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지 않은 현실에 무너진 희망
왕세자 책봉식 날, 모든 권력은 왕으로 부터 나온다, 라는 신념을 비참할 정도로 조롱당한 세자. 그날의 치욕을 가슴깊이 새긴 그는, 훗날의 강력한 왕권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무너진 왕권을 정립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군사력 강화를 꼽은 그는, 대신들 몰래 군사들을 키우고 있었고 또한, 군기감 개혁을 위해 군기감을 장악한 (극 중, 절대악으로 묘사되는) 민유중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그렇게, 질좋은 갑옷을 납품받기 위해서 민간상단의 참여를 독려하는 세자의 정책은, 연회를 위해 빌려쓴 고리대를 갚지못해 목숨줄과 같은 부용정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옥정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 다가왔다.
자신의 선택으로 질좋은 갑옷을 납품받는 것을 시작으로 신하들에게 분산된 권력을 되찾아 올 길을 만들고자 한 세자, 질좋은 갑옷을 납품하는 것으로 부용정을 되찾고 장현의 야욕에서 벗어나 꿈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옥정. 그렇게, 옥정은 동평군과 세자의 도움으로 질좋은 갑옷을 만들어냈고, 세자는 옥정의 갑옷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들의 손에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희망이 쥐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오랜세월 민유중에게 엄청난 뇌물을 받은 중전으로 인해 세자는 또다시 민유중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옥정은 꿈, 을 잃게되었다. 그렇게, 절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비장의 무기로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은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꿈을 꼭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바람처럼 흩어져버린 현실. 옥정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에 품은 여인과 혼인을 해서 평생 함께하는 꿈도 꿔본 듯한 세자는, 마음에 품은 여인과 맺어지는 것은 생인손(손가락 끝에 종기가 나서 곪는 병)을 앓는 것과 같기에 떠나보내야만 하고, 마음에 품은 여인 하나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 왕좌이기에, 왕에게 있어 중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저 정치의 한 부분일 뿐이며, 연심마저도 정치에 필요할 때만 끄집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아비 현종의 말을 가슴 깊숙히 새긴 채,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민유중을 찍어누르기 위한 '비장의 무기'를 끄집어내기로 했다.
(애초에 그가 지닌 '비장의 무기'는 자신의 빈이었다. 그러나, 옥정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옥정과 같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비장의 무기로 가져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는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희망'을 내려놓고 '빈'이라는 카드를 끄집어내었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강경인 민유중보다 온건인 김만기가 훗날 자신이 정국을 운영할 때 덜 나쁘다는 판단 하에 그를 선택했고, 그 이면에는 민유중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계획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세자로 인해 인품좋은 가면 속에 재워둔 권력욕을 깨우게된 김만기는, 딸의 간청을 핑계로 세자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장현과 복선군의 음모로 인해 재간택날 아침 민유중은 처를 잃었음에도,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한 권력을 위해 딸을 재간택장에 보내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좋은 것을 고를 처지가 되지 못하기에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세자로 인해 만만하게 본 현실 앞에서 무릎을 꺽이게 되었다.
그렇게, 밝은 길로 나아가 차근차근 무언가를 쌓고 그렇게 꿈을 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세자 그리고 옥정은 새삼스럽게 거대한 권력 앞에서의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세자는 마음 밑바닥에 있는 마지막 남은 순진함까지 말끔히 비워내고, 권모와 술수가 있는 정치를 통해 훗날을 대비하기 시작했고..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문 앞에 꿈을 빼앗긴 옥정은, 그토록이나 오랜 세월동안 거부했던 장현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옥정에겐 선택권이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장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시절 처럼 도망자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음에도 결국 그러지 않았다, 즈음으로 본다면.. 그녀 또한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했다고 해도 되려는 건가?
그리고-,
1> 본방으로는 보지 않는 중이다. 본방은 '직장의 신'을 시청 중인데.. 미스김언니 너무 멋져! 꺄아!! 무말랭팀장님아ㅠㅠㅠㅠㅠ..모드랄까나? (ㅋ) 사실, 3~4회 방영 후, 평이 너무 안좋아서 잠시 고민을 했더랬다. 그러다, 일단 보고 판단하자, 라며 시청.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 많기는 많다. 그 많은 가운데 괜찮은 부분이 조금은 보여서.. 난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 드라마를 챙겨볼 것 같다. 솔직히, 비극을 담보로 한 로맨스에 대한 기대보다는.. 기존사극과 다른 숙종에 대한 해석에 흥미가 있어서 이 드라마를 보는 중인데.. 그 부분에 대한 흥미는 어느정도 채워주는 중인지라.
3~4회는 뭐랄까.. 거대한 권력과 음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꿈이 좌절된 세자와 옥정이, 그로인해 조금은 독해지고 조금은 단단해지는 계기를 그려나가는 듯 했는데... (세자는 김만기의 딸을 빈으로 정한 이유, 옥정에게는 장현의 손을 잡고 궐로 들어갈 계기) 그 과정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듯 싶기도 했다. 장르자체가 로맨스 사극인지라, 로맨스를 주메뉴로 삼고 정치를 양념으로 쓰고자하는 듯 싶기는 한데.. 비율조절을 제대로 못해서 우왕좌왕 하는 듯도 싶었고, 한 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서인지 되려 이야기나 감정선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뭔가, 이 장면은 좀 길게 잡아도 될 것 같은데... 싶은 부분들이 툭 끊길 때의 아쉬움같은 것도 있었고.
이러나 저러나, 일단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지금보다 조금 더 채워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면, 뒷북으로나마 쭉 시청하지 않을까, 싶다.
2> 아, 소품에 대한 논란들. 사실, 드라마를 섬세하게 보는 편이 아닌지라.. 그 논란을 알고 봤음에도 단번에 찾지 못한게 함정; 아무튼, 그 논란들에 대한 해명조차도 참...;; 애초부터 고증이니 뭐니, 이런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도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보기로 했다. 옥정이가 본격적으로 입궐하면 뭔가 좀 나아질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그러려니, 하며 넘기는 중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아쉬운 점을 말해보라면.. '퓨전사극'이란 장르라고 할지라도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든 소품과 설정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 정도? '퓨전사극 = 사극의 옷을 입은 현대극'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들은 '퓨전'을 강조하며 '허구'가 가미되었음을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일단,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그리는 사극의 옷을 입은 이상, 보여주는 것들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이 존재하니까.. 어느정도는 고민을 해봐야만 한다는 것도. 무튼간에... 난 큰 애정없이, 적당히 적당히 볼 예정이니.. 일단은 그냥 그러려니; 흥미로운 부분도 무뎌지고 이 그러려니도 더이상 참아지지가 않는 날이, 이 드라마를 놓는 날이려니;;;
3> 민유중의 딸, 인현. 현재까지 잡힌 인현왕후의 캐릭터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은은한 달빛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는, 불꽃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옥정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자극을 받는 모습을 미세하게나마 보여주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금의 캐릭터를 유지하며 훗날 장옥정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모습이라거나, 중전으로서의 위엄을 보이면서도 속은 썩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래도록 빛나는 은은한 달빛처럼 중전의 위엄을 잃지 않았기에.. 그녀는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라고 이 드라마는 그리려는 듯 하니까.
4> 아, 정말.. 인경아가씨, 인현아가씨, 하는데.. 자꾸만 헛웃음이 난다. 둘이서 그렇게 부르고 서있는데 '누가보면 니들 자매인 줄 알겠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휴; 어차피 자막으로 '훗날의 누구누구'라고 계속 나오는 거, 시청자의 이해를 위해서는 무슨;; 왠지, 극 중 캐릭터에 어울릴만한 이름을 짓는 것이 귀찮은 것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만 자꾸 든다. 숙빈 최씨에게 조차 이름이 없다는 설정으로 넣고 공홈에는 '최무수리'로 표기한 것을 보면 말이지;;
5>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애틋했던 관계는, 현종과 숙종의 부자관계였다. 특히, 손을 꼭 잡고 궐 내를 거니는 모습이, 애틋하고 아련했달까? 근래 읽고있는 소설 속에서 느꼈던 현종과 숙종의 관계를 드라마로 보는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고. 이런 찰나의 순간과도 같은 부분들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할 것 같다.
(2회에서 신하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세자라거나, 4회에서 민유중에게 희망을 짓밟힌 후의 세자의 모습이라거나, 그 후에 그 분노를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두는 듯한 느낌이라거나.. 훗날 왕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 그날의 일들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해줄까.. 그의 뒷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등등의 생각도 해보다가.. 아차, 이 드라마는 정치사극이 아니잖아.. 라며 흠칫하기도; )
게다가, 간간히 좋은 대사들이 있어서, 또 완전히 흘려보지만도 못한다는 것이 참...ㅡ.ㅡ;
6>
왕에게 있어 중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저 정치의 한 부분일 뿐이며 연심마저도 정치에 필요할 때만 끄집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
, 라는 현종의 말. 이 말이 어쩐지, 훗날 숙종이 펼칠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듯 해서 흠칫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보여진 숙종은, 사랑때문에, 시작했더라도 결국은 그 사랑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듯한 모습이 보여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 라는 게 내 바램이기도 하고. (로... 로맨스에 크게 흥미없어서 미안해요ㅠ; 매우 작게는 흥미가 있을지도 모르...?)
7> 동평군 캐릭터, 깨방정 설정의 이유는 3~4회에서 나왔다. 자신의 본심을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 이라고 해야할까? 그의 진지함은 오로지 숙종 앞에서인데.. 사실, 그는 숙종 앞에서도 진지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캐릭터인 것도 같았다. 숙종 앞에서 옥정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털어놓을 때, 숙종이 그런 모습 처음본다는 걸 보면. 혹은, 그가 숙종을 제외한 한 인간에게 깊이 마음을 쓰고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동평군은 깨방정스러운 것보다는 진지모드가 훨~ 좋다. 깨방정모드는 뭔가 부담스럽다고 해야하나;
동평군과 옥정은 장희재(옥정의 오라비)를 통해 알게되었다, 라는 설정인 듯 싶은데 (3회 미리보기에는 나왔으나 방송에는 안나온;) 동평군은 옥정에게 연심을 품은 듯 싶다. 옥정에게 그는, 그저 좋은 사람인 듯 싶고. 어찌되었든.. 현재 숙종과 동평군은 서로가 마음쓰는 여인이 같다는 걸 모르는 중이고.. 후에, 동평군이 먼저 그 사실을 알고 평생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가겠지..;
그나저나, 장희재는 언제 등장하려나? 오래 전에 잠깐 호감을 가졌던 배우인지라, 사극이란 장르의 드라마에서 어떤 연기를 보일지 궁금해지는 중이기도 하다. 내 기억으로 그 분의 드라마는 아마 '드라마시티 : 변신' 정도 밖에 없는 듯 한데..? 무대 위에서의 연기는 섬세해서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무대연기와 드라마연기는 다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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