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추노 24회(최종회) - 이름없는 그들이, 그래도, 그렇게 살고 있었다.

도희(dh) 2010. 3. 26. 17:29

드라마 추노 24회.

24부작. 3개월이란 시간동안 달려온 드라마는, 이렇게 막을 내렸어요.
큰 감흥없이 보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먹먹해지는 가슴에 적잖히 당황하기도 했답니다. 엔딩컷을 보고나서는 멍때리느라 정줄까지 놓게되고 말이죠. '그래도 희망은 있다' 라는 메시지를 주고싶었다는 이 드라마, 다들.. 그런 메시지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

역사의 뒤켠에 이름없는 잡초처럼,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목소리.
그리고 다 울리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그 목소리를 들은 다른 이가 품은 의지.
지랄맞은 오늘 뒤에 그나마 나은 내일이 있겠지, 라는 희망.
...전,  그런 희망을 들어버린 듯 했어요.

그리고, 그렇기에,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을 살아간다고 말하는 듯 했고 말이죠.





 대길  


언년아, 언년아... 잘 살아라.
너의 그 사람, 그리고 너의 아들과..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다시만날 때.. 어찌 살았는지 얘기 해주련?
나의 언년아... 나의 ... 사랑아...


(1)

단 한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 남자, 이대길.

대길이가 태어나 세상을 살아간 이유는 단 하나, 한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였어요. 도령시절에는 그 사랑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세상을 바꾸겠노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고, 추노꾼이 된 지금은 그 사랑이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 사랑의 사람과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니 말이죠. 그렇게, 그 사람이 춥지도 아프지도 않은 세상에서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 것이 이 사람이 이 지랄같은 세상을 그렇게도 살아간 단 하나의 이유였다, 라고 말하는 듯 하더라구요.

사랑이 뭐길래, 세상의 반이 여자고 또 반이 남자인데, 
이젠 자신을 바라봐주지도 않는 단 한여자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것인지...

그런데, 그게 이대길이란 사람이죠.



(2)

양반도령 시절, 한 사랑을 위해서 세상마저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던 어리숙한 양반도령은, 머리 굴리며 에헴거리는 양반이란 신분에서 벗어나,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면서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된 듯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대길은, 지랄같은 세상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살아보니 만만치않은 세상. 대길이는 내내 '세상은 바뀌지않는다' 라고 말해왔지만, 평소에도 그가 속과 반대되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숨기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태하를 통해서 '세상은 바뀔 수도 있다' 라는 희망을 갖게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태하의 어디의 뭘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저 언년이의 행복만 바라는 대길이로 생각해보면, 양반의식으로 가득찬 이 고지식한 양반이 혜원이 언년(노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만의 '희망'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 사람이라면...' 하면서요. 내가 줄 수 없었던 것을 이 사람이라면 줄 수 있지않을까... 하는? 그리고,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변화할 줄 알고, 잘못된 것을 뒤늦게라도 깨달을 줄 아는 이 사람이라면,, 이 지랄같은 세상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3)

하지만, 대길이는 희망을 던져놓고 퇴장하는 이였어요. 그리고 그런 대길이가 던져놓은 희망은 태하와 철웅, 이 두사람에게 닿아버린 듯 하더라구요. 대길의 목숨값으로 살아난 태하는 청으로 달아나 '살기위해 도망치되 숨어살진 않겠다' 라는 .. 어찌보면 모순처럼 들리는 이 말대신, 이 땅에 진 빚을 갚기위해서라도, 그 희망의 시작을 이 땅에서 시작하겠노라는 의지를 보였으니 말이죠.

전 보면서 '중상입은 태하도 결국 죽지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작은 씨앗을 이어받아 이 땅에 심는 자는 원손을 끌어안고 그 어미가 되겠노라 했던 혜원이 아닐까... 라고. 가장 고귀하나 죄인의 신분인 원손과 가장 미천한 노비였으나 그 굴레를 벗어던진 혜원의 조합. 그런데 그를 연기한배우 본인의 입으로 '나는 살았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고하니.. 뭐, 살아있겠죠? (그리고 철웅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


(4)

청은 안간다고 하더라도 혜원이는 대길이가 남겨둔 꽃신이라도 봐야하는 것 아니었냐, 라고 잠시 울부짖어 봅니다. 혜원이가 꽃신을 바라보는 것과 대길이의 죽음이 교차되어도 뭔가 ... 아니다, 혜원이는.. 이제 태하마눌님일 뿐이니.. 대길의 사랑은 오로지 대길 그 혼자의 몫이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말죠..., 뭐. // 꽃신관련 엔딩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동생에게 말하자, 동생양 .... '잘~ 논다' 이런...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더라나 뭐라나..ㅠ.ㅠ;

그나마, 혜원이는 대길이의 그 사랑의 마음을 알고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의 진심아닌 말에 '알고있습니다'라고 차분히 대답한 혜원의 말은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나,, 정말 혜원이나 태하는 ..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힘겨운 당신들~;




 업복  


내는 개죽음 당하지 않을거라니.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믄,
그렇게만되믄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그러나, 초복아?



(1)

목소리를 내는 자. 잘나가던 호랑이 사냥꾼인 업복이가 빚에 팔려 노비가 되고, 그리 도망치고 잡혀오고 노비당에 입당하여 살아가는 하루하루, 그는 지금 자신이 서있는 이 곳의 모순에 관하여 항상 생각하고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그렇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는 스스로 그 해답을 찾게되죠.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죽질 바라는 것. 그리 죽는 것은 결코 개죽음이 아니라는 것.


(2)

반짝부는 운명에 순종하는, 세상(양반)이 가장 바라던 '노비다운 노비' 였어요. 주인양반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도 감으로 알아차리고선 그 뜻을 행하고, 주인양반이 자신의 딸을 취하고 다른 곳에 팔아넘겨도, 그저 속으로 그 슬픔을 삼킬 뿐, 주인양반에게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거든요. 그저 그는 항상 생각했죠. '우리가 누구 덕분에 이만큼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서 그는 항상 생각을 하고 노비라는 현실에 순종하지 못하는 업복이 못마땅했고, 그래서 항상 구박하고 그를 눌러놓으려고 애썼어요. 왜냐하면, 아마, 그는 그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며 희망따윈 버려두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그가, 업복의 목소리를 듣게되었어요. 업복이의 목소리는 내내 잠들어있던 그의 가슴을 울려.. 희망이라는 씨앗이되여 그렇게 싹틔우게 된다는 암시처럼 보였거든요. 추노 23회에서 끝봉이는 말하죠. 내가 못하면 우리 자식들이 하면 된다고. 그렇게 이어가면 된다고.. 그리고 업복이는,, 목소리를 남겨두고 .. 떠나게되요.

아마, 지독한 고문 후에 죽었겠죠? 그리고 나라에선 '도망노비들의 반란'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이 일을 흐지부지 덮을테고 말이죠. 그러나, 이미 목소리는 세상에 울려퍼졌다는 것. 그 것.


(3)

죽음에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담겨지지 않는 것이 '추노의 세상' 이었어요. 그 세상에서 '죽음'은 잘난 놈이건 못난 놈이건 위세등등한 놈이건 가장 아래에서 비러먹던 놈이던... 같은 것이라고 했어요. 한순간 스쳐간 바람 끝에 남겨진 '허무함'

세상을 제 손에 움켜쥐고 많은 사람을 '사람'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며 죽여가던 '좌의정', 스스로의 욕망에 무너져 많은 이들을 배신한 '조선비', 자신의 그깟 야망에 노비들의 목숨을 거둬간 '그 놈'. ... 그렇게 세상 머리 위에 서려던 자들은, 스스로의 기준에서 이름없고 의미없는 잡초같은 노비 하나의 총알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어요.

참.... 그 시간동안 그들이 받아먹은 핏값이.. 허무하게 말이죠.





 철웅  


너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1)

세상에 대한 원망을 사람에게 하던 철웅.

한없이 오르려고 해도 올라지지가 않는 산 정상. 자신이 그 곳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 그 것에 대한 원망을 돌릴 곳이 없었던 철웅은 ... 그 원망의 화살을 '태하'에게 돌리고 끝없이 그를 추격하게 되요. 온갖 짓을 다해도 오를 수 없는 곳에, 스스로의 의지대로 그저 걸음을 옮길 뿐인데도 그 정상에 도달해있는 태하에 대한 열등감. 그런 그를 꺽어버리면 자신이 그 곳에 서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점점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도 모른 채, 그리 칼에 수많은 사람의 피로 물들이며 달려가던 철웅의 끝에는 태하가 아닌 대길이 서 있었고, 그저 목숨빚 하나에 자신을 내던지고 태하를 지켜주려는... 의지. 그가 세상을 바꾼다잖느냐는 그에 대한 희망. 그 것이 철웅을 무너지게 만들어버린 듯 하더라구요. 태하에게 목숨빚이 있음에도 그를 죽이려드는 자신, 그리고, 태하가 바꾸겠노라는 그 세상에 대한 희망을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던 닫혀있던 자신의 마음. 그런 자신을 바라본 순간의 패배감...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철웅은, 태하에게 목숨빚을 갚게되었어요. 그리고, 그에게 희망 한 조각을 품어보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니가 바라는 세상, 어디 한번 만들어 보라고. 그럼 나같은 패배자도 없을테니... 라는...?


(2)

철웅의 부인은 철웅에게 '거울'같은 존재라고 해요. 예전에 어느분이 그런 해석을 한 걸 보며 감탄 비슷한 걸 했었는데, 얼마 전 읽은 작가 인터뷰에서도 그렇 의미로 말하더라구요. 추악한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 그렇기에 철웅은 그런 부인을 볼 때마다 괴롭고, 그런 부인이기에 유일하게 자신의 가장 약하고 추악한 부분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게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했어요.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자리에 언제나처럼 앉아있는 부인. 철웅은 그런 부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아마, 여태껏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달려왔나, 라는... 허무함과 허탈함, 그리고 자신을 잃고 달려갔던 그 끝에 남아버린 패배감.

좌의정이란 뒷배가 사라진 철웅의 현실. 그토록 원했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끊어졌기에 스스로를 잃고 그토록 달려왔던 의미가 사라진 지금이지만, 그래서 그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서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어쩐지 말이죠...

그 허름한 철웅모의 집에서, 철웅과 철웅처와 철웅모가 자그마한 밥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챙겨주며 밥을 먹는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네요. 철웅의 이 열등감과 패배감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니 말이죠. 그 마음을 다 울어내보낸 철웅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칼을 겨누지않을 것이고..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거울인 부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될 것 같고 말이죠. 아... 뭔가 설명 어려움. 대충 두리뭉실...패쑤~!!!




 태양  


저 해가 누구 껀지 알아?

(1)

결국 대길과 업복은, 그 날 이후... 같은 공간에 한번은 함께했었으나,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그렇기에 업복이에게 대길이는 여전히 언젠가 죽여 없애야할 나쁜 놈일테고, 대길이에게 업복이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한낱 도망노비일 뿐이겠죠. 그런 그들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뿌리며 세상에서 사라져갔어요.

하지만, 대길이 남겨둔 은실과 업복이 남겨둔 초복은 같은 자리에 서서 해를 바라보며 말하더군요. 저 해는 우리 것이라고.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그 언젠가 가질 수 있을, 그 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희망, ... , 결국 대길과 업복이가 각자 다른 곳에 남겨둔 씨앗이 결국은 하나로 모여 그렇게 이어져간다고 하는 듯 싶더라구요.


(2)

은실이는 문득 엄마에게 물어요. 이렇게 도망치며 평생 살아야하냐고.
그러자 은실 모는 말하죠. 적어도 사람답게 살지는 않느냐고.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 곳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그런 사람취급도 못받는 삶에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그리 살아가는 것이 나쁜 것이다. 도망치면서라도 그저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도 해주는 듯도 했어요.


(3)

저 해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하고 웃는 대길의 모습, 왠지 먹먹했습니다.





 기타등등~*  

(1) 역사에 남는 자와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는 자. 그리고 드라마 [추노]는 역사 뒤편에 사라진 그들의 삶을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은 어느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을,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 오늘이 힘겨워도 내일은 좋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리 살아가는 그들의 삶.

(2) 인조와 봉림의 대화. 인조의 '내 역사' 발언은 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군요. 이 드라마 속의 인조는, 항상 움츠려있는 무기력한 자처럼 보였어요. 흘러간 비참함을 내내 되새기며 내 손에 쥔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대신들에게선 1인자이지만 청나라에겐 1.5인자인 그. 크나큰 패배를 맛보았기에 지금 손에 쥔 권력을 잃지않기 위해서 무기력함 뒤에 발톱을 감춘 자.  

(3) 설화란 캐릭터는 ...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잘만 그려냈으면 참 짠하고 가여운 캐릭터가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은.. 설화의 엔딩을 보면서 더 많이 느껴졌어요. 이 아이가 만들어진 원래의도는 사랑을 믿지않던 아이가 보답받지 못할 외사랑을 하며 시청자들의 가여움을 한몸에 받아야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엔딩 후에 문득 들었거든요. 물론, 혜원이란 캐릭터도 어딘가 참 아쉬워요. 그러고보면... 태하도.  흐음,, 이 셋은... 제가 이런저러한 이유로 그리 큰 매력을 못느낀 아이들이네요..;;

(4) 언제나와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주막사람들에게 다가온... 오포교보다 더한 육포교. 오포교는 정말 자신이 저지른 그대로 겪게 되었네요. 죽지못하면 노비가 되는 인생. 노비로 떨어져서 마의랑 만나면 대박일 듯... (두둥!!!) / 작은 주모는 결국 최장군찾아 이천으로 갔으려나....?

(5) <추노 앤솔로지 낙인> 주문했습니당~ㅡ.ㅡv. 올때가 되었는데 안오네요. 오늘 중으로 온댔으니 오겠죠~ 뭐. 그거 주문하면서 지름신 강림해서 다른 책도 마구 지른 후에 '난 지금 뭐하는 걸까' 라고 홀로 멍때렸다나 뭐라나...;;

(6) 추노 시즌2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더군요. 바라던 것은 그저 대길의 10년세월이었는데, 병자호란을 사이에 둔 소현세자와 태하의 이야기가 그려질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일단은 가능성... 확정은 아니랍니다. 그러니 큰 기대는 금물, 이런 말도 오간다, 정도로 알고있음 될 듯 해요. 그래도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그려진 사극은 왠지 보고싶기도 하답니다.

(7) 광고 후의 보너스~!!! 못봤었는데, 인터넷의 바다는 넓고 넓어서 결국 보게되었어요. 아무튼, 왕손이랑 최장군은 행복했군요. 그때, 대길이 집이랑 여각만 잔금을 치루지 못했단 소리에 혼자 허걱, 했던 기억이. 물론, 어느 님의 인터뷰로 대길의 죽음은 대충 감잡고 있었지만요.

(8)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난 여운은, 하루를 꼬박 채우며 읽은 장편만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의 그 느낌과 비슷해요.

(9) 전, 어찌되었든, 추노 보는내내 즐거웠어요. 또 이런 드라마가 나왔음 좋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