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해강의 죽음을 모른 채 살아온 4년. 여전히 해맑고, 여전히 고고한, 최진언. 그리고,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독고용기가 되어 밝게 살아가지만 밤마다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끙끙 앓는 도해강. 두 사람이 만났다. 가장 원하지 않았던 시기에, 두 사람은 만났고, 알았고, 얽히기 시작했다. 해강은 이 남자가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고, 진언은 이 여자가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이 즈음에서 궁금한 것은, 현재 최진언의 심리다. 도대체 그는 왜 독고해강(독고용기+도해강)의 주변을 서성이고, 신경쓰고, 화를 내며, 끌려가는 걸까. 그 것이, 본능이고 사랑이고 운명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 본능과 사랑과 운명을 말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최진언이 도해강의 죽음을 알았다는 전제 하에 지금의 전개가 그려져야만 했다. 그랬다면, 독고해강을 바라보는 진언의 혼란과 이끌림과 애틋함 등등의 감정을 나도 이해하며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그러하지 못한 상황에서, 독고해강과 만났고, 자신을 못알아보는 그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던 그. 그는 4년 전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자신을 외면할지도 모르는 그녀에 대한 배려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강이가 자신을 모르는 척 할리가 없다고 확신했기에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것 같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는 마지막 순간, 해강의 말, 해강의 감정, 해강의 사랑, 그 기억 속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지기는 하더라. 어쩌면, 해강이는 이혼을 하더라도 자신 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해강이가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모습을 되찾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최진리가 쉴드를 쳐주는 대사를 했지만, 나는 최진언의 말과 행동과 표정을 기억한다. 도해강의 말과 행동과 표정과 눈물을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의 그가 납득이 안된다. 해강의 채취조차 싫어했던 그가, 해강과 마주하는 것조차 괴로워했던 그가, 해강과 대화하는 것조차 거부했던 그가, 각자 살다 각자 죽자며 매정한 말을 퍼붓던 그가, 어쩌면 해강의 숨소리 조차 듣기 싫었을지도 모를 그가, 결국 아버지에게 해강을 '치워달라'는 말로서 해강을 잔인하게 버렸던 그가, 다시는 해강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로 해강을 외면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독고해강 앞에서 세상에 다시 없을 애틋함을 보이는 중이다.
이제와 그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며 최진언을 순정남으로 포장하지만, 강설리와 함께했던 그 순간의 감정은 해강이 강물에 뛰어들만큼 좌절할 정도로, 진실이었다. 이제와 순정남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불륜이 불륜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그 순간의 감정에 휩쌓여 해강에게 좌절과 상처를 줬던 그가, 이제는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독고해강 앞에서 세상의 모든 아련함을 보이는 중이다. 나는 도무지 이 불편한 로맨스에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설레라고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떼어놓고 보면 설레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지만, 무색무취 무감동. 난 사실, 위의 저 장면도 설레이는 장면인지 몰랐다가, 뒤늦게 반응을 보고 알았다. 감정선이 뒤틀려진 로맨스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는 중이다. 참고로, 나 로맨스 좋아함. 그 것도 무지. 많이.
아무튼, 최진언에게 호흡기를 다는 방법은 제 3자의 입으로 쉴드쳐주며 순정남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해강의 죽음을 알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던 그가, 회사라는 현실 속에서 그 세상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이상 그가 해맑지도 고고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더러운 바닥에 발을 디딘 채, 4년 전 자신이 경멸했던 해강의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회사에 속한 그가 이제는 회사 밖에 속한 그녀와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속한 곳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그 후, 그가 이젠 해강과 자신이 잃어버린 밝고 순수하고 따스함을 간직한 독고해강의 주변을 서성이든, 신경쓰든, 화를 내든, 끌려가든, 해야 그 감정선에 납득이 가지 않을런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이끌림, 그렇게 독고해강에게서 문득 문득 보이는 도해강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란을 느낀다던지. ...아무튼, 다크진언-독고해강 라인을 기대했던지라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변화를 뒤로 미룬 것이라면, 적어도, 최진언이 도해강의 죽음을 알기 전에 독고해강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그러길 간절히 바라기도 했고. 그래도, 드라마 자체는 재미있어졌다. 덕분에 청률이도 쬐끔이나마 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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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태석의 동생 민규석은 도해강의 엄마 집에서 머무는 중이다. 아마도, 민태석이 동생을 그 집에 살게한 것은 그가 가진 일말의 죄책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민규석의 존재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까지 걸린 해강모가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이유 하나 즈음은 아닐까, 싶었다. 또한, 독고용기와 해강모를 만나게 할 연결고리도 될 것이고. 여기서, 규석이 용기와 얽히게 되며, 자신에겐 한없이 다정한 형의 본색을 알게될 것이고, 그에게도 큰 혼란이 올 것이다. 그 혼란의 중심에는 용기와의 관계도 있을 것이고. 훗날, 과거의 진실이 밝혀진 후, 규석과 진언의 선택과 그로인해 나아가는 길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으려나?
2> 독고해강, 그 자체를 사랑해주는 백석. 꽤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꽤 멋있기도 하다. 그의 장난스런 행동 뒤에 간간히 보이는 표정과 행동과 말이, 그가 얼마나 해강을 사랑하는지, 느껴져서 좋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을 사랑한 최진언과, 상대가 어떤 모습이든 그 자체를 사랑하는 백석. 두 사람이 보이는 사랑 또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3> 최진언의 감정선 외에도, 이 드라마에는 아직 물음표가 많다. 그 날, 독고용기를 구해준 사람은 누구이며, 독고용기는 누구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 독고용기의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마, 이 부분에 반전이 있지 않을까, 추측 중이다. 현재 예상은 민태석의 옆에 붙은 피디가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달까. 또 하나는, 기억을 잃은 해강은 '독고용기'에 대해서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을까, 이다. 독고용기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그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것은 조회할 수 있지 않았을런지. 등본만 떼보았다면 집이 어디인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아, 등본 떼려면 지문인식이 필요한데 그 때 본인이 독고용기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지 아니한가. ...혹시, 해강은 막연히 자신이 독고용기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스스로에 대해 더욱 더 두려워하며 백석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주저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자는 어떻게든 풀 것 같은데, 후자는 대충 넘길까봐 겁난다.
4> 이 드라마의 세계는 참 좁다.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 그래서, 이 아슬아슬한 비밀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랄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부분이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 라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억지로 모아놓은 느낌이라는 것. 그래서, 아슬아슬한 상황 중 어느 한 쪽이 무너지는 순간 와르르 쏟아져 세계 뒤엉킨다거나 그런 건 없을 것 같다. 어느 한쪽에서 드러나면 돌려막기로 비밀유지, 이렇게 될 것 같은. 뭐, 어쨌든, 이 부분을 통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전개하기 편하기도 할테고.
5> 최진언의 감정은 무엇일까, 생각했으나... 나로선 잘 모르겠다. 생각을 하다가 문득, 4년 전의 진언은 해강의 숨소리 조차 듣기 싫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자, [드라마스페셜 - 아내의 숨소리]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끝에 아내와 결혼한 남편에게 권태기가 찾아왔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아내는 그 이유를 물었고, 남편은 니 목소리와 숨소리가 듣기 싫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이혼을 해줬고 남편이 그 이유를 묻자, 다른 것은 다 너에게 맞춰줄 수 있지만 숨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그렇다고 죽을 순 없지 않겠느냐고. 그 후 이런저런 사건들이 전개되는데... 후반부에 좀 슬펐던 것 같다. 나름 재미나게 봤던 것도 같고. 아무튼, 이 드라마의 남편도 개갞기였다. 아내 치워달라는 넘이나, 아내 숨소리도 듣기 싫다는 넘이나.
6> 독고해강과 최진언을 이어주는 음악은 '운명의 수레바퀴(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이다. 이 음악은, 해강과 진언의 딸 은솔을 잇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강은, 그 음악에 가슴 저릿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고, 진언은 독고해강의 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리라. 은솔에 관한 부분을 과거 부분에서 좀 더 다뤄줬다면 좋았을텐데. 뭐 대단한 비밀처럼 은솔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꼭꼭 감싸두더니, 결국 현재 부분에서 진리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도 별로였다. 그 부분과 그로인한 부부의 위기를 극의 전개로 풀어냈다면, 적어도 지금보단 나았으려나?
7> 설리는 해강을 딱 그 정도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다. 입 안에 박힌 가시처럼, 신발 속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무시하려고 해도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해강을 잊지 못하는 진언과 그의 가족들. 그렇게 해강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순간마다 떠올리지 않을까. 그 날의 마지막 대화를. 아직 다 끝난 것 같냐고, 니가 이긴 것 같나고, 아직 안끝났다, 고 말하던, 해강의 말과, 미소.
8> 간략하게 쓰고 싶었다. 할 말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였다. 로맨스가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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