 애초에 장일은 완벽하게 보이고싶기에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는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는데 익숙하지 못했는데, 그 사건 이후 더더욱 감출 것이 많기에 솔직할 수 없는 그의 상황 때문도 있을 것이다. 욕망을 위해 살아가기위해 가면 위에 웃음을 긋고 '좋은 사람''훌륭한 검사'로 살아가는 그의 주변에 사람은 많겠지만 그의 곁에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달까?

수미

1>
수미의 비밀이 밝혀졌다. 수미는 15년 전 선우가 사고당하던 당시 그 곳에 있었던 목격자이자 방관자였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닌 '이용'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제 아버지 광춘처럼. 사실, 수미는 이 일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아버지까지 무시하고 경멸하는 장일을 보며 수미는 더이상 참지않기로 했다. 약속은 꼭 지키는 녀자인 수미는 '후회하게 될거라'는 그 말을 지키기로 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을 장일에게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후회하겠다는 그의 말을 이뤄주기로 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미의 뜻대로 되지않았다. 수미 앞에서 제발 비밀을 지켜달라며 그 날을 후회하는 자일이 아닌, 니 마음대로 하라며 수미에 대한 경멸이 한층 더 높아진 장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수미가 쥔 '진실'의 열쇠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경필의 사건'에 용배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왜 선우를 내리쳤냐고, 왜 선우를 죽이려 했냐고, 끊임없이 몰아세웠을 것이다. "왜" 인지를 알기에. 나와 닮은 너이기에 그 것이 어떤 상처이고 고통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수미이기에.

분명 다르지만, 수미에겐 같은 무게로로 느껴졌나보다. 아비로 인해 찍힌 낙인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비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칠 수록 그 어둠에 가라앉게 되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낸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얼치기 박수무당의 딸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상처투성이로 외롭게 살아왔던 수미는, 살인자의 아들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를 장일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죄를 저지르는 장일을 보며 어쩌면 '나'를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비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의 슬픈 욕망을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수미는. 그게 불쌍했고, 슬펐나보다.

처음, 광춘을 통해 진실을 알게되었을 때 그 일을 세상에 알려선 안된다고 했던 것은 그에 대한 '복수' 이전에 '연민'이 앞섰던 것 같다. 그 연민은 '사랑'이란 감정에서 시작되었을 것이고. 장일은 수미가 나와 닮아서 싫고, 수미는 장일이 나와 같아서 연민을 느끼게 된 듯 했다.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 화가나고 안쓰럽고 원망스럽고 미운. 그 사랑과 연민과 미움과 원망 등등의 복잡한 감정과 소유욕, 그 것이 장일에 대한 수미의 15년산 애증의 실체가 아닐런지.

장일을 선택함으로서 수미는 깊은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 되어 준, 선우를 버렸다. 손에 닿지않는 눈부신 햇살보다 세상의 시선과 같이 차가운 비를 막아주는 우산을 선택한 듯 했다. 그 것은, 처음 느낀 배려이고 사랑이고 아픔이고 소유욕인 듯 했다. 그렇게, 선우에게 죄인이 되어 15년을 살았다. 성인으로 전환된 후 수미가 보였던 선우에 대한 걱정이, 진심같아 보였던 것은 이런 이유였나보다.

2>
수미가 마지막까지 무섭다고 생각한 것은, 장일이 가장 마주하기 힘겨워하는 부분,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서 끊임없이 헤집었다는 것이다. '왜' 라는 것. 그림을 본 것보다 수미의 닥달, '왜'라는 물음이 장일을 더 견디기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일이 이성을 잃은 시점도 수미가 '왜'냐며 그를 헤집기 시작한 후였던 것 같고.

3>
15년 전, 사고 직후. 수미는 왜 그렇게 선우를 찾아다녔을까?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보는 중이다. 하나는, 선우의 부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 그렇게 누군가 선우를 걱정해서 찾아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또 하나는, 장일이 공격한 상대가 선우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확신을 못했다는 것. 그래서 확인차 선우의 집에 갔고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이 아닐까, 였다. 

만약, 후자라면 너무나 정확한 수미의 그림이 문제가 될 것도 같은데... 수미의 회상을 보면 장일이 무릎을 꿇고있고 선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시점, 부터 목격을 했는데 거기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면 '진정서'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등까지 다 그려져있다. 한 곳에서 목격했음에도 다양한 각도로.

현실은 현실인데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현실. 그게 매력이라서 극사실주의를 선택했습니다. 현실을 내 마음대로 각색하는 거죠.

라는 수미의 인터뷰를 떠올려보면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전재로 다양한 시점에서 각색해서 그려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멀리서 봤더라도 그정도는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 수미는 그림은 자신이 최고라고 했으니까;

광춘의 목격한 것을 듣고 수미가 똑같이 그려내서 장일한테 보내면 그 것도 대박이겠다, 라고 그냥 생각 중. 근데, 이 부분은 일단 광춘의 안전을 위해서 비밀로 해야하니까. 수미는 모르겠으나, 광춘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것 같... 대충 들은 적이 있었구나; 아무튼, 광춘이 목격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언제 망치남이 광춘을 찾아올지 모르니까.

그나저나, 수미의 다음 행보가 어떻게될지 기대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선우가 모든 기억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아는 수미와 '그림'으로 인해 수미를 미심쩍게 생각하는 (그 전부터 약간 그랬을 것 같지만 - 점자분실 등등 -) 선우의 은근한 심리전도 기대되는 중이다. 이 부분, '선우의 기억'을 두고 벌어질 앞으로의 심리전도 기대된다. 수미와 선우처럼, '선우의 기억'을 두고서 선우와 장일, 선우와 노식, 선우와 지원 등등... 둘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패를 꺼내놓고 정면승부, 한 쪽은 알고 한 쪽은 모르는, 등등  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선 어떻게 펼쳐질지 홀로 궁금해하는 중이랄까?


그리고

1) 두 가지에서 <보통의 연애>가 떠올랐다. 수미의 그림에 뒷모습이 보이는 것과 '용서'라는 부분. 극 중, 아버지의 죄를 자신의 죄인양 살아가는 윤혜에게 재광은 말한다. "아빠 죄가 왜 큰지 알아요? 아빠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형 딱 한명인데 세상에 없거든요? 그래서 큰 거에요." 라고. 진회장과 용배를 용서해줄 사람이 세상에 없기에 그들의 죄는 크지만, 장일이 만약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그 것은 세상에서 그를 용서해줄 수 있는 '선우'는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일과 아들을 그토록 위한다는 용배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길 바라는 중이다.

그리고 뒷모습은 재광이 늘 뒷모습만 찍던 것과 그 이유가 떠올라서 였다. 아무튼, 이 뒷모습은 씬 자체가 인상깊었는데(위) 수미의 외로움으로 느껴지던 뒷모습 속에서 선우가 정면으로 등장한 것이 왠지 선우는 수미의 친구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전시장이 살짝 어두웠는데 선우가 들어오는 곳은 밝았던 것도. 어둠 속에 홀로 있는 수미에게 빛이 되어주는 존재는 선우라고 말하는 듯 했달까? 그렇게 느껴졌다. 이 우정이 언제까지 갈지, 누가 먼저 등을 돌릴지는 모르겠지만.

수미가 장일을 위해 끝까지 진실을 덮는다면 수미가 먼저 등을 돌리는 거겠지. 그 전에 선우가 그 사실을 먼저 알게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는 선우는... 수미가 진실을 덮는 이상 엄청난 고통과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2) 선우가 드디어 녹음봉사를 했다. 아, 너무 너무 좋았음. 앞으로도 종종 나왔으면 싶었다.

3) 이 드라마는 조연 캐릭터까지 하나하나 다 살아있어서 또 좋다. 진노식의 부인 마희정도 좋고, 그녀의 딸 윤주 캐릭터도 너무 매력있음. 윤주는 어쩐지 진노식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악함이 아니라 진노식의 욕망과 그 속에 있는 서글픔이랄까, 외로움이랄까, 그런 부분을 이해해주는 사람일 것도 같은 그런 느낌? 왜 이런 느낌을 받았나는 모르겠으나... 극 초반 (몇회였더라?) 윤주 유학 전에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눈 후부터 윤주가 진회장을 대하는 게 편하게 느껴졌다.

4)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그러니, 이상 끝.

5) 이미지 클릭하면 원본으로 보실 수 있어요.

6 : 추가) 방금 텍스트 미리보기 뜬 거보 고 홀로 헉! 꺄! 이러고 있었음. 지원이가 ... 두근두근. 나의 망상은 모두 어긋나고 이렇게 정리되나보다. 사랑에 용감한 헤밍씨, 이름을 불러주세요. 선우씨~ 라고. 그럼 데이빗 선우도 데이빗 모드 해제하고 선우 모드로 헤밍씨 대할지도../// (엇갈리고 아련아련 해지길 바란다더니 순 뻥이었나봄. 나 지조없는 녀자ㅋㅋㅋ) - 2012. 04. 30 am. 9 :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