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천명 6회) 사람을 살리는 의원의 본분으로 사람을 얻는 과정

도희(dh) 2013. 5. 15. 16:26

거북 구(龜)가 의미하는 덕팔을 찾기위한 여정을 시작한 최원은,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서의 본능과 누명을 벗기위한 증좌를 찾기위한 여정을 해야만하는 현실 속에서의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자신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나졸 하나, 자신의 탈옥을 돕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위급한 상황에 놓인 거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덕팔처와 복중 태아를 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원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한시라도 바삐 도망쳐야만 했고(나졸), 한시라도 바삐 무죄를 증명해야만 했지만(거칠&덕팔처) .. 그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선택을 했고 결국 그 선택은 최원이 살인자가 아닌 증좌가 바로 최원 그 자신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물론, 최원이 나졸을 살린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의원의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거칠과 덕팔처를 살린 것은 그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 아비로서의 본능이 포함되는 듯 했다. 딸을 지극히도 사랑하기에 딸을 위해서라도 결코 죽을 수 없는 그 절절한 마음을 거칠과 공유했기에 시간을 지체해서라도 거칠을 살려야만 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기억 그리고 자식을 절절히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덕팔처와 그 아이를 살리고 싶은 혹은 살려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그의 가족들을 살려야 그의 입을 열게할 수 있노라는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 계산 전에 아비, 남편 그리고 의원으로서의 본능이 우선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이 드는 중이다.

결국, 최원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고 나졸과 거칠 그리고 덕팔의 가족들은 살았다. 나졸을 살리는 것으로 남긴 최원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라는 증좌는 홍역귀의 흥미를 당겼을 것이고, 거칠을 살리는 것으로 거칠과 거칠을 따르는 무리는 최원의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덕팔은 자신의 처와 아이를 살린 최원에게 진실의 열쇠가 되어주고자 하지 않을런지. 그렇게, 최원은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 한 끝에 사람을 얻었다. 아마, 최원이 나아갈 앞으로의 여정 또한 그 본분을 다한 끝에 얻게될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진실을 열쇠, 그리고 진실 속으로 다가갈 수 있게되는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1> 최원을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그의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는 다인 또한, 최원 자신이 그저 의원의 본분에 충실해서 사람을 살린 것으로 얻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최원에 대한 은혜, 자신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완벽한 증좌에 대한 죄책감, 그 것들로 인해 다인은 최원을 믿고 최원을 구명하기 위해 달리는 동시에 최원의 딸 랑이를 돌봐주는 중이었으니까. 게다가, 행동하는 조선의 의녀인 다인은 최원에 대한 걱정 및 랑이의 치료를 위해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소백과 꺽정을 통해 최원을 찾아갔고, 최원과 함께 덕팔처와 아이를 살리게 되었다. 도망자인 최원과 달리 운신의 폭이 좁은 다인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인의 적극적인 행동이 그들의 인연을 좀 더 확고히 다져가는 듯도 싶었다.

2> 최원을 곁에 두어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세자 또한, 어린 시절 최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무사히 세자의 자리에 오른 것은 최원의 기지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최원을 믿었고 어떻게든 최원을 지켜주고자 하는 중이었다. 그를 향한 믿음과 힘이 되어주려는 세자와 다인, 그리고 이제 그의 힘이 되어주며 함께 움직이게 될 듯 싶은 거칠무리들, 최원에게 진실의 열쇠가 되어주려는 덕팔.. 그들 모두는 최원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었고 그로인해 최원의 사람이 되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3> 최원에게 끝없는 믿음을 주며 그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들을 통해 어떤 흥미를 느끼게 된 홍역귀지만, 흥미와는 별개로 그는 눈에 보이는 진실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자신이 오랜시간 쌓아온 수사의 촉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원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것은 그의 의무이자 홍역귀라는 별칭에 대한 자존심이기도 한 듯 싶었다. 그가 최원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흥미를 흥미로만 둘 뿐 그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는 살인자 최원이 아닌 인간 그리고 의원 최원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 최원이 살아온 삶, 그가 지닌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모르기에 보이는 진실을 통해 사건을 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런지.

언제쯤, 어떤 계기로 그가 이 사건을 통해 보여지는 진실 이면에 있는 그 무언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그는 소윤파의 끄나풀인 곤오에 의해 눈과 귀가 닫힌 상태였다. 최원을 쫓으며 자신을 막아선 도문을 통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으나.. 그가 사건의 진실 근처에 다가서는 건 왠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도 같았다. 일단은, 소윤파 외에도 공식적으로 최원을 쫓는 누군가가 있어야 극이 더욱 흥미로워질테니까.


4> 오라비는, 아비는, 살인자가 아니라며 그에게 매달리는 최원의 가족들. 그럼에도 그의 확고한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에게 홍역귀라는 별칭이 붙는 동안, 그는 수많은 죄인을 봐왔고 그 죄인의 가족을 봐왔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 눈물과 절규 이면에 숨겨진 '혈육을 살리기위한 인간의 본능'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물과 절규를 물리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 같았고.

최원을 잡고자 혈안이 되어있는 홍역귀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의금부 도사인 홍역귀와 내의원 의관인 최원.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직업에 맞는 본분에 충실할 뿐이기도 한 듯 했다. 의금부 도사인 홍역귀는 죄인을 잡아 벌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었고, 내의원 의관인 최원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그의 본분일테니.. 그 본분을 다하는 끝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향에 서서 같은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5> 홍역귀가 보이는 진실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해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흥미를 퍼즐처럼 맞춰 진실의 언저리로 향하게 될 계기가 과연 무엇일까. 약간의 로맨스적 시각(...은 뭐냐;)으로 보자면 악연이라 치부해버린 우영과의 인연으로 인한 것이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당분간 홍역귀라고 부르지 말랬지...;

6> 죽은 생모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은 자신을 키워준 지금의 중전, 문정왕후에게서 채워넣고 싶었을 세자. 그는 그녀가 정적이 아닌 어머니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믿고 싶으나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나 또한 믿고싶은, 어머니 문정왕후에 대한 미련.. 세자는 손에 쥔 모란 꽃을 연못에 놓아버리는 것으로 그 미련을 떨쳐버렸노라 했다. 이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고 좋았다. 세자의 다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고 해야할까?

7> 고모가 걱정할까봐 자신의 빨래를 몰래하면서 이정환(홍역귀)의 빨래도 함께하는 랑이. 랑이는 이정환에게 이쁘게 보이기 위해서 그의 빨래를 하고있노라 했다. 정환이 이 사실을 알게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될지도 궁금.

8> 랑이의 병은 현재 노채로 알려졌으나 결국 심비혈허로 밝혀진다고 했다. 아마, 그 과정은 다인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었다. 랑이의 얼굴에 생긴 피부질환과 랑이를 위해 최원이 남긴 혈자리가 전혀 듣지않는 것 등등을 의아하게 여기며 최원에게 알리고.. 뭐 그렇게 최원은 랑이의 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되며, 도망자의 여정에 랑이의 병을 치료하는 여정도 더하게되며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