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소설

소설)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진주 지음

도희(dh) 2017. 2. 6. 00:45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진주 저 / 신영 미디어

 

 

 


 

 

0.

 

작년 8월인가- 구입을 해놓고 이제야 읽었다. 읽는 내내, 다 읽은 후에, 내가 왜 이 소설을 이제야 읽었을까,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처음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종종 들르는 커뮤니티에서 추천글이 자주 올라와서. 그리고, 결국 구입한 것은, 구입 직전에 읽은 소설 때문이었다. 상당히 잔잔하고 담백한 소설이었는데, 이런 류의 소설을 찾던 중 이 소설이 떠올랐던 것 같다. 그렇게 반은 즉흥적으로 구입해놓고 여태 랩핑조차 뜯지 않았던 것은, 어쩐지 손이 안가서였다.

 

그러다, 얼마 전, 역시나 구입하고 한참동안 손도 안대던 소설을 다 읽어낸 후, 뭔가 더 읽고 싶던 찰나, 이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또 며칠을 벼르고 벼르다, 일요일 새벽, 읽어내려갔다. 정신없이, 때론 키득거리고, 때론 설레여하며, 날이 밝는 것도 모른 채. 너무 졸려서 너댓시간 자고 또 온종일 읽은 끝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1. 

 

강요되지 않은 의무를 어깨에 짊어진 채, 지난 12년을 앞만 바라본 채 살아냈던 희수는, 엄마의 집장만과 동생의 결혼으로 그 의무를 어깨에서 내려놓게 된다. 짐을 내려 놓으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으나, 목표를 잃은 삶은 무기력했다. 누구의 누나, 누구의 딸, 이 아닌 신희수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기위해 회사를 관둔 희수는 앞이 보지지 않는 막막함과 아득함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된다. 

 

그런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처음엔 단골 두부 가게에서 종종 스치곤 했던 남자였다. 검정색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온화하고 착실한 느낌의 얼굴을 한 남자. 주부들이 주로 모이는 두부 가게에서 확실이 튀는 그 남자에게 눈길이 갔고, 궁금했고, 그렇게 약간은 의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딱 그 정도. 그 정도의 관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는 그 남자가 희수를 빤히 바라보게 된다. 처음엔 얼굴에 뭐가 뭍었나, 옷이 이상한가, 당황을 했다.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빤히 바라만 보는 그 남자가, 희수는 신경쓰였다. 의식하게 되었다. 그 감정은 마치 학창시절 짝사랑을 했던 그 시절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담아 애청하는 라디오 '뮤직 트리'에 사연을 보내게 된다. 디제이는 그녀의 고민을 진지하게 상담해주며 응원을 했고, 그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하려는 그 순간... 그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반가워요, 5466 신희수씨."

 

 

세 번의 우연이 반복된 인연. 감전된듯이 첫눈에 반한 것도, 절절한 애정이 깊은 것도 아닌,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그 관심의 이유을 알아기로 하며 시작된 연애. 봄날의 꽃을 좋아하는 서른셋의 은세와 봄날의 꽃을 닮은 서른둘의 희수, 그렇게 감성이 촌스러운 두 사람은 진지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며 서서히 스며들듯 그 감정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이 연애를 하는 모습은, 이쁘고 또 귀여워서 슬핏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키득거리는 웃음이 나기도 했다.

 

희수의 방황, 그리고 은세와의 연애. 은세와의 연애를 통해 퇴사 후 처음 웃음을 찾게된 희수는 조금씩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이던 은세는 희수를 통해 많이 웃게 되고, 희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이고 조언을 해준다. 그 세심함과 신중함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며 존중하고 이해하고 노력하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참 이뻤다.

 

 

다행이다. 마음이 빛 바래지 않아서. 심장이 둔해지지 않아서.

 

-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P. 153 -

 

 

 

2.

 

목표를 잃은 후, 방황하게 되는 희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막연히 계획을 세운 희수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고, 여행정보를 꼼꼼히 수집해서 정리를 하고,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회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막연한 계획은 연인 은세의 조언과 지지로 인해 구체적으로 실행된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희수와 은세의 연애가 좋았다.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을 하는 그들이 너무 이뻐 내내 미소를 지었다. 흔하고 뻔하고 질척이는 갈등 없이 그저 연애하며 사소한 오해를 통해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화해하고 그렇게 살며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이 예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자 하는, 남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을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리고, 위로.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 단어를 가슴에 품었다고 한다. 작가가 위로를 받은 키워드는 극의 중요 키워드가 된다. 그 키워드들이 모여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소설은, 소설 속의 이야기는, 사소한 위로가 되어 내 마음을 간지럽히고, 내 마음을 다독여준 것 같다. 희수는 자신이 평범하다고 하지만, 은세의 말처럼 희수는 특별했다. 내면 자체가 특별한 사람. 희수가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은세의 존재 그리고, 그녀의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특별함은, 그녀가 그동안 성실히 열심히 살아오며 만들어낸 그 무엇이기도 했다.

 

 

그 포도알 모으기, 엄청 열심히 했었어요, 난. 

숙제도 열심히 하고, 발표도 열심히 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포도알 얻는 건 정말 힘들고 지겨웠지만,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거든요. 

 

은세 씨랑 이렇게 같이 있으면 색종이 포도알 모으던 시절이 생각나요. 

지금까지 열심히 모은 포도알로 포도나무를 가득 채워서 선물을 받는 기분이에요.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허무하지 않을 만큼 좋은 선물이에요, 은세 씨는. 

그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P. 184 -

 
 

희수는 은세와의 만남을 선물이라고 했다. 포도나무에 포도알을 가득 채워서 받은 선물.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살아온 선물. 나는 이것이 그녀가 특별한 이유였던 것 같다. 가족과 우정과 사랑에 신의를 지키는 사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나는 그런 희수가 좋았다. 은세와 그녀의 친구들이 희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자아찾기와 연애를 응원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은세를 만나 연애를 하고,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았다. 

 

아아, 내가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희수가 좋았기 때문인가보다. 그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좋았나보다. 그 속에서 보여준 은세와의 연애도. 그 속에서 나는 사소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신은 늘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희수 씨는 내가 지금껏 봐 온 그 어떤 사람보다 특별해요. 그건 다른 무엇도 아닌 '신희수'란 사람의 내면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특별함이기 때문에 희수 씨가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삶을 살든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 특별함이 변하지 않는 한,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변하지 않을 거구요.

 

-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P. 432 ~ 433 -

 

 

 

3.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덮은 후에도, 너무 설레여서, 너무 좋아서, 참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렇게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참 좋다. 이렇게 함께하며 서서히 물들어가는, 스며드는, 연애를 잔잔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나간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읽은 로설들도 다 이런 류인 듯 하다. 

 

작가의 다른 소설은 어떨까. 이런 감성을 가졌을까. 당시 작가의 대표작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도 같이 구입했는데, 바로 읽어야하나 조금 시간을 둬야 하나 고민 중이다. 만약, 사사생까지 취향을 저격한다면 다른 책들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원래, 한 작가에 꽂히면 그 작가의 책만 열심히 읽어대는 편인데, 과연 이 작가도 그러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좋았던 장면들에 대해 좀 주절거려 보자.

 

현충원에서의 첫 데이트가 좋았다. 울고있는 희수를 찾아가 이유도 묻지 않고 따끈한 순두부로 그녀를 위로해주는 은세가 좋았다. 남산에 올라가는 길 계단 끝에 주저앉은 은세와 그런 은세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같이 앉은 희수가 좋았다. 술을 잔뜩 먹고 주사로 홍대에서 여의도까지 손을 맞잡고 걷는 두 사람도 좋았다. 어느 날 아침 두부 한 모를 사들고 찾아와 밥을 달라는 은세에게 밥을 차려주는 희수, 그런 희수를 사진으로 남기는 은세가 좋았다. 자신의 팔을 베고 곤히 잠든 희수가 깰까봐 취향에도 안맞는 액션영화 한 편을 고스란히 봐버린 은세의 마음이 좋았다. 함께 직박구리 둥지의 아기새들을 보는 모습들이 좋았다. 그 아이들이 행여나 비에 맞을까 나뭇가지에 우산을 걸어놔주려는 희수의 마음과 그런 희수를 위해 직접 우산을 걸어준 은세가 좋았다. 꽃이 잔뜩 프린트된 우산을 펼치는 희수와 그런 희수를 바라보는 순간 사랑에 빠질 것을 예감하는 은세가 좋았다. 희수와 어머니의 관계가 걱정되어 무작정 대구로 내려온 은세가 좋았다. 희수의 여행이 가진 의미를 알기에 누구보다 응원해주는 사람으로서의 사랑을 보여준 은세가 좋았다. 희수의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은세가 좋았다. 희수에게 무성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은세의 마음이 좋았다. 정류장을 떠올리게 하는 희수의 마음이 좋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은세가 희수에게 준 선물,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좋았다.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피는 봄날의 꽃을 좋아하는 은세와 그런 봄날의 꽃을 닮은 희수의 연애가 무엇보다 좋았다.

 

잔뜩, 더, 있는 것 같다. 희수의 서울살이 마지막 날, 무작정 들어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밥을 해주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세간살이를 가져와 기어코 밥을 해서 먹이는 은세가 좋았다. 쓰다보니, 희수가 참 좋았다고 하면서도, 결국 은세가 좋았던 점이 더 많은 것도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보다.(ㅋ) 어쨌든, 은세가 희수에게 참 잘했으니까. 그러고보면 희수는 참 많이 받았구나. 이렇게 많이 받으면서도 그 마음을 직접 듣지 못해 오해하고 힘들어하기도 했다지. (...) 아, 은세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반응하는 너무나 솔직한 희수가 좋았다.

 

오랜만에, 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껄, 이란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순간 순간, 머리 속에 펼쳐지는 그림들이 너무 이뻐서. 이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홍대에서 여의도까지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이라던지, 한강 둔치에서 기타치는 은세와 그것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희수라던가, 직박구리 새둥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라던가... 등등. 

 

또, 이야기 내내 비를 머금고 있었다. 그 여름의 장마철에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희수가 방황하는 내내, 그렇게 은새와의 연애가 행복하면서도 약속되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는 그 시절, 내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고 말로서 표현하고, 그렇게 희수 인생의 제 2막이 내리던 날, 장마는 그쳤고 햇빛이 쏟아졌던 것 같다.

 

 

그리고 찬란했다. 풍경도, 은세의 미소도, 그리고 가슴 떨리는 이 사랑도.

 

-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P. 234 -

 

 

4. 

 

라디오. 요즘 라디오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러나, 감성충만한 새벽 라디오는 듣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은세는 그 감성 충만한 새벽 라디오 디제이다. 그리고 챕터와 챕터 사이에 라디오 사연과 디제이의 코멘트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선곡이 있어 마치 라디오를 읽는 느낌이다. 처음엔 챕터 마다 한템포 쉬며 사연을 읽고 선곡을 찾아 들었다. 결국 뒷이야기가 궁금해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래도 선곡표는 따로 써두었다.

 

라디오. 그러고보니 라디오를 주제로 한 또 다른 소설도 있었다. 사서함-. 이 소설도 좋았지. 문득, 순간, 떠오르곤 했던 것이 라디오라는 매개체 때문인 것도 같다. 그리고 또 문득, 라디오를 소재로 한 드라마 한 편, 내내 쟁여두고 미뤄둔 그 드라마를 봐야할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좋은 구절도 많았는데, 체크를 하지 않아 쓰며 찾기가 힘들다. 차근히 한번 더 읽으며 좋은 구절은 따로 메모를 할까, 라고 생각하지만, 늘 생각을 현실로 이루진 못한다. 언제쯤, 다시, 읽게 된다면- 의 일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여전히 설레이고 좋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는 살아온 날들이 후회되어도, 살아갈 날들이 두려워도 씩씩하게 현재를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p. 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