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 어린 나이에 원에 볼모로 끌려간 후 십년, 그 굴욕의 세월 끝에 원에 의해 왕이된 공민왕은, 참 어렵게 고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그를 기다리는 것은, 기철의 계략에 의한 텅 비어버린 궁이었다. 그 당혹스러움을, 굴욕감을, 서글픔을, 그리고 쓸쓸함을 들켜선 안될 왕의 자리에 올라선 공민왕은 그 순간 그의 곁을 함께해준 그러나 믿음을 온전히 내어줄 수 없는 '내 사람'들을 휘이 둘러본다.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처했었음에도 공민왕과 고려에 대한 원망을 내비치기 보다는 공민왕의 마음을 먼저 꿰뚫어보던, 노국공주는 그 순간, 무엇을 보았을까? 난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어쩌면 국모가 가장 긍휼이 여겨야 하는 백성은 군왕... 이 나라의 지존일지도 모른다
, 라는 <대왕세종>의 대사가 떠올랐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위험한 순간마다 걱정을 하면서도 행여나 그 마음이 들킬까 애써 그 마음을 단단히 포장한채 마주하는 애증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노국공주의 회상을 통해 그려졌다. 갑작스레 시작된 만남 속에서 남자의 정체를 알고있는 여자와 여자의 정체를 모르는 남자는 운명으로 얽히게 되었다.
그 만남 속에서 노국공주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자신을 '고려여인'이라 여기며 반가워하고 가여워하며 다정한 미소와 따뜻한 손을 내미는 이 남자에게...
자신과의 정혼을 탐탁치않게 여기며 자신을 피하기위해 도망다니고 있는 이 남자에게...
원에 대한 울분과 분노로 가득차 일면식도 없다는 원의 공주를 미워하는 이 남자에게...
결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여인으로 오해한 노국공주 자신에게 첫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겠노라는,
그렇게 '원의 여인'으로 부터 너를 지켜줄테니, 너는 곁에서 나의 벗이 되어달라는,
그에게...
짧은 만남 속에서 (한번 만난 것일 수도 있고, 한동안 어쩔 수 없이 공주궁에 머물며 몇번의 만남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노국공주는 일면식이 없냐며 그를 떠본 것이고, 공민왕은 그녀에게 청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가진 원에 대한 울분과 고려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미움도...
그리고 운명의 날...
고려의 왕자와 원의 공주로 만나며... 두 사람의 마음은 엉켜버렸겠지.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원에 볼모로 끌려온 이후 처음으로 온 마음을 꺼내어 보여줬던 상대가 바로, 그렇게나 거부하고 미워했던 원의 공주였다는 것을 알게된 공민왕의 반응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처음 마음을 연 여인에게 농락당했다고 여겼을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의 문을 완전히 걸어잠근 것은 아닌가, 싶었다. 믿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믿고싶고 의지하고 싶어진 최영의 충심을 그런 식으로 시험한 것은 아닐런지...
그날, 그가 그녀에게 청혼한 것은 그녀가 그저 '고려여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조용히 들어주고 붙들어주는 그녀의 조용하지만 따뜻했던 마음에 반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아무리 마음을 걸어잠궈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겉모습이 누구이든, 그날 그녀가 위로해준 손길은 진심이었고 그렇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테니까. 노국공주는 아마, 공민왕이 '공녀로 끌려온 고려여인'으로 오해한 자신을 구해주고자 한 그 순간, 보여준 다정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에 반했던 것 같고...
얼마나 더 오래 엇갈리게 될까? 엉켜버린 마음이 풀리는 날이 오기는 올까?
공민왕의 울분을 누구보다 가가이에서 보고 들었기에 노국공주는 그 누구보다 공민왕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공민왕은 그렇게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그녀가 거북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녀가 거북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녀에게 기대고 싶어질까봐, 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마음마저 들여다 보는 건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영을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공민왕의 마음은 잘 알기에... 노국공주는 또다시 최영에게 '그대 왕비의 명'으로 '죽지말라'고 했다.
나를 미워하고 돌아봐주지 않은 채 차갑게 대하는 그가 밉지만,
그리운 고려에 돌아와서도 끝없는 고독과 쓸쓸함 속에서 홀로 외로이 서있는 그를 보는 것이 더 괴로워,
그가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최영에게, 살아 저 외로운 나의 남편, 고려의 왕의 곁에 있어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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