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착한남자 17회) 돌아온 여자, 기다리는 남자, 엇갈린 마음

도희(dh) 2012. 11. 8. 12:42

은기는 거짓말을 하고있다. 나를 믿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나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고,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은기가 가려고 마음먹은 길을 난 알지 못한다.
어떻게 그 길을 가려는 건지, 그 길을 가서 어쩌려는 건지, 난 알지 못한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가려고 하는지 물어봐도 은기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놓고간 사고기록이 담긴 봉투를 통해, 흐릿했던 그 순간이 뚜렷해졌고 그렇게 은기의 기억이 돌아왔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무엇을 놓아버리고 무엇을 잡고있는지 모른 채, 은기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리고, 기억이 지워진 동안 그녀가 믿고 의지한 이들이 그녀에게 했던 거짓을 가장 먼저 깨닫게된 은기는, 돌아온 기억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위한 거짓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기억이 지워진 백지 상태에서 그어진 그들의 말은 그녀에게 진실이었기에, 그녀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분노하고 경계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왔음을 마루에게 알리지 않은 채, 맑은 미소로 행복을 말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은기는, 그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들의 숨통을 조여가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있었다. 아니, 어쩌면 유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행복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 누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무의식이. 그래서,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를 향한 나의 분노가 오해이기를. 그 한마디만 있다면 믿고싶을지도 모르겠다.

은기는 왜 마루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그 것은, 은기는 왜 마루를 향해 돌진했을까...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지않나, 싶었다.

자신의 사랑을 되찾기위해 나를 이용한 마루에 대한 분노, 그런 마루를 향한 사랑에 눈이 멀어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나를 향한 분노. 기억이 지워진 그 시간동안 거짓된 사랑으로 자신을 발판삼아 여전히 복수가 진행중(이라 은기는 생각 중일 듯. 은기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고, 지워진 기억 속에서 채워진 마루와의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그의 진심을 곱씹기엔... 쏟어져나오는 기억과 분노가 은기의 이성을 마비시켰을지도 모르니까)인 마루를 향한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감당하기가 버거워 모든 분노를 마루에게 쏟아붓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거짓이라 단정지으면서도 어쩌면 믿고싶었을 그 무엇... 은, 결국 1년전과 마찮가지로 반토막 엿듣기로 어긋난 마음이 더더욱 완전히 어긋나게 되어버린 듯 하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아는 건, 그 길을 가는 은기 옆에 어쩌면 난,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은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은기는 내가 알던 예전의 은기가 아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버린걸까?
무엇을 놓아버리고, 무엇을, 잡고있는 걸까?

 

친구와 동생과 연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하고 신기한 꿈. 눈을 뜨면 깨질 꿈같아서 쉽사리 눈을 뜨지 못하는, 더 욕심내지도 바라지도 않을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마루는 ... 스스로 그 행복을 깼다. 은기의 흐릿한 기억을 또렷하게 해줄 사고기록을 그녀에게 보냈고 결국, 그녀는 기억을 되찾았다.

기억을 되찾았음에도 거짓된 맑은 미소를 지으며 행복을 말하는 은기를 보며, 마루는 방관자가 되어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길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가려는지,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원하는 길이니 그저 지켜보며 결국 그녀가 닿아야만 하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청소'를 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가고자 마음먹은 길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없기에 그는 그의 길을 조용히 걷고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마루와 은기를 지지해주는 듯한, 그래서 은기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결국 신뢰를 잃은 박변(아마, 마루와 은기, 본인들도 잘 모르는 진심을 아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한)은 은기의 기억이 되돌아오길 바라면서도 사고의 순간을 조작했다. 어쩌면, 마루또한 그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루는 이 행복이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행복의 끝을 앞당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마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지같은 세상을 꾸역꾸역 살아야만했던 이유였던 초코의 건강도 좋아졌고 그 곁에 재길이 있기에 한시름 놓았던 것과 달리,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은기가 얼른, 하루라도 빨리, 모든 기억을 되찾고 홀로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자신으로 인해 잃었던 모든 것들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 그래야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히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마루가 기다리는 은기가 돌아왔다. 그럼에도 마루가 기다리는 은기는, 거짓 뒤에서 숨박꼭질하는 은기가 아닌 거침없이 솔직하고 당당했던, 서은기가 아닐까... 싶었다.

은기는 돌아왔지만, 난 아직도 그아일 기다린다.
절대 지치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고.

은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 아일 기다린다.
절대 지치지도 않고, 조급해 하지도 ... 않고.

 

마루와 재희의 관계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오해 속에서 마루와 자신의 결혼식날 마루와 재희의 스캔들을 터뜨리는 것으로 나름의 복수를 하고있었다. 그리고, 절대 지치지도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고, 은기를 기다리겠노라던 마루는, 자신을 향해 뻗어야할 복수의 칼날이 결국 은기 자신에게도 함께 향하고, 그렇게 마루 뿐만이 아닌 은기 스스로까지 상처를 입히는 것을 더이상 두고볼 수가 없었기에 방관자의 위치에서 내려와 거짓이나마 유지되었던 '연인'관계를 깨트렸다.

은기의 기억이 돌아왔다. 은기는 마루에게 거짓말을 한다. 마루또한 은기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알고있다. 마루는 은기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거짓으로 유지되던 관계는 은기가 뽑아든 복수의 칼날로 인해 마루를 자극했고 마루는 거짓을 벗어던졌다. 그렇게, 은기의 패는 마루로 인해 펼쳐졌다.

은기의 복수는 자칫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녀가 뽑아든 칼날이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완전한 공감을 할 수가 없다. 아마, 재희를 향하고, 마루를 향하면서도 은기 자신을 향해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패가 다 펼쳐진 상황에서 은기의 칼날은 정확히 재희와 마루를, 아니 더 정확히는 마루를 향할 수 있을까? 마루를 향해 칼날을 뻗을 수록 은기 스스로를 찌르는 것은 아닐까...?

 

 

 

*덧*

1) 이 드라마가 한시간 내내 이렇게나 쫄깃하니 재미있을 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17회.

2) 재희가 마루의 집을 산 것은 '돌아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추워서' 그 집을 찾은 재희는, 보일러 빵빵한 현재의 집보다 마루가 살던, 이제는 텅 비어버린 그 집이 더 따뜻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마루를 향한 재희의 집착은, 돌이킬 수 없는 가장 순수했고 그렇기에 행복했던 시절의 그리움이 아닐까...

3) 욕망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추위를 느끼며 마루와 함께했던 따뜻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재희, 기억을 잃은 채 과거에 머무르다가 이제 기억이 돌아왔음에도 멈춰진 시간 속에서 맴돌며 복수를 다짐하는 은기, 재희라는 과거에 얽매여 은기를 만나고 미래를 포기한채 이젠 은기라는 과거에 얽매어 오늘을 헌신하는 마루...그래서 어쩌면, 오프닝의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어제, 돌아갈 수 없는 그날, 그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 남녀는 오늘을 살지만 어제에 갇혀있다. 내일을 향해 걷지만 사실은 어제를 돌아보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듯도 싶었다.

4) 거짓말씬... 이 장면 너무 좋았다. 거짓말, 하는데 내 심장이 덜컹. 마루가 속으로 내뱉은 거짓말. 그 말은 은기의 말을 향했으면서 이제 자신이 내뱉을 "결혼해서 오래오래 건강하고 오래오래 아껴주고 오래오래 행복하자" 라는 말을 향한 중의적 표현처럼 느껴져서 더 가슴이 아팠다. 조금 더 후의 일까지 하면, 지금의 은기는 모르지만 훗날 마루가 했던 그 거짓말 속의 거짓말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면... 은기의 마음은 또 얼마나 무너질까, 라는 생각도 잠시.

5) 박변님.... 은기는 박변님의 거짓말을 알고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 눈물이 툭- 떨어지는 그 장면이 너무 인상깊었다. 은기를 향한 박변님의 깊고 깊은 마음이 느껴졌달까?

6) 드라마 끝나는 순간... 안돼! 라며 버둥버둥. 끝나면 살짝 쿵- 거리긴해도 다음회를 어떻게 기다려, 라며 버둥거리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 회차는 정말 '오늘이 수요일이라 다행이야'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예고가 있어 근근히 버티지만... 아마, 오늘 18회차는 예고가 안붙겠지?(ㅠ)

7) 은마루... 먹먹하다. 얘들 정말 내내 엇갈리고, 겨우 마주하면 또 엇갈리고... 불안하긴한데... 제발, 마루 죽이는 결말이 아니길;; 작가님 전작들로 인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8) 추워져서 그런가,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있어 그런가, 미사가 생각나는 근래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파일도 소장하지 않았거니와 있다해도 딱히 복습할 엄두는 안난다. 무지 재미나게 보긴했는데... 결말이 먹먹해서... 자신이 없다. 이거 본방으로 볼때... 중반 넘어서며 엄청 기빨리며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중. 지금 다시보면 그때완 좀 다른 감정으로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