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왕녀 자명고 28회 - 아빠를 아빠라, 언니를 언니라 못부르는 길똥표 자명...;

도희(dh) 2009. 6. 16. 22:00


드라마 왕녀 자명고 28회.

간만에 본방 끝나자마자 언넝 쓸까, 했는데... 티스토리 점검으로 인해서 이제사 슬렁슬렁 쓰기시작하고 있습니다. 조기종영을 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헷갈리는 가운데~ 자명은 라희를 이용해서 낙랑땅을 밟게됩니다. 물론, 라희를 구해주고 낙랑땅을 밟는 것이기도 하지만... 라희 덕에 아빠는 금방만났으니 뭐.

왕녀 자명고 28회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부르고, 언니를 언니라 못부르는 길동표 자명의 이야기가 그려졌습니다.
호부호형이라고 하죠? 음... 라희는 언니니까... 호부호자? 어감이 웃겨서 패쑤!

더이상 모하소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고 본색을 드러낸 왕자실과 그런 자실에게 당황하게되는 모하소.
처음으로 동침을 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게되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배다른 자매, 자명과 라희.
드디어, 동고비와 일품은 눈물겨운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되었고, 호동은 여자문제 겸사겸사 대들다가 아버지 무휼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자신의 병사들을 잃고 수양전에 갇히게 됩니다. 게다가, 자명이 없는 시점에서, 차차숭 외 2명도 고구려를 떠나겠다고 하여, 안그래도 외로운 호동왕자는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될 듯 하더군요.






 



1. 왕실에서는 왕위에는 위협이되는 동생의 존재가 그리 반갑진 않겠지. (라희)


그럼, 내가 호동왕자 때문에 널 질투해 이런다 생각하느냐?
글쎄... 모르겠다, 나도.
내가 내 마음 한 알 한 알 물에씻은 조약돌마냥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따라나서지 말라고. (라희)

원후마마를 뵙게 해주세요.
태녀마마, 제가 낙랑국 장군을 죽인 일로 벌을 받아야한다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원후마마를 뵙고나서 그 벌을 받겠습니다. (자명)

고구려를 탈출해서 낙랑국으로 향하려던 라희와 왕홀을 몰래 숨어서 따라다니던 자명은, 그들이 위험에 처한 순간, 왕홀의 SOS를 듣게됩니다. 언제는 다른 곳으로 떠나서 영영 나타나지 말라던 왕홀의 SOS를 차마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드러낸 자명은, 내가 왜? 라는 질문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왕홀은, 그 것이 운명인가보다, 라고 대답하더군요. 낙랑국 왕녀일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운명.

그렇게 자명은, 라희의 곁에서 라희를 지켜주기에 이릅니다. 라희가 자명의 도움을 원하든 원치않듯, 라희가 무사히 고구려땅을 벗어나 낙랑국으로 향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라희는, 그런 자명의 도움을 받고싶지않지만 어쩔 수 없는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서 그녀의 도움을 받게되면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충돌하는 듯 보였습니다.

라희는,
낙랑국의 장수들을 죽이고, 자신을 고구려로 납치해간, 호동의 여자인 자명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습니다.
사실 라희는, 낙랑국의 장수를 죽이고 자신을 고구려로 납치해간 자명이 아닌, 호동의 여자인 자명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의 마음이 한 알 한 알 물에씻은 조약돌마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라희는 자명을 향한 그 미움이 질투라고 긍정하지도, 아니라고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저, 모르겠다고 할 뿐.

그렇게, 자신을 구해준 자명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운데,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뒤통수를 치듯 그런식으로 갚아버리는, 위험에 처한 것을 그냥 바라만 봐야하는, 또한 그러고싶은, 고맙지만 그녀를 크게 도와줄 의지가 없는  자신의 못난마음이 왠지 한심한 듯이, 라희는 말합니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따라나서지 말라고.

그렇게, 자신의 운명에 이끌려 호동을 떠났다던 자명이,
자신의 아버지 최리 앞에서 고개를 떨구며 눈물짓고, 자신의 엄마인 모하소를 자꾸만 만나게해달라고, 그저 딱 한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애달프게 조르는 자명의 그 모습을 보며, 라희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한 채 자명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낙랑국의 왕녀임을 알게된 자명은, 공주의 자리가 아닌,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낙랑국으로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배다른 언니이자 자신을 죽이려는 왕자실의 친딸인 라희를 위험에서 구해주며, 난생처음 진짜 가족과 함께하게 됩니다.

자명은 라희를 구한 그날 밤,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라희에게 묻게 됩니다.
만약, 당신의 죽은 동생이 살아있으면 어떠하겠느냐고.
그리고,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라희의 대답이 비수가 되어 자명의 그 상처 위에 꽂힌 듯 하더군요.
살아오는 내내 죽을 위기에 처했고, 낙랑국의 장수를 베어버린 자명이기에... 아마, 본인 스스로도 낙랑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알고있었을테지만, '언니'인 '라희'에게 직접듣는 그 말은, 자신이 낙랑으로 가도 환영받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것일 뿐일 텐데도... 어렴풋이 알고있는 것과 귀로직접 듣는 그 상처의 크기와 깊이는 다를테니 말이죠.

그렇게 도와줘도, 경계를 풀지않고, 도움을 받되 받고싶지않아하던 라희의 모습에,
자명은 어쩐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런지... 물론, 자명이 라희에 대한 애틋함이 있는 것 같아보이진 않았지만.
언니이고, 모하소엄마가 그리 사랑하는 딸이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왕자실의 딸이라는 것이 내내 가슴 언저리에 남았는 것은 아닐런지. 호동의 전 약혼녀(!)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호동을 향한 라희의 마음을, 아마 자명은... 처음 알게된 듯 했습니다.
정략혼이기에, 원하는 것을 얻어야하기에, 라희와 결혼을 한다던 호동은, 자명을 사랑한다고 했었습니다. 자명또한 호동의 사랑이 자신인 것을 알고있었고, 라희에 대한 호동의 마음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있었겠죠.
물론, 그럼에도 자신 앞에서 라희를 안아주는 호동의 모습에 은근한 질투와 함께 상처를 받긴 받았지만.

그리고, 호동의 여자이기에 자신을 질투하고, 그런 질투의 마음을 차마 다 감추지도 못하는 라희의 모습을 바라 본 자명은, 어떨가...?
호동의 곁에서, 호동이 바라보는 라희를 바라보던 자명은,
라희의 곁에서, 라희가 바라보는 호동을 향한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자명은,
라희또한 자신의 마음과 결코 다르지않은, 겉으로는 위엄서린 한 나라의 태녀이지만,
호동 앞에서만은 한 남자를 마음에 담은 한 여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왠지, 저는 말이죠.
자명을 질투하는 마음을 죄다 감추지도 못한 채, 
목숨을 구해주고, 태녀의 자리를 되찾게해준 그 은혜를, 갚기는 커녕, 되려 죄를 묻을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에 대한 미안함을, 자명에게 돌리려는 라희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명은...
애써 냉정한 척, 틱틱거리고 냉랭하게 굴어도, 6년 전 율구헌에서 만나, 내 시녀가 되어라, 라던 그 장난스럽고 다정한 공주님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끼지는 않았을런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라희는 자명을 통해서 낙랑국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되찾은 태녀의 위엄을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자명은 라희를 통해서 낙랑땅을 밟게되고, 낙랑국 왕녀의 삶을 되찾기 위한 첫 걸음을 하게됩니다.




호동왕자와 해애우를 봐라.
여염의 집에선 어쩔지 모르겠지만,
왕실에서는 왕위에는 위협이되는 동생의 존재가 그리 반갑진 않겠지. (라희)

자명은 묻게됩니다. 만약, 죽은 동생이 살아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라희는 대답합니다. 왕위에 위혐이 되는 동생의 존재가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이라고.

막 태녀가 되었던 어느 날, 
모하소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자명이 죽었다는 동모현 바닷가에 꽃을 뿌리던 라희는 말합니다.
죽어도 권좌를 위해 내 동생을 죽이는 일은 하지못해. 라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해애우와 호동의 관계...
이제 갓 백일이 지난 해애우로 인해서 흔들리는 호동의 불안한 입지를 두 눈으로 바라본 라희는 말합니다.

왕실에서는 왕위에 위협이 되는 동생의 존재가 그리 반갑진 않겠지. 라고.

그렇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랑만 받아왔고, 태녀의 자리가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기에, 큰 위협없이 살아온 라희는, 만약에 자명이 살아있다손 치더라도 동생과 권좌다툼을 하지않겠다는 그 날의 맹세와 달리,

우물 안 개구리가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다시금 제 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제 것이고, 언제나 자신을 향해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사랑도, 백성의 사랑도, 낙랑국 태녀의 자리저도,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음을,

최리의 왕으로서의 자결명령과 해애우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리는 호동의 입지를 두 눈으로 보면서 알게된 듯 하더군요. 그래서 라희는, 동생이 존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솔직한 마음을 말하게됩니다.
여왕이 될 태녀의 입장에 서서 말이죠.
그렇게, 꿈꾸는 듯이 태녀의 자리에서 낙랑의 미래를 바라보던 라희는 더이상 꿈을 꾸지않고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단지, 그런 말을 들려주는 상대가, 모하소엄마가 끔찍히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딸, 어쩌면 낙랑국 전체를 흔들고, 자신마저도 흔들어댈, 자신으로선 그리 반갑지않을 '동생' 자명인지 모른 채 말이죠.

그러고보면, 라희가 자명을 미워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을 쓰게되는 것은, 본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반쪽짜리지만 한 아버지의 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핏줄의 힘과
자신의 입지를 흔들어대고, 자신이 받아야할 사랑을 나누어 가져갈 존재라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최리가 일단은 낙랑국으로 데리고가서 죄를 묻겠노라, 하는 말에 라희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였으면 싶은 마음과 그녀의 애절한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충돌하면서, 그렇게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닐런지.

그렇게, 라희는 자명이 고마우면서도 밉고, 미우면서도 또 고마운,
완전히 미워하지도 고마워하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자명또한, 라희는 호동에겐 꼭 필요한 여인이라는 것에 대한 여자로서의 질투심과
자신을 죽이려는 왕자실의 딸이라는 것에 대한 약간의 미움,
그리고 자신의 언니라는 것에 대한 그리움 등등이 섞여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현재까지의 자명은...
일단은, 그저 엄마만 보면 된다는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만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쩌면 라희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진 않는 듯 했습니다.
물론, 모르죠.... 이미 그런 마음도 먹고있지만, 엄마가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커서 접어둔 것인지도.

무튼, 차차숭과 미추와 일품은,
자명에게 이제 낙랑국 공주로서 그동안 당한 모든 것을 보상받으라고 하지만, 자명은 현재의 상황에 그저 긴가민가 싶어하는 듯 하달까?

그렇게 자매는,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처음으로 오랜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아버지, 소녀, 자명이옵니다. 얼마나 뵙고 싶었는지...
지난 날, 어머니는 뵈었으나 아버님은 뵙지못해, 그리웠습니다. (자명)


그리고 자명은, 엄마 모하소를 만나기 전, 아빠 최리를 보게됩니다.
그러고보니, 자명은... 모하소를 본 적은 있으나, 최리와의 만남은 이 날이 처음이더군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안고살던 자명은, 처음만난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도 못한 채, 라희를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의 다친 팔을 걱정해주며 인자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최리의 따뜻함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늘 아버지의 그늘에서 움츠려살던 호동의 모습을 봤던 자명은,
낙랑국 왕이 라희에게 볼모로 잡혀있는니 자결을 하라던 명을 내렸다는 사실을 들은 적 있는 자명은,
왕이란 이름의 아버지란 그리 차갑고 잔인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를텐데...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달리, 꽤나 다정하고 인자한 모습에 더욱 놀라고 감동했을지도...;

어찌되었든, 고구려궁에 그리 지내면서...
무휼을 한 번도 못보지도 않았을텐고, 무휼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든 들었을테니 말이죠.

자명은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리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던 길동이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한 채,
그렇게 라희와 최리의 모녀상봉 언저리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아파 했습니다.

쾌도홍길동, 꽤 재밌게 봤었는데...ㅎㅎ (쌩뚱)





2. 원후마마는 물론, 폐하도 이 왕자실을 죽일 순 없습니다. (왕자실)

인생 참 쉽게사시는 군요.
원후의 자리도 이 왕자실 덕에 오르고, 이젠 자명이까지 나한테 찾아달라시는 겁니까?

누가 자명일 인정합니까?
복숭아를 복숭아라고 형님 혼자 백번 우겨도 복숭아가 아닙니다.
문무백관이, 만 백성이 복숭아라고 인정해야, 비로소 복숭아가 되는 것이지요.
탁치와 하오개를 죽인 낙랑국의 원수요, 태녀를 잡아간 매국의 계집을 그 누가 공주라 인정하겠습니까?

라희는 신탁을 받고 태어난 아입니다. 낙랑국의 여왕이 될 아이!
고구려 땅에서 죽을 운명도 아니지만,
기예단 천것으로 웃음이나 팔아온 자명이에게 모든 걸 빼앗길 아이도 아닙니다.

형님께서 자명일 공주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알려드리지요.
라흴, 형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면 자명인 공주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젖먹여 키운 라희를 형님 손으로 죽일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군요. (왕자실)


모하소는 권력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반수전에 앉아, 최리의 사랑을 받고 라희가 곱게 자라나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그 사이사이 자명을 향한 그리움과 어딘가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살아간 듯 했습니다.
모하소는 왕의 아내인 왕후로서의 행복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에 만족한 듯 살아가고 있었달까?

왕의 아내란, 그저 한 남자를 내조하는 것이 아닌, 나라를 내조하는 자리일테니 말이죠.
겉으로 드러난 권력자가 아닌, 숨어있는 권력자랄까...?

모하소는, 그렇게 꽃같이 살아가면서도, 당연히도 자신이 낙랑국의 원후임을 잊지는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내내 후원의 꽃으로 살아가던 모하소는, 엄마란 이름이 주는 용기로, 자신의 손에 쥐어진 그 권력이란 것으로 왕자실을 누르려고 합니다.

그녀는 내내 후원의 꽃으로만 살아왔기에, 권력이니 정치니,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왕자실이 힘이 없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그 힘을 감추기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더군요. 모하소는, 그리 오래 원후의 자리에 앉아있었음에도 그런 면에선 꽤나 순수하단 말이죠.

진양궁 안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원후로서 태모로서 대해주지만, 실질적인 권력자는 '왕자실'이라는 것을, 모하소는 그 날 알게되었습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권력은 신기루같은 것이라는 걸 말이죠.
숨겨진 권력의 중심에 왕자실이 있었고, 자신은 신기루를 쥔 채로, 그 언저리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모하소가 원후이고 태녀의 유일한 모후이자 태모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라희가 왕자실보다는 모하소를 더 따르고 좋아라한다고 하더라도,
태녀의 생모는 왕자실이고, 왕자실의 아우 왕홀이 대장군이며, 왕자실의 뒤에는 라희를 다르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하니 말이죠. 게다가, 내내 최리의 마음을 얻지못한 것이 최대의 단점이던 왕자실이, 드디어 최리의 마음까지 손에 넣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그들이 눈치보고 따라야하는 이들은, 세상물정 모르고 정치를 모르고 그렇게 후원의 꽃으로 살아가는 원후가 아니라, 숨어있는 권력자이자 태녀의 진짜 모후인 차후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왕자실이 최리를 왕으로 세운 것은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아는 사실이니 말이죠.

왕자실은, 진양궁의 주인이자, 낙랑국의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진양궁은 왕자실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모하소는 물론 최리마저도 함부러 왕자실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최리또한 그 것을 알고있었기에, 왕자실에게 냉랭해도 내내 그녀를 내치지 못하고,
이런저런 상황이 이어지며 찾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결국 그녀에게 다시 손을 내민 것은 아닐런지...
노련한 정치가인 최리는 왕자실이 있어야 낙랑국이 분열되지 않음을 알고있었던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자명을 공주로 세우기위해서, 손에 쥐어진 권력을 처음으로 이용하려던 모하소는... 원래 독한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무섭고 끔찍한 왕자실이 모습에 너무나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라희를 형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면, 자명인 공주가 될 수 있다던 왕자실.
그리고 그 말에 경악하는 모하소.

전 말이죠, 어쩐지 모하소가 라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순간적으로 들었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위대하고 강한 존재이니 말이죠.
왕자실이 딸을 위해서 못할 짓이 없듯이, 모하소또한 딸을 위해서 못할 짓은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고있습니다. 슬슬 모하소도 그 절절하고 위대한 모성애의 결정판을 보여줄 때가 되어가는 듯 하고.

모하소에게 라희는, 잃어버린 자명을 대신해서 모하소의 마음을 채워준, 가슴으로 키운 아이였고, 그래서 모하소에게 있어서 라희는 자명 못지않게 애틋하기에...  결코 죽이진 못하겠지만, 
어린 시절 라희가 물었던 그 질문, 라희의 인생의 크나큰 좌절을 줬던 그 질문.
자명이와 라희가 물에빠지면 누굴 구하겠느냐는 그 질문의 대답이... 모하소의 위대한 모성애의 결정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자명일 구하고, 라희를 따라 죽을 것이라던 그 말.
비록 라희를 따라 죽진 않겠지만, 왕자실의 손에서 자명일 구하기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런지.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님 말구.)

어찌되었든, 이번싸움은 왕자실 승!
큰 기대가 없던 두 여인네의 대립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의외였습니다.






3. 제... 이모님이 맞으십니까? (일품)

너무 떨려서...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될지...
6년 전 내빈관서 제게 왜 낙랑으로 가냐고 물으셨을 때, 사실대로 말할 것을...
낙양에서 왜 진작 말하지 못했나,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다시 뵙게되면, 묻고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제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이모님처럼 곱고 아름다운 분이셨는지,
제 이름은 무엇인지, 제 어머니는 행카이가 아닌 뭐라고 날 부르셨는지...
이 많은 물음들은, 나중에 차차, 이모님이 나아지면 묻겠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이 말씀밖에 드릴 수 없네요.
살아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리 이모님을 다시 뵐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품? 이모님, 일품이 그게, 제 이름입니까? 이 조카 이름입니까? (일품)


살아오는 내내, 모두 자명만을 찾고 또 찾아감으로서, 일품은 아주 조금이라도 속상하고 아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잖아요. 삿갓배에 버려진 것은 '자명'과 '일품' 이 두 아이인데, 정작 찾는 것은 '자명' 뿐이니 말이죠.
든든한 버팀목같은 오빠로서 자명의 곁에 서있어야했던 일품은, 자명이 내내 엄마가 그리워 어쩔 줄 몰라했던 것만큼 엄마가 그리웠을 것이고, 자신을 알고싶어하던 자명만큼이나 자신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단지, 약해져선 안되는 강한 오빠여야 하기에, 그 감정을 모두 숨기고 있었을 뿐.

그리고, 자신이 그리 지키려고 애쓰던 동생이, 동생이 아닌 지켜야할 주인임을 알게된 일품은... 큰 혼란은 없어보였지만, 어찌되었든 충격을 받긴 했겠죠. 곧, 운명에 순응하고 쉽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렇게 일품은, 동고비와 재회하게 됩니다.
잠시 스쳐가는 그 상황에서, 그 뛰어난 눈썰미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있는 동고비를 단박에 알아채서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되더군요.

일품은, 이제 자신의 이름이 '행카이'가 아닌 '일품'임을 알게되었고, 자신의 운명은 자명을 지켜야하는 것임을 알게되었고, 자신에게도 자신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느정도 기대하던 이산가족 상봉이건만, 생각만큼 애틋하고 절절하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그립고 그립던, 엇갈린 시간 속에서 겨우 만난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절절함이, 일품에게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품은, 그 애틋함과 절절함을.... 아직도 마음 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는 듯 보인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왕녀 자명고 28개의 회차를 다 합쳐도, 이 날의 일품이 대사량을 다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 하나와 이모와 조카가 동년배로 보인다는 어뚱한 상상 두개를 해봤습니다.

일품은, 동고비와의 재회가 너무나 떨리고 설레여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리봐야하니, 그리 보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자명이 엄마를 그리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 만큼이나, 꼭꼭 숨겨왔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겨우겨우 꺼내어 풀어내게 되더군요.

어쩐지, 일품과 동고비는, 긴 시간의 이별에 대한 회포를 다 풀진 못할 듯 그리 느껴졌습니다.
긴 시간을 돌아서 만난 일품과 동고비는, 이모와 조카로, 유일한 혈육으로서의 정을 느끼기도 전에, 왠지 이별할 듯 싶달까...? 이 것이, 이런류의 이야기들의 정석이기도 하고...ㅎㅎ (소설이건 만화건 드라마건 영화건)




쇳가루가 말이다, 지남철한테 막 끌려가자누.
진앙철같은 인생이 있는거고, 쇳가루같은 인생이 있는 것다.
공주님의 인생이 지남철이라면, 너나나나 그 운명을 따르는 쇳가룬게야.
장군소린, 내 몫이 아니자네. (차차숭)


그렇게 일품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자명을 지키기위한 삶을 살아가고...
차차숭과 미추또한, 쇳가루가 지남철한테 끌려가듯이, 지남철같은 운명의 자명을 따라다니는 쇳가루 같은 자신네의 운명을 받아들인달까....? 자명의 운명에 이끌려가는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은 채... 그리 살아가게 됩니다.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것을,
그 것을 거스르려는 행위마저도 정해진 운명이라던 지니(빌테면 빌어봐)의 말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 운명에 기대어우는 모하소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왕자실보다 덜 빛나는 것처럼...
운명이 이끄는대로 나아가는 자명과 그의 무리들의 그 위대한 결심이, 그리 멋있어보이지만은 않더군요.

뿌쿠는 낙랑국 원후의 딸 자명공주다,
이 한줄 글귀로, 자명을 바로 '공주님'으로 대접하는 차차숭외 2명이라니...;
참 믿음도 강하고 넉살도 좋다~ 혹은, 공주님 덕에 낙랑국 장군이 되고싶은 건가... 라고 생각한 건.... 저 뿐인가요? 아참, 차차숭외 2명은, 고구려군으로 낙랑국과 싸운 전력이 있어서 그건 조금 힘들 수도 있겠군요.
자명과 함께 낙랑국에선 공개수배 되어있는 이들이니 말이죠.







4.  아버님의 시대와 소자의 시대는 다릅니다.
폐하께서 다스리는 고구려와 신이 다스려야 하는 고구려는 다릅니다. (호동)

아버지란 그런 것이지요.
내 아들이 나보다 더 뛰어나길 바라지만,
내 그림자가 되어 자신이 세운 업적을 이어주길 또한 바라는 것. (송옥구)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아버님의 비위를 맞추느라 옳다 그르다도 할 수 없다면, 그건 죽은 왕자다.
왕이 될 것이야. 좋은 왕. 현명한 왕.
나와 백성이, 고구려와 고구려에 복속된 백성들을 함께 살리는 왕.
그런 왕이 되고자한다. (호동)

소자, 아바마마의 그림자가 아니옵니다.
땅을 넓히는 것은 검이나, 그 나라 백성의 마음을 얻지못하면 그 땅을 지킬 수 없습니다.
땅을 얻기보다, 그 땅을 지키는 것의 어려움을 왜 모르십니까. (호동)

내 그림자가 아니라고?
할아버지 동명성왕의 그림자로 살아온 나한테, 넌 내 그림자가 되기 싫다고?
왕에게 생각이 다른 아들은, 후계자가 아니라, 쳐 죽일 정적이라고 내가 얘기하지 않았더냐! (무휼)


저는 딸인지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잘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관계가 참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더군요.
특히, 왕이란 이름의 아버지와 왕자란 이름의 아들의 그 관게.
아군이라면 누구보다 든든하지만, 적군이라면 그 누구보다 두려운 관계.
완전한 아군도, 완전한 적군도 될 수 없는 참 모호하고 어려운 관계.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주 예전에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가, 요근래 다시 책장을 펼친 책 중에 '사도세자의 고백'이란 책이 있습니다. 작년에 아주 대박난 드라마 '이산'으로 인해서, 뒤주에 갇혀죽은 정조이산의 아버지이자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드라마에서 사도세자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제가 그 드라마를 보지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지식으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죽은 미치광이 세자, 정도로 알고있습니다. 그의 아내인 혜경궁이 쓴 한중록에 의해서 말이죠.
'사도세자의 고백'은, 그 한중록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가, 왜곡되어있을 것이라는 반박을 하는 내용의 책이었고, 저는 꽤나 흥미롭게 읽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흥미롭진 않아요.....;

갑자기 쌩뚱스레, 전혀 다른 역사를 그린 '영조'시대의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책 속에서 재조명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무휼과 호동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춰져서 였습니다.
아버지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이 다름을 말하며, 곧 다가올 자신의 세상의 초석을 다져가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을 경계하는 아버지.

이 책이 말하는 영조는, 엄청난 콤플렉스 덩어리로, 왕으로 재임하는 내내 자신의 감추고픈 과거사를 포장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다가, 결국은 너무나 사랑했지만 자라나면서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아들을 죽이는 왕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무휼이 영조처럼 콤플렉스덩어리로서 살아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너무나 아끼던 호동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하여, 비오는 날 먼지나듯이 두둘겨패는, 복날 개 잡듯이 호동을 패는 무휼의 모습에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여버린 영조와 무휼이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란, 내 아들이 나보다 더 뛰어나길 바라지만,
내 그림자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이어주길 또 바라는 것이라고 송옥구는 말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의 그림자로 살기 싫다는, 고구려에 대한 아버지의 그릇된 판단을 그냥 참고 네네~ 하긴 싫다는, 아버지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다르다며, 그렇게 대드는 호동의 모습에서 무휼은 커다란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아마, 무휼은 호동의 그 말이 결코 틀리지않았음을 알고있었을 겁니다.
낙랑공주를 죽이는 것이 고구려에 큰 도움이 되기는 커녕, 해가 될 것이라는 것도.

그러나, 왕이란 자리는, 나라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며 꾸려나가야하지만, 또한 모든 백성과 신하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위엄도 있어야하기에, 무휼은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낙랑공주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닐런지.
낙랑공주의 탈출은, 대무신 무휼이란 명성에, 고구려란 이름에 커다란 먹칠을 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죠.

호동은, 자명과의 만남 이후로, 꽤나 물러져버렸다고 태추는 말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왕이되어야하고, 그렇게 왕이 되기위해서 살아가던 호동은, 어떠어떠한 왕이 되겠다, 라는 이상을 펼치게 되더군요. 자명과의 시간이, 자신의 쓴맛만 바라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던 호동이, 백성들의 마음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된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그 것이 호동에겐 독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도세자의 고백'의 사도세자를 보며 느낀 점은.... 때론 숙일 줄도 알아야하고, 굽힐 줄도 알아야하며, 그렇게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는데, 자신이 굳게믿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처음부터 사방에 적을 만들어서, 현재 권력이 있는 자들의 눈 밖에 난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이 비참한 최후로 가는 시작이었고 말이죠.

그리고, 호동또한... 때를 기다리며, 웅크려야할 그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닐지. 호동의 입장에선, 고구려의 왕자로서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싶었고, 아버지의 그림자로 살기싫은 아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너무 빨랐고 너무 격앙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를 위해서 삼궤구고두를 할 줄 알 정도로, 상황에 따라 휘어질 줄 알고, 고개숙을 줄도 알고, 몸을 굽힐 줄도 알던 꽤나 유연하고 노련한 호동이, 갑자기 너무 올곧고 대쪽같은 성격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호동의 행동에서 왠지 너무 무리수를 둔 듯해서 당황했달까?

내가 아는 호동은, 무휼의 심기를 그렇게나 건들고, 얻어터지면서까지, 아버지의 뜻을 반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대쪽같고 청렴한 아들이 아니라, 그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면서 무휼의 마음을 돌리려는 녀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호동을, 너무 잘못알고 있었나봅니다....; 아님, 정말 자명으로 인해서 변한건가....?
또 아님, 무휼과 호동의 갈등을 조금 빨리 그려내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것인가... 했습니다.
사실, 후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극적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무리수.

무휼은, 라희가 도망치던 그 날, 라희를 놓친 군사들의 목을 베게됩니다.
그렇게, 무휼은 안그래도 없는 호동의 사람들을 죽여나가게 되더군요.
아마, 무휼은 어느새 성장해서 자신의 그림자 노릇을 하기싫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호동의 힘을 꺽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휼은 신하들 앞에서 호동을 무시하고 망신주며, 호동의 사람을 죽여나감으로서, 호동이 가진 왕자로서의 입지조차도 무척이나 흔들어 놓아버렸습니다.


아버지인 왕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왕자를 누가 우러러 보겠습니까...?

고구려에서 호동이 고립되고 흔들리는 것은, 비류나부도 송매설수도 해애우도 아닌, 호동을 왕자로서 대우해주지 않는, 무휼의 그 처사가 가장 큰 원인일 듯 합니다. 내가 우러르고 내가 귀하게 여기지않는 사람을, 다른 이들에게 귀하게 여기라고 백번천번을 말한 듯, 누가 귓등으로나 듣기나 할 것이며, 어느누가 귀하게 여기겠어요....?

해애우가 생기고나니, 호동을 향한 무휼의 그 애정이 분산되고 있었나봅니다.
이 아이가 아닐지라도, 나에겐 나를 이을 후계자가 있다, 라는 마음.
이래서 무휼은, 호동이 아닌 또다른 아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썼고, 그 존재의 등장을 두려웠나 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아버님의 시대와 소자의 시대는 다릅니다.
폐하께서 다스리는 고구려와 신이 다스려야 하는 고구려는 다릅니다.


1회에서 무휼은, 생각이 다른 아들은 정적일 뿐이라며, 너를 입증하고 너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자명'을 죽이라고 합니다. 왠지모르게 그 때의 무휼과 저 말을 하는 이 날의 호동이 겹쳐지면서, 무휼은 아마, 호동의 저 말이, 내내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튼, 수면 밑에서 은근한 갈등이 그려지던 호동과 무휼또한, 그들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호동은 꽤나 위함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그 누구도 호동에게 위로도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명마저 떠나보낸 호동은, 자명이 라희를 도와 고구려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게되고, 그 것은 자명을 호위무사로 두었던 호동에겐 커다란 독이 될 수 있는 상황일 듯 하더군요.

어떻게든 호동을 제거하려는 비류나부에겐,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테고,
안그래도, 호동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무너져내린 무휼은, 아마도... 호동을 음해하는 송매설수와 송옥구을 그냥 흘려듣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아들이 두려운 왕은, 그 아들을 더 이상 아들이 아닌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바라볼테고, 

나이가 든 권력자는, 
자신의 손에 쥔 권력이 신기루가 아님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기에 귀가 무척 얇아진단 말이죠.


호동은, 어찌되었든 간에 낙랑국의 두 여인네로 인해서 꽤나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입지가 흔들흔들~

호동에게 자명은, 태풍인가 봅니다.
시티홀에서 조국이 미래에게 '너는 나에게 태풍이다'라는, 모든 걸 다잃을 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란 그 말이 어쩐지 기억에 남았는데... 호동에게 자명또한 그런 태풍이 아닐런지.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 둘, 자명으로 인해서 흔들려가는 입지가, 결국 자명으로 인해서 모든 걸 잃게 될 호동이니 말이죠. 호동은, 예리한 감인지, 그런 호동이 안쓰러워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인지, 호동은 예지몽을 꾸게됩니다. 뭐... 그게 무슨 뜻인지 호동은 알 수 없을테지만.



해애우를 말 잘 듣는 아이로 기르세요. 괴팍맞은 무휼의 눈 밖에 나지않도록 말입니다. (송옥구)

뭔가, 치밀하고 생각이 깊어보이던 부녀는, 해애우를 낳은 후부터 긴장이 탁~ 풀린 듯 보이더군요.
너무, 인생... 편안하고 즐겁게 살려고 하는 듯 하달까....?

그래도 해애우를 낳은 후의 매설수는,
부쩍 웃음짓는 일이 많아졌고, 미모는 빛을 발하는 듯 하더군요. 곱더이다.

해애우를 말 잘 듣는 아이로 기르라던 송옥구. 그리고 그러겠노라 자신만만해하는 매설수.
말 잘듣는 아이로 자라나는 해애우는, 너무 말을 잘 듣는 아이인지라 꽤나 심약한 아이로 자라나는 건 아닐런지... 그래서 아버지뻘인 형님 호동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갑작스레 나타나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삼촌 해색주에게 치이며, 목숨을 위협받는 그 상황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내내, 믿을 건 오직 비류나부와 엄마 매설수인 상황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왕이 되면서 다 풀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해애우는.....
호동을 생각하면 왜 태어났니~ 싶으면서도, 어찌보면 참 불쌍한 녀석입니다.







* 뭐, 나름 괜찮았지만, 어딘가 붕~ 뜨는 기분도 들더군요.
침착하게, 자신들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그려나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드러내면서 감정들이 폭팔하고 있다고나 할까?

* 휘어질 줄 알던 호동이 갑자기 무슨 휘어지지않는 대나무인냥,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면서 무휼에게 대드는 모습이나, 그런 호동을 무자비하게 패는 무휼이나, 그런 모습을 보며 남몰래 미소짓는 매설수와 송옥구.
왕자실에게 손찌검하는 모하소나, 그런 모하소를 자신의 권력으로 눌러버리는 왕자실. 
모두들... 감정이 격앙되어 가고있는 듯 하더군요. 워워~

* 캐릭터들이 자신들이 기존에 고수하고 있던 색에서 한톤씩 더 진한 색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 했습니다.
왠지... 자명고가 급하긴 급했구나, 싶은 이 떨떠름한 마음은 또 뭐라니..ㅡ.ㅡ.?


* 본방 전에 발행해야한다는 압박으로, 다시 읽어보지도 못한 채 그냥 올려요....ㅡ.ㅡ;
나중에 수정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흘려서 읽어주셨으면 너무나 감사할 듯 하네요....ㅎㅎㅎ


* 수정했어요.... 오타투성이었죠? 말도 잘 안이어지고... 죄송합니다....;
지금도 좀 왔다갔다 거리지만...앞으론 이렇게 급히 발행하지 않겠노라, 반성하고 있습니다.
(2009. 06. 17. Pm.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