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한가한 극장

영화) 블랙 스완 : 흑조가 되고자 하는 백조의 핏빛 날개짓

도희(dh) 2011. 2. 16. 21:53

블랙 스완 (Black Swan)

 
2011. 02. 15. Pm. 20: 40
대한 극장

 

0. 조금 먼저 만난, 블랙 스완

아는 언니님께서 시사회에 당첨이 되며 데리고 가주셔서 관람하고 온 영화. 사실, 이 영화 <블랙 스완>의 존재는 14일에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리하여 조금 먼저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고는 해도, 딱히 관심가는 장르도,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 함께 간 언니님은 나탈리 포트만~♡을 외쳐댔으나, 나는 나탈리 포트만의 이름만 들은 기억만 있을 뿐이어서 시큰둥했던 것이 사실; -

아니어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했다. 별 다른 기대도 없이. 그냥.

나쁘지않은 영화였다. 나름 괜찮은 영화일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 영화 너무 좋다!'

라며 호평에 호평을 더하며 극찬을 얹어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한번 보고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정도라고 해야할까?


※ 스포도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실 분은 굳이 읽지 않으셔도!




1. 블랙 스완

이 영화는,   발레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인 백조 여왕 자리를 꿰찬 발레리나 니나가 1인 2역으로 연기해야만 하는 백조와 흑조라는 너무나 상반된 매력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시키기 위한 과정을 그려냈다. 쉽게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내용의 영화다.

하지만 그저 완벽한 백조 여왕을 표현해내기 위한 피터지는 연습을 그린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 니나가 잘 해야만 한다는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따라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백조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과 달리 자신과 너무나 다른 흑조를 표현해내야만 하는 그녀가 자신 내면에 숨겨진 어둠을 끄집어내어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 흑조가 되고자 하는 백조의 피빛 날개짓

(1)

투명하리만치 하얗고 아름답고 순수하며 겁도 많은 아가씨, 니나는 그와 정 반대되는 매혹적이고 도전적인 흑조를 표현해내기엔 힘겨웠던 듯 싶었다. 백조 그 자체인 니나는 도대체 흑조를 어떻게 표현해야만 할지 몰랐었다. 그렇게 니나는 점점 다가오는 공연일과 표현해내지 못하는 흑조, 그리고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릴리의 존재가 마음의 압박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니나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니나에게 발레는 니나 그 자체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니나는 완벽해야만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토록 원하던 주인공이 된 니나는 흑조를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혼란이고 고통이 아니었을까? 니나에겐 적당히란 없었기에, 니나는 흑조 그 자체가 되고자 했다.

영화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니나가 백조 여왕을 맡게되며 떠안은 부담감과 긴장감, 흑조를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라는 심리를 따라가며,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과 시선을 통해서.


(2)

함께 관람한 언니는 '니나 엄마도 이해가 된다' 라고 했지만, 나는 니나가 이렇게 된 것은 엄마의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한다, 라고 생각했던 부분 또한 니나의 시선을 따라갔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니나를 열 두살의 어리디 어린 소녀 취급을 하며 지나치게 자신 품에서 감싸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고 해야할까?

니나의 엄마도 발레니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니나를 갖게되며 발레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딸 니나에게 자신의 꿈을 대신 꾸도록 만들었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꿈을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을테고. 니나는 단장에게 가볍게 만난 남자들이 있었고, 처녀도 아니라고 했으나.. 그 것은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다. 니나 엄마의 행동을 보면. 니나의 엄마에게 니나는 자신의 분신이었고 인형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했으며 그리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리성에 갇힌 공주님으로 만들고 말았다.

니나는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어야만 했고 엄마의 착한 딸이어야 했다. 그러기위해선 완벽해야만 했고.
이 것이 시작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흑조가 되고자 하며 변해가는 니나의 모습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소녀의 반항,   일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니나는 그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해 반항하는 것이 아닌, 완벽을 위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한 변화였지만.


(3)

완벽함을 추구하며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고픈 니나의 롤모델은 베쓰였다. 그러나 니나는 다리를 잃은 발레리나 베쓰를 보며 자신을 보게 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토록 원하던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함이 없는 상황, 처음 스친 순간부터 불안감이 들었던 릴리의 존재를 통해서 정상의 자리에서 느꼈을 베쓰의 심정을 느끼며 더더욱 스스로를 압박해나간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잘 모르겠는 건, 릴리가 정말 니나가 생각했던 것만큼 니나의 자리를 노렸냐는 것이다. 아마, 그 것은 니나의 과대망상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릴리의 행동을 보면 그저 과대망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릴리라는 캐릭터를 보면 릴리는 그냥 별 거 아닐 수도 있기에.

니나에게 릴리는 흑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문이었고, 니나 스스로 릴리를 통해 흑조의 길로 나아갔던 것 같다. 니나는 릴리 탓이라 하지만, 그 것은 니나의 선택이었으니까. 릴리를 따라 나간 것도, 릴리가 준 약을 탄 술을 마신 것도. 그저 릴리를 핑계로 잡고 있던 어느 한 자락을 놓으며 자신의 어둠을 끌어올린 것이 아닐까, 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릴리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 미움과 절박함이 니나에겐 큰 자극이 된 듯도 싶었다.




3. 완벽한 흑조의 탄생!

수없는 혼란과 환영 속에서 찾아 헤메이던 흑조, 니나는 자신 속에 숨겨진 어둠과 마주하며 완벽한 흑조를 표현해냈다. 완벽한 흑조, 그리고 완벽한 백조 여왕을 표현해내며 최고의 백조 여왕, 그리고 그녀가 단장에게서 그토록 듣고싶었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완벽했다.

그녀의 흑조,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백조 연기를 무사히 마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다. 흘러내릴 정도가 아닌 아주 순간적인.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에 순간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그 한마디가 소름끼치게 무섭고 슬프며 또 왠지 기뻤다.

그리고 극장 안에 불이 켜지자 나도 모르게 툭, 내뱉고 말았다.
미친..

말 그대로의 의미.
그리고, 그 한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녀에 대한 내 나름의 찬사?
그리고 그녀는 최고의 만족감과 더불어 행복했을 것이다. 완벽함에 대해서.




4. 그리고.

1)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 영화 속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죽지말고 꼭 살아남아줘, 혹은 죽음 외의 답이 있을까, 라는. 니나는 후자였다. 죽음이 최선. 스스로를 태워 단 한순간 최고의 빛을 뿜어낸 그녀에게 그 이상은 없지 않을까, 라는.

2) 나는 니나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보며, 그 원인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길 바라는 정도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함께 본 언니는 그녀의 완벽주의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와 배우의 마음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까지 하더라. 흠, 그렇구나, 라고 생각.

3) 위에서도 말했지만, 보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 굳이 보라고 추천할 생각도 없다.

4) 백조의 호수, 특히 흑조 부분은 좋았다. 흑조를 표현할 수 없다면 스스로 흑조가 되어버리면 된다는 그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과 더불어, 뭐랄까, 암튼 좋았다.   그녀의 흑조를 보기위해서 긴 시간, 때때로의 지루함을 견뎠구나, 싶기도 했고.

5) 딱 한장면 잊혀지지가 않는 부분이 있다. 으으.. 징그러, 섬뜩, 이랄까? 큰건 잘 잊으면서 그런 자질구레한 건 진짜 못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