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한가한 극장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 소설의 여백에 드라마의 색을 넣다.

도희(dh) 2010. 9. 12. 08:20

1. 시작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같은 줄기의 작품을 시리즈로 적어내리는 그런 기분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이런 거 꽤 좋아한다. 한 작가가 만들어놓은 캐릭터로 여러 줄기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드라마 [갈릴레오]를 보기 시작하고 가장 처음 흥미를 느낀 부분이 이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읽게 될 거라 생각되는 [갈릴레오]의 원작(탐정 갈릴레오, 예지몽)의 리뷰까지 하면 시리즈의 마무리인가, 싶다.  아무튼,  책 리뷰 쓴지 얼마안되서 영화리뷰까지 쓰려니 뭔가 정신도 없고.  그냥 가볍게 쓰기로 작정했지만 과연 내가 정해놓은 '가볍게'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내용없이 말이 많은 타입인지라... 빈수레인가, 나?)

지금부터 써 내려갈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X헌신)> 의 내용이나 이 녀석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얼마 전 소설 X헌신의 리뷰에서 어느정도 반복하며 밝혔기에 여기까지 끌고 오지 않아도 되리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영화를 보면서 느낀 소소한 잡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될 듯.


그리고,  쓰려고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저 위의 단락까지 써놓고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시 멈춰버렸고,  지금으로선 솔직히 그 때 무슨 생각으로 뭘 쓰려고 했는지 별로 기억이 안나는 중이다. (한숨)  그래서 정말 잡담으로 시작해서 잡담으로 끝날 듯!




2. 이시가미의 이야기인 소설, 유가와의 또 다른 이야기인 영화.

소설 X헌신은 사실 하나의 시점이 없다. 그 곳에 나오는 인물들의 시선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생각을 이야기하며 흘러가고 그 것이 맞춰지며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하지만 나는 어느순간 '이시가미'의 입장과 상황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갔던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화 X헌신은, 이시가미의 사건이 주 재료이면서 유가와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 [갈릴레오]의 번외편이기도 했다. 만약 드라마 [갈릴레오]를 안본 상황이었으면 또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드라마 [갈릴레오]를 무척 재미나게 보고 난 입장에서는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게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드라마 속의 유가와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 해서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도 같다. 드라마에서는 '소설 X헌신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 유가와가 아니야' 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봤었다면,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유가와가 이시가미의 사건에 연관되면서 저런 모습과 저런 반응을 보이는 구나' 라는 설명이 안되는 어떤 이해란 것이 되었다고 해야할까? 이시가미 앞에서의 유가와는 괴짜도 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인 듯 했다. 똑같은 천재 앞에서는 유가와도 일반인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고;

그래서 영화 X헌신의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의 여운 - 저런 사랑도 있구나, 에 대한 안타까움과 놀라움.. 그리고 이시가미의 절규 속의 슬픔 - 과 함께 더이상 유가와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인지라 <영화 X헌신>을 완결편으로 더이상은 이 시리즈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3. 원작과 드라마의 중심을 잘 잡았던 영화, X헌신.

참, 나는 이 영화나 소설을 원제목인 <용의자 X의 헌신> 을 그냥 줄여서 <X헌신>이라고 부르는 중이다. 그냥 처음부터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그리 줄여서 부르다보니 입과 손에 익어서 이젠 바꾸기도 귀찮다고 해야할까? 나만 그러는지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연장선이자 완결편, 괴짜 물리학자 유가와의 또 다른 모습.. 즉,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준 영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저 괴짜에게도 저리 인간적인 모습, 그런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질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중심에 서 있는 사건을 잘 풀어냈다는 생각도 들었고.

소설 속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분산된 사건들을 하나로 모아놓은 듯 했달까? 소설 속의 세세한 잔가지는 쳐내되 그 포인트는 가져다가 영상화 시킨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소설 속의 장면과 영화의 해석을 비교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그 비교란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런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라던지 '그 설정을 저렇게 변경했구나' 또는 '그런 캐릭터의 포인트를 저런 식으로 풀어냈구나' 등등의?

또한, 소설의 여백을 잘 메꾸어놓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추리물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추리력이나 분석력 혹은 섬세함이 떨어지는 나로선 그냥 넘겼던 소설 속의 어느 장면이, 영화 속에선 아닌 듯 그렇게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유가와의 행동을 대신 설명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특히, 원작 속에서 유가와가 흘리듯 '문서를 태우고 있었다' 라고 구사나기에게 말한 장면과 마지막 즈음 이시가미에게 '옷을 태우는 것을 실험해봤다' 라는 부분이 연결될 것이란 것은 생각도 못했기에 영화 속에서 그 두가지 장면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아하' 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원작의 포인트와 드라마의 색을 적절히 섞어 그 중심에 제대로 서있는 듯한 느낌의 영화였던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마지막 그녀의 선택으로 인한 이시가미의 절규가 소설에서 느꼈던 것 만큼의 임펙트가 적었다는 것이다. 자수라는 선택을 하기 전 그녀의 갈등과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적었던 것은 각색의 과정에서 혹은, 영화에서 그리 필요치 않았을 장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절규장면과 그렇게 절규하는 이시가미를 말리는 것이 아닌 그에게도 슬퍼할 시간을 주자는 그 말 - 아마, 구사나기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 이 이시가미의 그 슬픔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듯 했는데... 그 장면이 사라지고 절규하는 이시가미를 무작정 끌고나는 그 씬이 좀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며 만족하던 이시가미가, 자수를 하러 온 그녀를 발견한 순간의 표정에서 그의 절망과 슬픔과 분노 등등의 감정을 느꼈으니,  '이런 사랑도 있구나' 라는 그 놀라움은 여전했으니...  그 것대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영화 속의 '이시가미' 또한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이시가미'는 아니었다. 좀 더 뚱뚱하고 음침한 느낌이라고 생각했기에; 뭐랄까, 영화 속의 '이시가미'는 조금만 말끔하게 하면 유가와 못지않게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버렸다고 해야할까나? 물론... 극이 진행되면서 그런 생각은 지워버렸지만!



4. 끝으로.

1) 재미있는 영화였다.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 아쉬움은 괴짜천재물리학자이자 갈릴레오로 불리는 유가와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란 생각이 더 크긴 하지만;  난 아마,  원작소설과 드라마 [갈릴레오] 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를 지금만큼 재미있게 보고 또 좋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되려, 이 영화를 먼저봤다면 바로 원작을 사서 읽고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2) 예전 처음 쓰려고 시작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이 것 세개는 틀림없을 듯 하다. 이 영화를 끝으로 유가와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이시가미 사건의 엔딩이 아쉬웠다는 것. 그럼에도 좋았다는 것.

3) 원작리뷰 :

2010/08/25 - 책) 용의자 X의 헌신 - 이런 사랑도 있다...

4) 드라마리뷰 :

2010/08/27 - 갈릴레오)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

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