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나인 20회 : 최종회) 믿고싶은 판타지는 믿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면 된다

도희(dh) 2013. 5. 15. 22:01


당신의 유언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주민영은 충고를 무시하고 나를 줄곧 사랑해왔고 나도 더이상 미래를 잊고 지낼 수 없게됐다.

- 선우 / 나인 20회 -



<나인> 20회는, 1993년 4월 24일 이후의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선우의 마지막 메시지를 들었던 어린 시아는 엄마 유진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갔고,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게된 어린 선우는 미래의 내가 했던 말들을 믿고, 더이상 미래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으며 주어진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겠노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나갔다. 그렇게, 14년이 흐른 2007년, 그 사건을 통해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된 선우는 CBS의 기자가 되어 있었고, 갓 입사한 신입기자 주민영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된다.

1993년에서 만난 선우의 마지막 메시지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다던 민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에게 첫 눈에 반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를 알아가며 더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매 해가 흐를 수록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들의 관계를 그려가며, 민영이 선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선우에게 민영이 얼마나 큰 휴식처가 되어주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야기가 시작된 2012년 12월이 되었고 선우는 민영이 처음에 왜 자신을 피하려고 했는지 알게되며 잊고 지내온 미래를 알아버렸다.

2013년 미래의 내가 1993년 과거에 가서 죽었다. 미래를 잊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라는 그의 말에 따라 살아왔던 선우와 달리 민영은 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줄곧 자신을 사랑해왔다. 처음 그는 그런 민영에게 화를 냈지만, 19년 전 자신이 그에게 보낸 마지막 메세지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보내온 마지막 메세지를 통해, 니 순간 순간이 나를 만든다는, 너는 늘 괜찮은 선택을 했고 잘 살아갈 거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더이상 미래를 잊고 지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미래의 나를 만드는 순간 순간을 위해 괜찮은 선택을 하기로 했다.




2013년 미래의 내가 1993년 과거에 가서 죽었다.
그럼 그건 내가 미래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내가 알기만하면 피할 수 있는걸까,
과거에서 죽었으니까 이미 확정된 결말일까. 어떻게 생각해?

- 선우 / 나인 20회 -



선우가 피운 향을 통해 선우의 인생은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굴레의 틀은 유지된 채 선우의 삶은 진행되었고 완성되었다. 선우의 인생은 이미 틀이 만들어졌고 그 안을 채우는 소소함이 변화한 듯했다. 과는 이미 정해져있었고 그 과를 채우기위한 인이 조금씩 달라진 듯 싶었다.

원래의 선우는,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최진철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기자가 되었다. 원래의 선우는 풀어야할 숙제가 산더미 같은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사랑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민영에 대한 감정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원래의 선우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서야 민영을 향한 사랑을 깨닫고 그녀가 있는 네팔로 갔다.

그리고 현재, 팩트는 이런 거일지도 모른다. 그가 어린 민영 앞에 나타나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그녀가 처음 본 순간부터 선우를 사랑했을 수도. 그가 과거에 끼어들어 국장과 연을 맺어줬기 때문에 선우가 기자가 됐을 수도. 그리고, 그가 과거에 갇혀 죽었다는 미래로 인해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선우는 자기 운명의 키를 쥐고있는 민영이 있는 네팔로 갔다.

인과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박선우가 주민영을 사랑하는 이유 그리고 결혼하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뇌가 가출한 여자의 해맑은 웃음을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그 속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마도, 네팔에 도착한 선우는 자신을 마중나온 민영에게 키스를 하고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선우 자신이 그를 구할 수 있고 민영이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그 판타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믿고싶은 판타지는 믿고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하면 된다

- 선우 -



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현재를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바꾸려고 했던 선우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만들었으나 그 곳에 함께할 수 없었고 그렇게 선우 한 사람의 부재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갇힌 채 생을 마감한 선우는, 과거의 나와 영훈 그리고 민영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선우의 유언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혀 먹히지 않았고 민영은 선우를 사랑했고 미래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던 선우는 단순 명료하게 믿고싶은 판타지를 믿고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선우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까? 2013년의 내가 1993년에 죽은 것은 과연 미래의 일이기에 피할 수 있을까, 과거의 일이기에 확정된 것일까. 그건 그 누구도 모른다. 그저, 순간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현재를 걸어나가면 된다, 라는 말을 하는 듯 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 그렇게 삶을 향한 의지.. 그 의지를 통해 선우는 순간 순간의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선택이 선우의 미래를 만들겠지.

2013년의 선우는 과거에 갇혀 죽었을 수도, 다시 살아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선우의 선택으로 미래의 선우는 그토록 원했던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현재의 선우가 쭈욱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미래의 선우 또한 행복해질테니. 2회, 너는 곧 나니까, 라는 선우의 말을 떠올리며.

약간 당혹스러운 결말이었다. 덕분에 한참동안 생각해보고 곱씹어봤다. 어떻게 생각을 해도 오류는 생겼고 드라마를 보는 언제즈음부턴가 끊임없이 물음표를 그리던 부분은 여전히 물음표이다. 그래서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믿고싶은 판타지는 그냥 믿기로 했다.




+그리고+

1> 에필로그로 나온 그 장면 때문에 굉장한 혼란이 왔다. 뭐지...? 라며. 뫼비우스의 띄인가? 등등. 1993년의 과거에 갇혀 죽은 2013년의 선우가 20년간 살아남아 정우를 구하러 온 건가? 라는 생각으로 부터 시작했는데.. 뭔가 자꾸만 꼬이고 오류가 생겨서 관두기로. 그냥, 믿고싶은 판타지로 두기로 했다.


2> 생각해보면 나인의 세계관은 그리 치밀하지 못했다. 시간여행의 규칙도 오류가 보였고.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짜맞추며 납득도 하고, 그냥 설명은 못하겠는데 납득이 되니 납득을 해버리며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일관성이 있었던 것은 선우의 의지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형을 지키기 위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한,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의지. 결국,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의지를 갖고 나아가라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이런저런 생각.


3> 선우는 정말로 불쌍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키고 싶은 존재가 있고, 몇번의 삶이 바뀌어도 그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떠올리고 트라우마까지 극복할 정도로 끊임없이 그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힘겨운 일들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멘탈과 삶을 향한 의지까지. 삶의 의지, 살아야할 이유와 살아갈 목표가 명확한 사람의 삶이란..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4> 향을 통해 몇번이고 바뀐 인생. 그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가진 이들. 과거에서 부터 이어져오는 이들은 어떤 접점을 통해 그 기억을 갖게되는 걸까, 그 삶 조차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끊임없는 물음표는 이 것이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는 그저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과거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삶일테니까. 그래서 가장 궁금했던 건.. 현재의 선우가 현재를 위해 바꾼 과거로 인해 어린 선우가 향을 피울 일이 있을까, 라는 것.

그러나, 굴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정우는 네팔로 향했다. 그가 향의 존재를 알고 떠났는지, 정말로 의료봉사를 위해 떠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향의 존재를 알고 떠난 것이라면.. 죗값을 치르고 속죄하는 삶을 살아가는 정우는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죽고 선우는 향을 손에 넣게되는 걸까.. 거기서부터 선우의 선택은 시작되는 것일까.. 그 선택에 따라 미래가 되어버린 현재는 바뀌게 되는 것일까.. 등등.

과거의 인물들이 의지를 갖기 시작하며 그 변수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상황. 그렇다면, 2012년까지의 삶을 살아온 선우의 선택으로 인해 2032년 혹은 2033년이 되어서야 모든 것은 또 한번 변화하고 그렇게 과거에서 부터 살아온 어린 선우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기억으로 그들은 또 한번 뒤틀린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등등.

아.. 향이 또 어떻게.. 따위의 질문은 하지말기로 하겠다. 향이 되어 자신을 다 태워버린 순간 그 향은 다시 생겨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향이라는 그 존재 자체가 판타지니까. 판타지는 그냥 믿기로 하자.


5> 매 회마다 주는 멘붕과 당혹스러운 엔딩으로 인해 이 드라마 뭐지.. 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가며 정리를 하다보니.. 이 드라마, 꽤 괜찮은 메시지를 담은 괜찮은 드라마로 남을 듯 싶다. 내 기억 속에서는. 일단, 다시 볼 엄두가 안나는지라 소장계획은 없다. 그래도,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세세한 전개가 떠오르지 않을 언젠가, 한번쯤 보고싶어질까? 그래도, 결말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드라마일 듯 싶다.


6> 내용과 연관도 없는 소제목이지만 매번 나름의 고민이라는 걸 하는 편이다. 그리고, 마지막 리뷰의 소제목은.. 이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를 고대로 쓰기로 하고보니.. 3회랑 겹치네?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라며 써버렸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일세;


7> 그래, 선우는 원래 저런 아이였지. 라는 생각이 드는 20회였고 또한 엔딩이었다. 인생을 향한 자신만만함.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의지로 살아가는 아이. 그런 선우가 향을 통해 겪은 일련의 사건으로 생긴 두려움으로 움츠려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11회였던가,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되찾은 민영이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걸 감당하기 힘겨워서 끊임없이 밀어냈었고. 하지만, 20회의 선우는 자신으로 인해 민영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그녀에게로 향했다. 자신만만했다. 믿고싶은 판타지, 나로 인해 그녀가 불행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판타지를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