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4,5회) 과거를 걷는 여자, 과거에 갇힌 남자

도희(dh) 2013. 2. 27. 12:19

과거를 걷는 여자, 영

 

이제와 자신을 찾은 오빠 수의 진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던 영이는, 엄마의 온실, 램즈이어(양의귀), 솜사탕, 강가, 물수제비 그리고, 날카롭게 뺨을 스치는 걱정이 가득 묻은 손길...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거짓된 진실과 마주하며 그리운 시절의 추억을 하나 둘 끄집어내게 만드는 수를 믿게되었다. 불신과 믿음 사이에서 믿음을 선택한 순간, 그 거짓된 진실에 대한 믿음은 눈꽃이 되어 영이의 마음에 닿았다.

그렇게 마음에 닿은 순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감정을 잃고 냉소로 가득찬 투정을 부리던 공주님은, 맑은 미소의 말괄량이 귀여운 어리광쟁이였던 21년 전, 여섯살 영이가 되어.. 그리움으로 물결치는 봉인된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달 전부터 잦아지는 두통. 몸의 이상을 온 몸으로 느끼며, 아무래도 뇌종양이 재발된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병원에 가야할지 말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서 만나게된 오빠, 수. 그녀는, 오빠와 함께하며 정리했다고 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너랑 지금처럼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겠노라고. 여섯살 영이가 되어 그렇게, 추억 속을 거닐며,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에 따뜻한 행복을 가득 채워서 죽고싶다고, 죽겠노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과거에 갇힌 남자, 수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순간, 수와 영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과 마주한 마음은 전혀 달랐다. 영이가 떠올렸던 순간은 자꾸만 곱씹으며 추억하고 싶은 행복이었다면, 수가 떠올렸던 순간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그래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힘겨운 아픔이었다.

사랑을 받고 자란 기억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열아홉의 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희주가 주는 끝없는 사랑을 제대로 받지도, 표현하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희주는 왠지모를 불안감 같은 걸 가졌던 건 아닐까, 싶었다. 또 그래서, 수의 아이를 갖게된 순간, 이제 수가 진짜 내 것이 되었다며 기쁨과 행복에 가득찬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열아홉의 어린 수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몸이라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이 무서웠고, 그래서 수를 너무 사랑하기에 수의 아이를 가진 것이 기뻐 그저 신나게 고백을 한 희주에게 모진 말을 해가며 붙잡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쫒아오는 그녀를 외면한 채 달아났고, 그렇게 눈 앞에서 그녀와 아이를, 잃었다. 그 날로 부터 기나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곁을 서성이며 아물 틈도 없이 그날의 상처를 꾹꾹 쑤셔대는 존재들이 있었고, 그 존재들로 인해 가슴에 깊이 베인 상처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여자의 행복, 그 남자의 고통

 
그날 이후, 수의 입에서 '희주'라는 이름이 나온 적이 있었을까. 수의 입에서 '희주'와 함께했던 시간이 나온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 같았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진성조차 희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이가 집요하게 물어도 입을 꾹 닫던 수는, 영이의 집요함에, 술에, 그 밤의 분위기에 취해, 주절주절, 희주의 이야기를 아주 조금 끄집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의 가슴에 베인 상처가 아주 조금은 아물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희주의 기일, 을 잊었던 것이고.

이젠 그만 혼자 놀라고, 지치지 않냐며,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본 수를 통해 용기내에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은 영이는, 그렇게 부러 피해왔던 동창들을 만나고, 첫사랑을 만나고, 첫사랑과의 대화, 그가 전해준 근황을 통해, 영이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날, 뒤에서 그녀를 고소해하고, 깔보고, 그렇게 그녀의 불행을 축하해하던, 그 날 이후로, 혹은, 시력을 잃은 이후로,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환하게 웃고 소리내에 기뻐한 적은, 있었을까? 어쩐지, 수와 함께있는 동안의 영이는, 뒤틀림을 풀고 도움이 필요할 땐 당당히 도움을 받을 수 있게된 듯 했다. 아직까지는, 수에 한해서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영이는, 행복했던 순간을 깨트리며 갑작스레 왕비서에게 자신을 버리고 갔던 수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주지도 않은 사과를 받아주고, 받아본 적 없는 위로를 해주며, 단 하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오빠 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수는, 희주의 동생 희선, 희주를 사랑했던 무철이 헤집어놓은 상처의 아픔을 감싸쥐고, 살기위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물지 않는 상처의 아픔과 선택을 위한 고통, 그 두가지를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수에게는 어느 쪽이 더 무거운걸까.

죽고싶을 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맘이 아주 편해진다는, 영이를 위해 준비된 부적. 죽음을 바라보며 과거를 걷고있는 영이는 서슴없이 그 것을 달라고 했다. 이제, 선택의 고통에 짓눌린 수는 ... 정말로, 그 것을 영이에게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