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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왕녀 자명고 36회 - 호동도 그저 사랑이 고팠던 아이였을 뿐...;

by 도희. 2009. 7. 20.

드라마 왕녀 자명고 36회.

감상이 조금 많이 늦어버렸습니다.
36회는 본지 좀 됐는데, 그날 바로 못 쓴 덕분에 기억이 살짝 가물가물.
그래서 그냥 떠오르는대로 대충 흘려쓸 듯 합니다. 게으름 무진장 부린 덕에... 37회도 봐야할테고...^^

왕녀 자명고 36회는,
무휼의 복잡한 마음과 호동의 사랑에 대한 갈증... 이 느껴지던 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호동과 라희는 혼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1. 호동아, 내 한번 더 힘을 낼테니까 니 손으로 낙랑을 쳐서, 이 애비에게 쥐어다오. (무휼)

소자,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을두지를 베어가며, 이 낙랑에 있는 이유를 정녕 모르십니까?
어려서 아버지 해애우를 이뻐하셨 듯, 소자도 이뻐하셨나이다.
그 시절 그 때, 그 아버지의 마음에 의지해 이 호동 살아왔나이다.
다시 한 번 아버지한테 사랑받고싶고, 다시 한 번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고,
다시 한번 아버지께 웃음 드리고 싶습니다.
소자, 한수 이북에서 동류수 넘어까지 아버지께 드리고픈, 아버지의 뒤를 잇고픈,
그 마음을 왜 몰라 주십니까. (호동)

너는 멀리있고, 해애우는 가까이 있다.
너는 세력이 없고, 비류나부는 세력이 크다.
호동아, 내 한번 더 힘을 낼테니까 니 손으로 낙랑을 쳐서, 이 애비에게 쥐어다오. (무휼)


아... 뭐랄까...
'왕녀 자명고 36회'는 무휼의 복잡한 심경과 호동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던 회였던 것 같습니다.
몇 회였더라... 비류나부에 의해서 호동의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호동의 생사를 몰라 어찌할 줄 몰라하던 무휼에게서 느꼈던 그 느낌이 다시한 번 느껴진 회였다고 해야할까...?


호동이 어린 시절, 무휼은 호동을 무척이나 이뻐라했습니다.
그 시절의 무휼의 호동사랑은, 무척이나 지극했고.. 호동을 왕으로 세우고싶었던 무휼은 더이상 자식을 보지않기까지 했으니 말이죠. 뭐... 매설수의 그 지독한 계획으로 해애우를 보긴 봤으나.

그리고 호동은, 그 어린 시절의 무휼의 사랑을 내내 가슴에 품고, 그 것을 의지하여 모진 세월을 살아왔노라, 그리 말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고구려의 왕'이 되고픈 것이 아니라, 무휼의 사랑을 다시금 받고싶고 무휼의 손에 낙랑국을 쥐어줌으로서, 어린시절 보았던 무휼의 그 웃음을 다시금 주고싶은, 아들의 마음...이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이 것, 거짓된 낙랑국으로의 망명과 라희와의 결혼. 이 호동으로선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무휼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받고 그와 더불어 무휼과 고구려의 인정을 받는 '고구려의 왕'이 되면서... 또한, 자명을 자신의 곁에 둘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어쩐지, 호동또한 사랑에 무척 굶주려있었던 아이였던 듯 합니다.
라희만 사랑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호동또한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했던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달아버렸달까...?
어려서부터 늘, 적들의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던 호동이기에, 사랑에 목말라했던 것일지도.
그렇게 호동은 사랑이 그리웠고, 그 사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호동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의 사랑또한 간절했고, 자명의 말에 의하면.. 호동은 여인의 사랑도 그 무엇도 아닌 어미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호동은, 자명을 통해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의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나본 것은 아닐런지. 죽을 위기에 자명을 어미라 불렀던 호동을 떠올려보면. 

라희가 자실의 딸이기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위해선 뭐든 하는 것처럼.
호동또한 무휼의 아들이기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위해선 뭐든 부술 수 있는 아이였나 봅니다.



무휼은 자신의 눈으로 자명고의 울림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무휼은 신물을 믿지않습니다. 아니, 믿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최리에게 '신물은 사라지라고 있는 것이다.'라며 은근 쿨~ 한척 돌아서게되고, 신당에서 그 신물의 실체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또 두려워하게 됩니다. 뭐랄까... 긴 세월,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내려서 어찌할바 모르는 듯 보였다고 해야할까...?
여전히 무휼의 마음에는 그 것이 '완전힌 신물'이라는 믿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또 믿을 수 밖에없는 그 상황에서 어찌해야할 지를 몰라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진양궁 안에서 호동과 만나서 호동의 진심을 떠보기까지 하니 말이죠.

사실, 무휼이 호동에게 '너 낙랑에 있으니 좋지? 좋아 죽겠지?'라고 떠볼 때, 왠지 무휼 질투하는 것 같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뭐랄까... 어쩐지 최리에게, 낙랑국에게 자신의 생떼같은 자식을 빼앗겨서 화가나하는 듯 보였다고 해야할까...? 최리더러 '아바마마'라 부르는 호동을 찌릿하며 놀란 듯 바라보는 무휼의 표정도 의외였고. 아마 무휼은, 호동을 믿으면서도 내내 의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동은 무휼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싶노라고, 어린시절 아버지가 준 그 사랑에 의지해서 나는 지금까지 버텨왔노라고. 그렇게 다시한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싶노라고. 아버지께 그 웃음을 안겨드리고 싶노라고.
그런 호동의 말에 무휼은 뭔가 좀 놀란 듯 했습니다. 놀랐다고 해야하나, 당황했다고 해야할까...?
사는 게 바쁘고 정신없어서, 아들의 마음까지 미처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어찌보면 무심한 아버지였던 무휼은 그런 호동의 마음을 직접 듣는 순간, 뭔가 찡... 하게 다가온 듯 보였달까?
부모란, 그런가 봅니다.

가장 곁에서 무휼과 호동의 관계를 지켜본 매설수이기에
매설수는 무휼이 호동을 그리 쉽게 놓아버린 것에 내내 의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리 애지중지 아끼던 아들을 하루아침에 그리 비정하게 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호동에게 왕의 자리를 넘기기위해서 그 긴 시간동안 또 다른 자식을 보지않으려고 했던 무휼이니 말이죠.

무휼은, 호동을 보이지않게 내내 가슴으로 사랑해왔습니다.
그래서 호동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테고. 그 것이, 현실 앞에서, 또 둘 사이에 생긴 틈을 자꾸만 버려놓으려는 매설수의 굳은 의지로 인해서 어찌저찌하여 무너져내렸겠지만.

무휼은, 호동이 졸본으로 가고, 낙랑국으로 간 사이에 계속해서 흔들렸을 것 같았습니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 그리고 고구려를 더 강하게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송옥구는 계속해서 해애우를 태자로 세워야하노라, 그리 무휼을 흔들어대고...
그리 해애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고, 호동은 낙랑국에 있으니 ... 어쩌면 무휼의 그 마음도 당연할 듯.

무휼은 아주 오랫만에 재회한 아들의 마음을 듣고, 마지막 힘을 내기로 합니다.
비류나부의 압박과 눈에 보이는 해애우의 재롱에 두눈과 귀를 딱 막고, 호동이 낙랑국을 제 손에 쥐어주고 태자로서의 자격, 자신의 뒤를 이을 왕자로서의 자격을 보여줄 때까지.

과연...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음... 지금 제가 뭐라 횡설수설 거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서 지금까지 버텨온 왕자이자 아들 호동과, 그런 아들에 대한 사랑이 내내 왕이란 이름을 가진 아버지의 가슴에 숨겨져있던 무휼의 마음을 슬쩍 훔쳐본 기분이었다, 라고 정리해야 할까?





그런데... 자명고는, 낙랑국에게도 고구려에게도 양날의 검과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낙랑국은 자명고가 있기에 그 나라가 안전해질 수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 낙랑국은 안전하다는 자만에 빠질 수 있고 자명고가 사라지는 순간... 믿고 의지하던 무언가를 잃고 방황하고 길을 헤메일 수 있을테니 말이죠.
그리고 고구려는 자명고 덕에 백성들과 군사들이 두려움에 사기가 떨어지지만, 그만큼 자명고만 없앤다면 그 자신감은 몇 배로 불어날 수 있을테니 말이죠.

자명고가 있기 전이나 자명고가 사라진 후나, 낙랑국과 고구려는 겉으로는 별반 달라진 것은 없을테지만... 그 존재가 있었다가 사라진 그 자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척이나 커다랗게 낙랑국과 고구려에게 다가올테니 말이죠.








 

2. 라희는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고, 난 고통에 짓눌려 사는 사람이고,

뿌쿠는 그 고통을 이겨낸 사람 같았소. (호동)

지나쳐 온 사람보다 현재의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해요.
지금 누가 곁에있는가,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줄 사람은 누군가,
생애 마지막 날까지 당신 곁에 있을 사람은 라희 나니까. 이젠 나만 바라봐야 해요. (라희)

그 강함이 좋았소.
라희는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고, 난 고통에 짓눌려 사는 사람이고, 뿌쿠는 그 고통을 이겨낸 사람 같았소.
그래서 동경했던 것 같소. (호동)

딱 하루만, 제가 살아갈 날 중 오늘 하루만, 낙랑국의 신녀가 아닌 자명이로 울께요.
오늘 이 시간 만큼은, 어머님 앞에서 자명이로 울께요. (자명)


호동과 라희가 정식으로 혼례를 치뤘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이에 서있던 자명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면서도 못내 가슴아파 어찌할 줄을 몰라하더군요. 아니, 자명 뿐만이 아니라... 호동의 마음도 무척 심난해 보였습니다. 그 두사람의 마음을 이미 눈치채버린 라희도 물론.

라희가 아버지 최리의 믿음과 어머니 모하소의 사랑을 모두 포기하고서라도 호동을 잡고싶어 그리 안달했던 이유는 뭘까...? 아마, 호동만 있으면 된다, 라는 어떤 알 수 없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번 왕녀 자명고 36회는 라희의 마음보다는, 호동과 자명의 그 절절함이 더 부각되어버린 듯 해서 그네들의 사랑을 조금은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제 3자의 눈으로 그리 바라는 봤지만, 그리 마음아프고 애달프고 그러지는 않았던 걸 기억하자면... 아, 나는 사랑이 메마른 건지... 호동과 자명의 그 절절한 사랑에 크게 마음을 안쓰고 있었던 것인지. 허허.

라희는, 호동의 마음이 지금까지는 어디에있든, 이제라도 자신에게만 온다면 나는 괜찮다, 를 고수하는 듯 했고, 호동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숨기지도 못하면서 라희에게 거짓된 사랑을 속삭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명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다른 여자, 그 것도 자신의 배다른 언니와 혼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축복해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어찌 바라보고있을까, 궁금해지게 하더군요.

신녀로서 내내 살아온 자명은, 그날 딱 하루만 모하소의 딸이되어, 모하소의 품에 안겨, 그렇게 사랑을 잃어서 가슴아픈 자명으로서 눈물을 흘리게되고, 자신의 딸을 언제나 '신녀님'으로만 모시던 모하소또한 그 날 하루만은 어미로서 사랑을 잃은 딸을 가슴에 품고 내내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호동과 결혼한 라희는 마냥 행복할까?
호동의 마음이 자명에게 온전히 향해있음을 눈치챘고, 호동이 낙랑국이 아닌 고구려와 손을 잡고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눈치채버린 낙랑의 태녀이자, 한 여자 라희로서...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음을 아주 어렴풋이라도 느끼지 않았을까..? 누가 뭐래도, 라희는 왕자실의 딸이니까.

호동은 낙랑국을 부셔버린다면 정말로 자명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을까...?
낙랑을 손에 넣으면 고구려의 태자로, 그리고 무휼의 인정을 받은 무휼 다음 대의 왕의 자리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테지만, 그 또한 확신이 있었을까...? 있었겠지.

자명은, 내내 운명에 이끌려다니며 결국은 낙랑국의 왕녀가 아닌 신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그렇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낙랑국의 태녀이자 자신의 언니인 라희와 결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었을까..? 여전히 호동을 믿지 못하면서도, 아무 것도 못한 채, 그가 하는 양을 그렇게 바라만보는 자신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을까...?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그 혼례를 축복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척 미소지으며,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는 이 세 남녀가 참... 가엾더라, 나는.

그래서, 이 혼례장면이 참 씁쓸하고 슬프기까지 하더라...



* 아.. 낙랑국에는 면사포도 있었습니다.
* 호동도 그렇고 라희도 그렇고, 긴 시간 촬영하느라 많이 피곤한지... 얼굴들이 참...푸석푸석..;







3. 사람의 마음이 큰 길 처럼 하나로 뻗쳐 새지않는다면, 그 건 사람이 아니지요. (왕자실)

모르는 것이 자명이한테 좋았을 텐데요.
형님이 키웠으나, 라희는 왕자실의 딸입니다. 나를 많이닮아 갖고픈 것은 반드시 가져야하고 자신의 것을 뺐긴다 싶으면 참지 못할 것입니다. 자명이 호동의 곁에서 어정거리지 못하게 하십시요. (왕자실)

낙랑을 위해서 살고자 신녀가 됐을 때, 이미 호동에서 마음을 접은 아일세.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라희가 자명의 마음을 헤아려 주리라 믿네, 나는. (모하소)


라희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라희는 자신이 '자명의 진실'을 알고있음을 왕자실에게 말하게되고, 왕자실은 그런 라희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쪽이 불편한 듯 보였습니다. 왕자실은, 라희가 얼마나 '모하소'를 사랑했는지를 아마 가장 잘 아는 한 사람일테니 말이죠.

혼례식.
라희는 태모의 축하에 냉랭하게 대답하고, 눈이 마주친 왕자실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모하소는 그런 라희의 모습에 어쩐지, 알고있었음에도 상처를 받게되는 듯 보였고말이죠.
전... 이 장면이 어쩐지 무지 두근거리고 가슴 떨리더군요.
어쩐지 어머니를 싫어할 것 같다던, 이제 더이상 '엄마'라고 부르지않겠노라 선언했지만...
여전히 따뜻한 모하소의 마음을 느끼며, 흔들렸을지도 모랐던 라희의 마음이 이제, 모하소를 온전히 떠아버렸음을,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는 엄마는 '모하소'가 아닌 '왕자실'임을 깨달아버렸음을 보여주는 듯 했달까...?

모하소는 뭘 바라고 있었을까...?
라희의 혼례식 날, 태모이면서도 라희의 혼례준비를 돕기보다는 친 딸인 자명의 상처를 보듬어주러 다녀왔으면서, 아... 그 것은 엄마로서 자신의 친 딸을 보듬어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고, 모하소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자명의 엄마로서 살아가기만 하는 모하소라면, 그 것이 참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라희의 '엄마'로서, 아니 정확히는 라희의 '사랑하는 엄마'로서 또 남고싶어하는 모하소의 마음.
그 마음이 당연하겠지만, 어쩐지 욕심처럼 보이는 건 또 뭔지.
모하소는 한 손에는 라희를, 한 손에는 자명을 놓고 ... 두 딸을 공평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엄마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나의 좀 좁은 생각으론... 그 건... 자명과 라희, 두 딸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기도.
아마, 혼례식 날, 자신을 축하하기 전에 자명의 마음을 보듬어주러 간 모하소를 보며... 자식이 어미를 싫다해도, 어미도 그리할 수 없다라던 모하소의 마음에 조금 흔들리는 듯 보이던 라희는... '모하소엄마의 사랑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실히 마음에 새겨버린 듯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왕자실은, 그런 라희의 마음이 걱정되는 듯 했습니다.
언젠가 왕자실은 그랬었습니다. 자명으로 인해서 라희를 아프게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왕자실이 모르는 어느 틈에, 이미 라희는 자명으로 인해서 아파했습니다.

모하소는 한 남자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본 여인이고, 그렇기에 사랑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모르기에, 사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인 듯 했습니다.
그리고, 모하소로 인해서 한 남자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래서 권력에 의지하며 애증의 세월을 살아왔을 왕자실은 ...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지못하는 그 아픔을 알고, 그렇게 사람의 마음이 그리 쉽게 컨트롤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모하소는 두 자매의 호동을 사이에 둔 갈등이, 오늘 혼례로 모두 마무리되었으리라 믿는 듯 했고.
왕자실은 이 '혼례'가 또 다른 시작을 알리기 전에 자명을 단속하라고 이르게 됩니다.
자명이 호동의 곁에서 어정거리다간, 자신을 닮은 라희의 그 마음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어서가 아닐지. 
 









*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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