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읽담

요즘 읽고있는 소설 - 해의 그림자

도희(dh) 2013. 4. 5. 05:25
-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中 -

 

지난 주 내내, 문피아에서 연재되는 소설 <해의 그림자 / 김은파>를 읽었다. 현재, 80회까지 연재 중.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이 많은 글을 어느 세월에 다 읽나, 싶었는데 .. 틈틈히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연재주기가 일정치 않은 듯 싶어 틈틈히 들어가서 확인을 하는데, 이번 주에 무려 두편이나 올라와서 괜히 설레이기도 했더랬다.

소설 <해의 그림자>는, 신권에 휘둘려 왕권을 위협받는 유약한 왕 현종을 아버지로 둔 나이 어린 세자(훗날, 숙종)가 왕권을 흔들고자 하는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세력에 대한 반감을 갖는 과정, 그리고 의문스러워 더 한이 맺혀버린 아비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열네살의 나이에 보위에 오른 소년왕이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그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정적을 제거해나는, 정치적 행보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그려나가는 이야기다. 이 정치이야기에 덧입혀, 우연히 발견한 비밀서고를 통해 그가 믿는 몇 안되는 이들과 함께 한글의 비밀을 풀어나가며, 한글의 위대함과 우수성, 그리고 한글을 통한 왕실의 권위를 세워나가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려지고 있었다.

자존심 강하고 제멋대로여서 어디로 튈지 모를 성격에 다혈질에 뒷끝도 질기고 은근 아니 대놓고 질투심도 강한데다가, 신하들에게 왕권을 위협당해 늘 위태롭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에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숙종이라는 캐릭터가 그저 '멋있다' 라며 하트를 그릴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독하고 뒷끝 질긴 성격을 가졌기에, 송시열을 배후로 두고 왕권을 뒤흔드는 서인세력에 눌려 힘없이 당하고만 살다 의문사한 아버지 현종에 대한 안쓰러움과 연민이 결국 그들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고 그 분노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긴 했다.

특히, 송시열에게 직/간접적으로 당하며 그를 향한 어마무시한 반감을 가진 소년왕이 즉위 후 가장 먼저 그 송시열을 쳐내는 장면은 나름의 통쾌함도 있었다. 세자시절 송시열에게 당하는 모습들이 그려지는 장면들을 읽다가 내가 다 욱해버려서, 송시열에게 응징하는 것 - 역사적 사실 덕에 즉위 직후 1차적 응징이 있으리란 걸 알았기에 - 을 보기위해서라도 이걸 후다닥 읽고 말겠다, 뭐 그런 심리도 있었달까? (그 즈음 읽던 당시, 하루 온종일 맛폰으로 글을 읽은지라 눈이 침침해서 그만 읽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기위해서 억지로 눈뜨고 다 읽었..;;)

14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그 질긴 뒷끝으로 송시열을 유배보내고 서인세력을 하나 둘 제거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열네살의 소년왕이 할 수 있는 걸까, 그 뒤에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긴 하지만.. 일단, 소설은 소년왕의 판단으로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의 설정은 천재형 캐릭터라고 해야하나? 그러고보니, 이 소설에는 천재형 캐릭터가 몇몇 등장하기도 하고. (작가가 천재형 캐릭터를 좋아하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현재 읽는 부분의 숙종은 열여섯살. 어리기에 겁이 없고, 그렇기에 대담하게 노련한 대신들을 쪼물딱거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담함을 차근차근 키워 성인이 되어서 더 강력한 왕권을 위해 여인들을 앞세운 피의 정치를 하게되는 듯 했고.
 

- 드라마 '대왕세종' 中 -

 

물론, 고집세고 다혈질에 뒷끝이 엄청 질긴 소년왕의 정치적 행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의 아내인 진홍(인경왕후)과의 풋내나는 로맨스를 전개하는 중이기도 했다. 중전인 진홍에게 첫눈에 반했음에도 서인의 딸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마음을 내어주지 못한 채, 그 주변을 서성이며 자꾸 신경을 쓰다가, 스스로도 모를 감정에 질투하고, 같이 있고싶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함께 하다가, 괜한 오해로 자신의 곁에서 밀어내는 등등, 그렇게 모난 행동과 설레이는 행동을 반복하며 구중궁궐에서 어디하나 마음 의지할 곳 없어 점점 지쳐가는 진홍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 무려 78회까지 반복되었다. 78회까지의 상황은, 궐 안팍의 모두, 심지어 왕의 최측근 및 중전 자신조차도 왕이 중전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게끔 상황을 만들어놓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공식석상에서 나는 무조건 중전 편, 이라는 무언의 행동을 보이며, 모두(중전 제외. 중전은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심신이 지쳐있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중이었다. 아, 왕 자신조차 자신이 왜 그렇게 오락가락 하는지 잘 모르는 중이기도 했고;

대충 글로 쓰다보니 굉장히 짜증스러울 것 같은데, 사실 진홍과 왕이 함께하는, 그리고 왕이 진홍을 생각하고 지켜보는 씬들은 어느정도의 설레임이 있어서 그저 풋풋하네, 라며 봤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사실로 인해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 그만 엇갈리고 서로를 바라봐! 라는 마음이 들어 안타깝기도 했고. 아무튼, 긴긴 78회동안 내내 엇갈리는 그들의 마음을 보면서 내가 기다린 것은 성균관 입학례 때의 인연을 왕이 언제아는 것인가! 였는데.. 그 부분이 79회에 드디어 밝혀졌다. 그 인연의 비밀이 풀림으로서 앞으로 유일하게 믿고싶으나 믿을 수 없었던 진홍을 이제 완전히 믿게되는,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건네주게 될 왕의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다. 그렇게 믿고싶다. 그로인해, 이제 슬슬 합방도 하겠구나, 등등. 이 합방문제로 근래들어 진홍이 속도 꽤나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 드라마 '해를 품은 달' 中 -

 

진홍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서인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남인인 상선 서후행의 음모에 걸려, 입궐 직후부터 엄청난 오해를 받게된다. 그로인해, 궐 내에 있는 모두의 미움을 사버린 탓에 움츠려든, 진홍이 가여웠다. 그렇게 하나 둘 쌓인 오해는 무엇 하나 풀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만큼 켜켜히 쌓여가는 상황에서, 그로인해 혹은 다른 이유로 궐 내에서 무시당하고 핍박당하는 진홍의 모습이 내내 안쓰러웠고 또 지치기도 했다. (아마도 입궁 당시 서후행으로 인해 생긴 오해는, 진홍이 죽은 후에도 절대 안풀릴 듯 싶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오해의 진상이 진홍과 연관되어 있는 걸 보면.. 그 족쇄가 결국 그녀의 운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현재, 소설 속 진홍의 나이는 열여섯살. 더이상 어린 아이일 수 없는 조선의 국모이기에, 이젠 당당히 어깨를 펴고 제 목소리를 내며 국모로서의 위엄을 보였으면 싶었다. 왕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 감히 무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한껏 움츠려들어, 더이상의 미움을 받기싫어 그저 왕의 뜻대로 정치에 관심조차 두지않고 존재감도 지운 채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대비는 중전더러 정치에 관심을 안갖는다고 구박하며 세뇌교육 시키는 중이고, 중전은 묵묵히 거부하는 중. 그렇게,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진홍이ㅠ) .. 열넷의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끝없는 노력 끝에 거침없는 정치력을 보이며 노련한 신하들을 쥐락펴락하는 숙종과 달리, 그저 제자리에 맴돌며 자신의 권리를 챙기기는 커녕, 의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게 제자리를 맴도는 진홍이 그저 답답해지는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든 더디게 알아가고 배우지만 결국은 익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아이이고, 자신이 옳다 여기는 신념에 있어서는 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진홍이기에, 곧 제자리를 찾고 궐의 안주인으로서의, 조선의 국모로서의 위엄을 보이게 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계기는 오래된 비밀이 밝혀지며 왕의 그늘 아래서 당당히 보호받게된 것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하겠지만, 그 전에 그녀 스스로 꼭 지켜야할 것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왕의 오해로 목표를 잃고,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진홍 앞에 나타난 어린 우희를 지켜내겠다는 목표가, 국모로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되지않을까, 싶었달까? 진홍은, 유순하고 더디지만 숙종에 뒤지지않을 고집과 끈기와 뚝심이 있는 아이니까. 시작을 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위해 끈기있게 노력할 것이고, 이뤄낼 아이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너무 짧아, 그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앞으로 4년. 남은 삶동안 보여줄 진홍의 모습이 기대된다. 6년간 맑은 이슬을 품은 채 웅크리고 있던 꽃봉우리가, 남은 4년간 얼마나 아름답게 활짝 피어날지, 그 꽃같은 모습, 그 모든 것이 결국 속종의 가슴에 또 하나의 한으로 깊이 각인되어, 피의 정치를 하게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왕권이 가장 중요하고, 자기애가 강한,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인 숙종이란 캐릭터가 그저 사랑을 잃었다는 이유로, 여인을 앞세운 피의 정치를 하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진홍이 죽을 즈음엔 이미 그녀는 숙종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이기에, 그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설정은, 역병으로 죽게되는 진홍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할 듯 싶었으니까. 80회에서 그려진, 숙종 일행이 우연찮게 엿듣게된 신하들의 대화가 복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듯 싶기도 했고. 그리고, 그 죽음은 효종과 현종처럼 넌즈시 너울을 씌워서 표현하겠지.. 벌써부터 홀로 쓸쓸히 죽어갈 진홍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해서 맘 한켠이 저릿해져온다.



- 드라마 '대왕세종' 中 -

 

덧1)

작가의 전작인 <천지인>은, <해의 그림자> 뒷 이야기. 그러니까 인현왕후 사후부터 숙종 말년까지가 그려지는 소설이다. 숙빈 최씨에게 어떤 비밀을 씌워서, 희빈 장씨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비밀스레 그렸고, 그래서, 희빈의 죽음이 색다르면서도 뭔가 마음에 남았다.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며 그 비밀을 알아내고, 죽기 직전, 아들에게 그 비밀을 위한 힌트를 남기고 죽어가는. (숙빈 최씨는 두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천지인>은 아직 제대로 읽지는 않았고 대충 훑어본 정도. 마지막회만 정독해서 읽었는데.. <해의 그림자>에서 패기넘치다 못해 날카롭게 세운 발톱에서 독기가 흐르는 소년왕을 보다가, 삶의 끝을 바라보는 발톱이 무뎌진 노회한 늙은 왕이 쓸쓸한 뒷모습이 그려지는 <천지인>의 엔딩을 보니.. 마음 한켠이 쌉싸름 해졌다. 뭐랄까, 드라마 <대왕세종>을 차근차근 열심히 보던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던, 뭐, 그런, 감정. (극 후반, 아들 세자(문종)와 정치적 이념을 두고 대립하는 세종의 모습에서.. 아버지 태종과 정치적 이념을 두고 대립을 하던 어린 충녕, 청년 충년, 젊은 세종이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의,)

아마, <해의 그림자>가 완결난 후에나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겹치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혼란스러울까봐; 근데, 이 소설은 과연 어느 시점까지 그려내려나? 아, <해의 그림자> 라는 의미는, 대충, 왕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뜻을 받드는 이들을, 혹은, 왕의 명을 받고 그들이 받드는 뜻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사실 잘 모르겠음.. 그런 의미까지 생각하지 않아서;;)



덧2)

멋있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숙종이란 캐릭터 때문에, 다음 주에 첫방송할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은근한 관심을 갖게되었다. 일단, 그 드라마 속 숙종은 기존의 드라마 속에서 그려졌던 치마폭에 쌓여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숙종과 달리, 강력한 왕권을 집권한 절대군주로 그려진다고 하니 말이다. 요 부분이 궁금해서 보고싶다. 물론, 요근래 숙종과 진홍(인경왕후)의 풋풋한 로맨스에 간질거리는 입장으로서 장옥정과 숙종의 운명적 로맨스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런지 걱정.. 이긴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 게다가, 재밌으면 거기에 또 낚여서 보는게지;; (ㅋ) 그래도, 자그마한 바람이 하나 있다면, 숙종을 비극적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이 아닌, 강력한 왕권으로 집권한 절대군주였던 숙종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냉혹한 정치사극이 한번쯤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숙종시대가 너무 많이 그려져서, 그리고 기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덧3)

읽다가, 또 뭔가 꽁기꽁기 주절주절 거리고 싶으면 리뷰를 빙자한 잡담을 또 쓸 예정이다. 그런데, 언제 또 쓸지는 미지수. 왠지, 진홍의 죽음 즈음에 울컥해서 주절주절 거리지 않을까, 싶다. ...아, 벌써 생각만해도ㅠㅠ



덧4)

매우 오랜 만에, 눈 앞에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 듯 읽은 소설인지라, 넋두리가 길었다. 이렇게 긴줄 몰랐는데, 쓰고나니 한가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