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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페셜 : 습지생태보고서) 그래도 빛나는 너는 청춘이다

도희(dh) 2012. 6. 6. 15:06


~ 드라마 스페셜 : 습지생태보고서 ~
<<그래도 빛나는 너는 청춘이다>>


* 작품정보

  • 제목 : 습지생태보고서
  • 극본 : 한상운
  • 연출 : 박현석
  • 출연 : 성준, 김창환, 정영기, 이재원, 구은애 外
  • 방송 : 2012년 6월 3일
  • 기획의도 : 88만원 세대의 비루한 일상을 경쾌한 터치로 담아내 반향을 일으킨 동명 만화 습지생태보고서(최규석) 원작




인간 생태계를 피라미드로 치면 우린 맨 밑에 있다.
생태 하위종의 남루함이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결핍마저 개그로 승화하는 뻔뻔함이 있어야 사는 게 쉬워진다.

하지만, 하위종의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은 느닷없이 오기 마련이다.

 


내가 나쁜 짓 한거냐?
남들 다 하는 연애 한 번 해본건데, 뭐 이렇게 어렵냐.




그럼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니들만 감정 있고 나는 감정 없냐?
 나는 뭐 눈치보고 사과하고 고마워하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1>
세상은 냉정하다.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알바로 인해 장학금을 놓친 규석은 종친회에 장학금을 부탁하지만 이사장은 그런 규석의 사정에 동정의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종친회 장학금이 안될 것 같아 알바하는 주점에 돈을 빌려보려고 하지만 사장은 사채를 권한다. 비만 오면 물이 새는 방을 세준 주인은 더없이 뻔뻔할 뿐이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에게 인정을 베푸는 아량따위는 없다. 그런 아량은, 이야기 속에나 등장한다는 듯이. 그런 동정을 구걸하고 받기 전에 그저 살아가라 말하는 듯 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비참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남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결핍마저 개그로 승화하는 뻔뻔함으로 살아가는, 허세를 부리지만 결국 돈 앞에서 비굴해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은, 지치고 힘들었다. 그 것을 바라보는 나 또한, 그러했다. 한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는 갑갑함이, 지금의 내 현실을 보는 듯 겹쳐져서, 그 것이 너무나 와 닿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종친회에서 장학금 준대. 나 학교 다시 다닐 수 있어.

2>
세상은 냉정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고 그래서 한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아 갑갑하지만, 그 속에도 희망은 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내려 이 눅눅한 습지 위를 어찌 걸어야할지 모르는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은 늘 존재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하위종의 정체성을 깨닫게되는 굴욕적인 순간을 거쳐 종친회에서 장학금을 받게되며 규석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욱한 마음에 집주인에게 대들며 그 집을 나와야했던 그들은, 소개팅을 댓가로 일주일간 머물 수 있게된 삐까번쩍한 규석의 친구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다. 상처 뿐인 소개팅이었지만 그 덕분에 임시거처를 얻게된 것이었다. 버스로 3시간이라는 거리가 부담스럽지만, 저렴한 가격의 단독주택, 게다가 교수가 작업실로 쓰던 곳이라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구비된 그들의 보금자리도 구하게 되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쨍하고 해가 뜨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한줄기 빛으로 그들은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세상을 또 한걸음 내딛을 힘을 내게 되었다. 그 한걸음이 무겁고 힘들고 눅눅할지라도, 다음 발걸음이 닿는 곳은 지금보다 조금은 나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하나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일까?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되었다는 말에 흘린 규석의 눈물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짠하더라.




참,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저는 최규석 입니다.


3>
규석은, 자신들을 인간 생태계 피라미드로 치면 맨 밑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보다 밑에 무언가가 있길 바랬던 것 같다. 내가 조금은 우위를 차지하고 강자가 되고싶은 마음, 이라고 해야할까? 함께 일을 하게된 외국인 노동자가 규석에게 그런 존재인 듯 했다. 사회적 편견과 무시가 그의 무의식에 깔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통성명도 하지 않고, 말도 섞으려 하지 않고, 그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무시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규석은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글쎄, 규석이 내민 손이 무엇을 의미할까? 내가 겪음으로서 상대의 처지를 조금은 알게된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처음의 생각 그리고, 내가 내민 손이 이 사람에게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세상은 냉정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아직, 인정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가 지금의 생각이다. 처음 생각한 것과 지금 생각하는 지점이 조금은 어긋났지만 결론은 맞닿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처음이 있기에 지금이 있는 것 같고.




어른들 말대로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사는 걸까?
닳고 닳은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도망이 아니라 선택일 순 없는 걸까?
패배할 것이 두려워 출발선에 서기를 피하고 있는 걸까?
아님, 그저 어른이 되는 날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걸까?

불안한 눈빛으로 친구의 연봉을 묻거나 부동산 정보를 뒤적거릴, 어쩌면, 어쩌면 슬플 그날이,
한때는 이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했노라 자위할 기억을 만들고 있는 것뿐 일까?

세상 안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발을 빼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금,
그래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일까?

자기 안에 수많은 모순과 세상에의 두려움을 한가득 품고도
영문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외침은,
단지, 단지 어리석음 때문만은 아니기를,
언제고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이 때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정말로, 정말로 그러기를 바란다.




4>
그들의 삶은 비참하고 남루하고 구질구질하다. 쓰레기 봉투하나 사는 것이 아까워 몰래몰래 내다 버리고, 생수살 돈이 없어 학교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온다. 집구할 돈이 없어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의 지방에서 등하교를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아마 내일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이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쨍~ 한 희망이 아니라,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작은 빛줄기 한자락일 것이다. 아마 내일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또 내일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만약, 내일 그럴지 몰라도 모레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뭐 그런.

그들의 삶은 이어지고 그들이 살아갈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않고 세상은 냉정할 것이다. 닳고 닳은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정말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자기 안에 수많은 모순과 세상에의 두려움을 한가득 품고도 영문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외침은, 단지 어리석음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5>
쨍~ 하니 해뜨는 거창한 희망이 아닌,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빛줄기여서 좋았다. 그 것이 현실이니까.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죽으란 법이 없는 것이 산다는 것이니까. 오늘이 지옥이고 내일도 지옥일 것 같지만, 그 내일은 지옥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니까. 조금 빙 둘러갈 뿐, 결국 목표가 있다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산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그들이 빛났다. 그들에겐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고 목표가 있고 친구가 있었으니까. 길이 좀 멀고 험해서 빙빙 둘러가야 하겠지만 그 길을 함께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까. 무엇보다,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을 아군으로 둔 그들의 이름은 '청춘'이니까. 그 것이 못내 부러웠나보다. 그 것이 너무 눈부셨나보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 한줄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