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왕녀 자명고 8회 - 울지않는 아이가 되어 살아가는, 울어야 사는 아이.

도희(dh) 2009. 4. 7. 19:53

꽃남들이 떠나간 월요일 밤, 저는 자명고를 선택했습니다. 우연히 2회 재방보고 '내 스타일이야~;'라며 재방으로 꼬박꼬박 챙겨보고있었거든요. 드라마 '왕녀 자명고'는 매 회마다 그 전의 줄거리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청자들을 유입하려고 애쓰는 느낌도 들었고, 그랬습니다.

드라마 '왕녀 자명고'의 공간은 고구려와 낙랑과 희희낙낙이 있는 곳(한나라?)... 이렇게 세군데로 나뉘어서 전개되고 있는 중인데, 공간이 세군데여서 약간 산만하게 보이긴 하지만 왠지 극이 완전한 중심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렇게 전개될 듯 보입니다. 극이 중심에 역사나 이런 건 잘 몰라서, 역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감상따위는 못쓰고... 언제나처럼 순간순간 느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끄적거려야겠다, 란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역사적 관점의 멋진 리뷰를 읽고 살짝 주눅들어있는 상태에서 오랫만에 드라마 감상을 해보렵니다. (웃음)

이번 '왕녀 자명고' 8회에서는, '호동-매설수'의 대립과 '자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두 어미의 반응과 부모를 원망하는 자명의 눈물이 크게 마음에 남더군요. 그리고, 울어서 스스로를 지키라는 자명과 다른 ... 울지않음을 뜻하는 뿌쿠란 이름을 가진 어린 자명의 상황까지.

소제목을 짓는 센스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저로서는, 그냥 가장 먼저떠오른 '자명이름이 뿌쿠'라는 것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아서 나름 고심해서 지어보았습니다.
소제목과 감상의 내용은 크게 일치하지않을 뿐이고... 에고고..;;






1. 우리가 쓰레기야? 미역이야? 바다에 왜 버리냐구!!! (자명=뿌쿠)

부모믄 자식 버리면 안되잖아. 어떤 사정이든 길러야하잖아. 굶어죽어도 같이 굶어죽어야하잖아. 바다에 버리면 안되는 거잖아! 우리가 쓰레기야? 미역이야? 바다에 왜 버리냐구! 왜버려! 왜! 왜! 왜! (자명=뿌쿠)

내가 찾아줄게. 오빠가 엄마, 아버지 찾아서 우리 뿌쿠 앞에 데려올게. 왜 버렸는지 물어보게 해줄테니까, 이러지마. 응? 응? (일품=행카이)


'희희낙낙'이란 이름을 가진 사당패라고 해야하나? 그런 천막극단에서 지내게 된 일품과 자명은, 행카이와 뿌쿠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갓난아기 자명을 지키려고 죽을힘을 다하던 어린 일품은, 행카이란 이름으로 또다시 자명에게 부모이고 오빠이고 친구인 유일한 가족이 되어서 뿌쿠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명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뿌쿠(자명)는 행카이(일품)에게 어마어마한 집착을 가지고 따르고있더군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담아두고, 유일한 가족인 오빠마저 잃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행카이(일품)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달까? 그런 그녀의 행동은, '브라더 콤플렉스'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더군요. 1회의 성인자명에게서 느꼈던 것과 다른 어린자명(뿌쿠)이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자라나면서 그녀의 변화에 커다란 무언가가 나타나겠죠?

그녀의 오빠에 대한 독점욕(?)때문에 부상을 입게된 행카이(일품). 그 벌로 뿌쿠(자명)는 칼받이가 되어 공포에 질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자신을 위로해주는 오빠에게 부모에 대한 원망을 풀어내며 울어버리고, 그런 뿌쿠(자명)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다독여주는 행카이(일품).
왠지, 행카이(일품)은 뿌쿠(자명)가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기억하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뿌쿠(자명)는  친여동생은 아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고 지켜야할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죽은 유헌의 부하였던 '호곡'으로 인해서 이제 뿌쿠(자명)에게는 또다른 운명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명'과 '라희'의 목숨을 노리던 그이니 만큼, 동물적인 직감이 있었는지 '자명'을 지목하며 자신의 계획에 합류시키던 호곡. 그리고 그 만남이 과연 성사가 될지, 그 사건이 뿌쿠(자명)에게 어떤 운명의 길을 열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두근두근 거리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호곡은 등장부터 무지 싫었는데~ 이런 꼴로 살아남아서 복수를 다짐하고 있군요. 허허..;




2. 이제 꿈에서보다 더 컸겠지? (모하소)


당신의 성목으로 얻은 아이인데, 그리쉽게 잃을리 없는데, 제가 잠시 의심했습니다. 이제 꿈에서보다 더 컸겠지? 단군왕검이시여, 한 번만이라도 내 아이를 안아보게 해주세요. 제 가슴에 품어보게 해주세요. (모하소)

멀쩡히 길걷다 엎어져 죽을만큼 연한 것도 사람목숨이지만, 캐도캐도 안캐지는 연뿌리처럼 안캐지는 것도 사람 목숨이니라. 라희는, 낙랑국의 여왕이 될 거다. 왕에게 형제자매는 우애를 나누는 대상이 아니라, 피비린 냄새 풍기는 경쟁자일 뿐이야. (왕자실)


자명이 어쩌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모하소와 왕자실은 자신들의 시비의 입을통해 알게됩니다. 아마, 그 날의 일을 기억하는 어느 뱃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더군요. 동시에 알고 자신들의 마님에게 알려주는 걸 보면 말이죠.

자명과 일품을 태워 떠나보낸 삿갓배가 뒤집히지않고, 유유히 바닷길을 따라 어디론가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두 마님의 반응과 대처법은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다릅니다. 자명이 죽지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감사와 그녀를 찾아 다시 자신의 품에 안고싶어하는 어미 모하소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자명'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는 왕자실. 라희를 가슴으로 키우며 왕자실의 딸에게 지극한 사랑을 주는 모하소와 달리, 왕자실에게 자명은 라희의 정적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였습니다.

자명이란 인물자체가 가상의 인물이어서 그런지, 이후의 전개는 전혀 예상이 안되고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스스로 울어서 살아날 운명을 타고난 자명이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살아남을지... 그런 운명을 보이기 위해서는 모하소보다는 왕자실의 눈에 먼저 띄지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있습니다. 너무 빨리 모하소의 가슴에 안기면 재미가 없죠. 이런저런 모진 일을 당하면서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에 호동과도 만나야할테고...;




3. 어마마마, 밤이 깊었습니다. 편히 침수드십시요. (호동)


이미 죽은사람, 한번 더 죽여 뭐하겠습니까?
아바마마께 외면당해, 친아버지한테도 버림받아, 이젠 사촌 여동생에게 왕비자리까지 빼앗긴 그림자 인생. 굳이 내 칼로 베야할... (이유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당신은 점점 더 늙을테고, 나는 왕이 되겠죠. 지금처럼 사세요. 뒷 방에서 몸 낮추고 있는 듯 없는 듯. (호동)

그래, 뒷 방에서 조용히 늙어주마. 그리고 오만함이 널 어찌 죽이는가 내 눈으로 똑바로 지켜보고, 이 걸로 네 관을 묶어주마. (송매설수)


집안에서 버림받고, 아비에게 버림받고, 남편에게마저 외면당한 송매설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호동을 찾아 대련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녀에게 맺힌 한을 풀기위해 응하는 호동.

당연히(?) 호동이 승리하게되지만, 호동은 그녀를 죽이지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스승의 간절한 눈빛도 있었지만, 호동은 이미 매설수의 '센척이 아니라 약해서이다'라는 말에 흔들렸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말하며, 죽이라고 외치는 매설수를 바라보는 호동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면서 그녀를 '동정'하는 호동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고민하 듯 고개를 돌린 순간 마주친 스승의 간절한 눈빛을 핑계삼아 매설수를 살려준 것은 아닐까... 매설수에 대한 '동정'을 '오만'으로 포장하여...

그렇게 호동은, 매설수의 말에 의하면 '오만'으로 상대를 자극하여 죽음을 결심하며 세상에 미련을 버리려는 매설수에게 살아남아야할 이유를 제공해줍니다. 그 것이 그 순간에는 '호동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결과론적으론 호동의 큰 실수이며, 매설수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매설수는 무휼의 아들을 낳아 왕으로 만들고 '호동과 무휼' 사이의 작은 틈을 계속해서 벌리며 두 사람을 적으로 돌려, 결국 호동은 태자도 왕도 되지 못하고 죽게되니 말이죠.




4. 그 밤... 그 이후, 호동과 매설수.


스승님, 제 마음의 아버지로 여겼었는데... (호동)

폐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침복방 시비라도, 어수선 시비라도 좋아요. 버리지만 말아주소서. (송매설수)


야밤에 일어난 그 사건으로 호동은 마음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을두지'를 잃고, 매설수는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며 살아님기위해서 무휼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애걸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호동'이란 이미지는, 무척 여리고 어여쁜 아이라는 인식이 강했었습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영향이 큰 듯 하기도 하고 말이죠. 거슬러올라가자면, 만화 '바람의 나라'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만화'를 초반에만 읽었기에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어머니의 죄를 덮어주어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효를 다하기위해 스스로 '자결'한 호동과 달리, 자신을 죽이려는 어미에게 칼을 겨누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할 왕인 아버지대신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왕녀 자명고' 속의 호동.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갸녀린 '호동'을 기억하는 저로서는 '왕녀 자명고'의 '호동'에 살짝 충격을 받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시 무휼의 아들이자 고구려의 왕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아남기위해 강해질 수 밖에없는.

을두지와의 결별은 호동이 무휼이 원하는 길을 걷게된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1회에 보여준 성인호동의 뜻과 무휼의 뜻이 다름을 보면, 호동에게 을두지의 가르침은 살아가는 내내 마음깊이 새겨져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리고, 호동으로 인해 자극받은 매설수는 무휼에게 '약속'을 지킨다는 말을 받아내며 '왕비'로서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게되었습니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자신의 살아야할 이유를 완성시킬 매설수와 그런 매설수를 내내 견제하면서 왕이 되려고 할 호동.

이 두사람은, 묘하게 닮은 꼴이란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5. 운명의 시작.


호동이란 이름이 잘생긴 사내란 뜻이라던데, 별로잖아. (라희)

너, 참 못생겼구나. 뚱뚱한게. 커서 좀 예뻐지면... 내가 좀 덜 괴롭겠는데? (호동)


낙랑에 사자로 온 호동과 그런 호동과 만난 라희. 삼각 로맨스에서 두 사람이 먼저 만나게 되는군요. 어린 호동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어린 겸이'였더군요. 여진구어린이. 왠지 반가워서 '어라랏'했습니다. 전, 이렇게나 사람을 못 알아보니 어쩌나... 싶기도 하고.

능글능글~ 능청스런 호동과 그런 호동에 자극받아 욱하는 라희를 보면서 뭔가 ... 웃겼습니다.
웃겼지만, 은근 설레이는 이 마음은 또 뭐랍니까? (웃음)

호동의 선물인 라희였고, 라희의 운명일 호동이지만... 호동의 마음은 결국 자명에게 가고, 호동의 마음을 얻지못한 라희의 슬픈운명도 떠오르면서 왠지 안타깝고 아쉽고 그렇네요. 이 두 아이의 운명을 이미 봐버려서 그런 것이겠죠?

그나저나, 일국의 왕자의 뺨을 때리려다 실패하고 칼로 얼굴에 상처를 준 라희는... 정말, 한 성격 하시는군요.
그 걸 또 능청스레 웃어버리는 호동은 또 어떻고...;

왠지, 결말을 미리 봐놓고도 혼자서 '호동-라희'를 응원하고 앉아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6. 왕후가 되고픈 두 여인... 모양혜와 왕자실.

 


어떠냐, 자실아. 인생이 쌉싸름~ 하지? (모양혜)

언니두 참. 쌉싸름하긴요. 달큰하면 몰라두. 신생 낙랑국, 왕굉대왕의 하나 뿐인 여동생이 되는데, 달큰할 수 밖에요. (왕자실)


왕후가 되어 권력을 손에 넣고싶은 모양혜와 왕자실.
후덕한 외모와 달리 속에 칼을 품고있는 모양혜와 아름다운 미모 속에 독을 품고있는 왕자실.

모양혜는 어쩐지 왕자실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왕자실이 최리에게 시집가기 전까지는 모양혜와 함께 지냈는데, 그렇게 지내면서 뭔가 왕자실의 성격에 다소곳이 있진 않았을테고 모양혜의 속을 팍팍 긁어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왕자실을 향한 모양혜의 분노는 꽤나 세게 다가왔거든요.

칼과 독을 품은 두 여인네... 과연 누가 승리할지는 이미 알고있지만, 모양혜의 캐릭터는 꽤나 신선하고 좋더군요. 게다가 살짝 귀엽기도.. (웃음)



7. 그리고,

양파같다, 란 생각이 드는 드라마였습니다.
선과 악이란 잣대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와 그 존재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달까? 이미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시작된 드라마이기에, 자주 볼 수 있는 '영웅들의 성공담'도 아닐테고, 그런 영웅담에서나 볼 수 있는 '권선징악'의 뻔한 흐름도 아닌, 살아남기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한 인물을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이, 드라마가 흐를 수록 그 인물이 미워졌다가 좋아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인물 하나하나에 공감하게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초반에 이런 느낌을 보여주다가 중후반부터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가버리면... 전, 참, 슬플 것 같습니다. (웃음)

왠지, 성공하긴 어려운 드라마이지만 잘만 만들어지면...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되지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