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나인 18회) 모두가 행복해지는 희망의 완성 속에서 과거에 갇히다

도희(dh) 2013. 5. 12. 18:35

살아계셔서 기뻐요.
나도 기쁘다. 내가 전처럼 불행하지 않아서.

 

마지막 향. 남은 시간은 25분. 20년 전의 시간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선우는, 어린 자신을 구해주며 그의 손에 사건의 진실이 담겨있는 증거물을 들려 오철민에게 보냈고, 어린 정우에게는 본인 스스로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선택권을 쥐어줬다. 그리고, 젊은 오철민의 정의와 어린 정우의 선택은 현재를 또 한 번 뒤틀리게 하며 커다란 변화를 만들었다.

성공의 끄트머리에도 닿지 못한 최진철의 인생은 구질구질했고, 3년형을 구형받은 정우는 출소 후 속죄의 마음으로 전 세계에 의료봉사를 다니며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으로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영으로 돌아온 민영은 선우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가슴 벅찬 행복에 어쩔 줄 몰라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뒤틀린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은 또 한 번 뒤틀린 후에 만들어진 현재에 혼란스러워했으나 곧 그것이 자신의 인생인 듯 받아들이게 되었다. 단 한 명, 최진철은 나락으로 떨어져 구질구질해진 인생을 인정하기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분노하고 있었지만.

지난 20년의 시간이 뒤틀리며, 이젠 남편의 형이 되어버린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아버지와 이젠 동생의 아내가 되어버린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딸이 되어버린 정우와 민영은 부녀(父女)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며 현재의 시간을 받아들였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듯, 안도하는 마음으로. 이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으리란, 감사의 마음으로.

 

그래. 이래야 신이 공평한거지.
날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너만 잘 살 줄 알았냐? 이제 비긴 거야.

 

하지만, 향은 마지막까지 선우를 조롱했다. 약속된 시간이 끝났으나 선우는 여행을 끝낼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 속에 갇혀버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마지막 향은 편도였기 때문일까.. 향이 다 타기도 전에 시간이 뒤틀려버리며 시간의 문이 닫혀버린 것일까...?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인정하고 체념할 즈음, 분노에 가득 찬 젊은 최진철은 선우를 발견했고 분노에 못 이긴 선택을 했다. 그로 인해 선우는 시간 속에 갇혀 생사조차 확신할 수 없어졌고, 뒤틀린 시간 속에서 모든 걸 다 잃고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기억'만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될 최진철은 말했다. 이래야 신이 공평한 것이라고.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너만 잘 살 줄 알았냐고. 이제 비긴 거라고.

정말로 신은 공평한 것일까?
문득, 신의 선의보다 인간의 악의가 더 믿긴다던 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향이 마지막까지 나를 조롱한다

 

+ 그리고 +

1> 아마, 정우는 선우의 결혼식에 오지 않은 것이 아닌 오지 못한 것 같았다. 민영이 유진이 딸이기 때문, 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여전히 선우와의 관계가 서먹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이 뒤틀린 후에는 그 모든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뒤틀리기 전의 선우는 여전히 정우를 이해할 수 없었고 (20년 후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그의 말만 믿으며 행복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왔겠지) 정우는 선우에게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을 테니까. (뒤틀리기 전 자살을 선택한 정우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모든 걸 털어놓는 것으로 마음을 내려놓은 것일 테니;)

그리고, 모든 기억을 갖게 된 정우는 그제야 선우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곧 한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민영에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인생의 기억을 가진 정우는 유진이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가 궁금했을 테고, 자신으로 인해 아파했던 선우와 민영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을 테니까..

2> 향은 정말로 요물이었다. 대체, 선우의 삶은 어디까지 뒤틀리고 망가지는 것일까. 결말은 당연히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우의 죽음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차피 그는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향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끝없이 뒤틀리는 걸 보니.. 어쩐지 그의 행복한 모습이 보고 싶어 졌다. 또 한 번 뒤틀린 시간으로 인해 민영이 기억하는 선우의 행복한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아서. 선우가 향으로 만들어진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저 모습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등등. 이미 두 번이나 죽은 정우도 살아나서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 마당에.. 선우가 꼭 죽어야만 할까.. 등등.

3> 18회가 마지막 회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8회가 막회였다면 한참을 그 여운에 허덕이며 어쩔 줄 몰라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회 차가 더 남아서 몇 시간 동안 허거 덕거리다가 벗어났지만; 그럼 인남처럼, 19회와 20회에도 각각의 엔딩을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인 18회의 엔딩에서 인남 15회의 엔딩을 떠올리게 된 걸 보면 말이지. 그런 엔딩들을 통해서 원하는 엔딩을 선택해보세요~ 싶은? 인남의 경우는, 14/15/16회 각각을 엔딩으로 놓아도 되는 느낌이었던지라.. 나인도 그렇게 가는 게 아닐까.. 등등.

4> 다음 주가 마지막 회라서 참으로 다행이다. 아, 진짜..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너무 지쳐서 정신이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OTL) 그래도, 결말을 잘 지어줬으면 좋겠다. 시간여행을 통해 선우가 남긴 흔적이 변수가 되어 자꾸만 현재가 변형되는 현재에 대한 매듭 그리고, 시간이 뒤틀리기 전 히말라야에서 죽은 정우의 비밀도.

5> 죽음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세 번의 인생을 모두 기억하고 살아간다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뒤틀린 시간을 모두 기억하는 이들은 옳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신은 선의를 베풀어 그들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