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4탄 : 보통의 연애 1회
굉장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 조마조마해하며 봤다. 시청 전에 하이라이트 서너번 돌려보고 공홈에서 기획의도 및 캐릭설명 그리고 관련기사들을 대충이나마 훑어보고 시청한 덕에 이 드라마의 첫장면이 주는 의미를 알고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재광에게 왠지모를 설레임을 느끼는 윤혜를 보며, 윤혜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재광을 보며, 윤혜가 재광의 정체를 알게되면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라는 그런 조마조마. 그래서, 이 드라마의 첫장면이 마지막에 나오며 재광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자, 윤혜
윤혜의 아버지는 7년전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며 현재 도주 중이다. 그리고,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윤혜는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씩씩하고 꿋꿋하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었다. 윤혜는 원칙주의자이자 완벽주의자처럼 느껴졌다. 타고난 성격이라기 보다는 그렇게해서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자신에게 따갑고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듯 보였다. 누구에게도 흠잡히지 않도록 원칙을 지키고 완벽한 자신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려는 듯 보였달까? 그렇게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고 살아가는 윤혜 앞에 어느날, 대책없이 들이대는 낯선 이방인이 나타났고 단단히 걸어잠근 문의 빗장을 조금씩 열리려하고 있었다.
세상과 자신을 차단한 채 살아가는 윤혜는 낯선 이방인 재광의 관심에 알수없는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으나 아버지의 죄로인해 찍힌 낙인으로인해 평범할 수 없는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혜에게 재광은 서울에서 온 이방인.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나를 모르는 사람. 그래서 나를 궁금해하는, 윤혜에게 있어서 조금은 특별한 사람.. 이니까.
"나랑 잘래요?" 라는 윤혜의 말은 굉장히 아프게 들렸다. 그리고 슬펐다. 나만 그런 것 같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 켠이 저릿해지더라. 재광은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윤혜는 말했다. 내일 떠날 사람이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광은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 설명은 못하겠는데 어쩌면 윤혜는 7년 전 그날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평범한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떠나면 다시 만날리가 없다고 여겼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이란 마음으로.
예전, 윤혜의 아버지는 낮에 자고 밤에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에 나무판자를 대었다고 한다. 그 후, 윤혜아버지는 살인용의자로 도주하게 되고 윤혜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판자를 떼내려고 해봤지만 여자의 힘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나보다. 그래서 결국, 윤혜는 햇빛이 차단된 어두운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런 나무판자를 우연히 방문한 재광이 떼내어 줬다. 단단한 나무판자가 떼어지고 폴폴날리는 먼지넘어 바깥세상이 비춰졌다. 아침, 윤혜는 다른 날과 달리 따사로운 아침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한참을 창밖 넘어의 햇살을 바라보더라.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재광이 윤혜방의 나무판자를 떼어내주는 것부터 아침.. 윤혜가 햇살에 눈을 뜨고 창밖 넘어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는 장면.
아버지의 죄로 인해 찍힌 낙인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한줄기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윤혜 앞에 재광이 한줄기 빛으로 등장한 그런 느낌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상징, 처럼 느껴졌달까?
점심에 찾아가겠노라는 재광의 약속을 기다리며, 윤혜는 문득 이재광이란 사람이 궁금했나보다. 그래서 검색하고 재광이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결국, 재광은 오지않았고 윤혜는 홀로 서점에서 재광의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호기심.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급급해서 세상에 무관심한 듯한 윤혜는 그렇게, 재광에게 관심을 보이고 알아가고 있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늘 그렇게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살고 싶다, 는 책소개에 있는 재광의 말. 윤혜는 이 글귀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자신과 같은 외로움같은 걸 느꼈을까? 싶기도 하더라. 윤혜는 아마,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어주는,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재광이기에 좀 더 관심을 갖게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의도치는 않았으나 보이고싶지 않은 부분까지 그에게 보이게되며 결코 알리고싶지 않았던 자신을 알리게되었고 말이다.
그 남자, 재광
처음부터 의도적이었다. 스스로 원했다기 보다는 7년 전 가슴에 뭍은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고싶은 어머니의 명령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궁금했던 것도 같다. 잊혀지지 않는 뒷모습의 주인공, 그 소녀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재광은 의도적으로 윤혜에게 접근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렇게 가까이에서 함께할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뒤를 쫓으며 원하는 정보를 캐내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혜를 몰래 찍은 것을 들키며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시작되었고 재광은 아예 윤혜와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버렸다.
겉으론 속없는 사람처럼 능청스러워 보이지만, 윤혜를 바라보는 재광의 시선은 복잡했다. 7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고 그 때와 변함없는 모습이, 살인용의자의 딸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세상이 보내는 차갑고 따가운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애써 꿋꿋한 척,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랄까? 게다가, 형의 죽음 이후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그렇기에 더이상 상처가 주는 고통을 견딜자신이 없어 삶에서 한발짝 떨어져 진심없이 살아가는 재광 자신의 모습과 어떤 의미로는 겹쳐지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과 나를 차단시킨 채, 아픔을 참아내며 살아간다는 것.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고통 속에서 꿋꿋히 살아가는 그녀 모습이 안타까워지고 신경쓰이고 그렇게 연민과 어떤 의미의 동질감을 느끼며 감정이 발전하게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진심' 따위는 내던져버린 재광에게 윤혜는 '진심'을 다한다는 감정을, '간절함'이란 감정을 되찾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의미로는 윤혜 또한 재광의 어둠 속에 내린 한줄기 빛이 되는 듯도 싶다.
"어떻게 살았어요?" 라는 참 대책없고 뜬금없이 윤혜에게 던진 재광의 질문. 그 사건 이후 윤혜의 삶을 아주 잠깐 들여다보며 "무서웠겠다"라는 툭- 던진 듯 싶지만 위로처럼 느껴지던 말. 윤혜에겐 뜬금없고 의미없지만, 재광에겐 의미있는 말들. 그 말들이 인상깊었다. 이 드라마의 대사는 휘황찬란하지 않다. 깊은 의미도 없다. 참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 대사를 내뱉는 배우와 그 순간의 감정과 장면이 어우러지며 헉- 거리게 마음에 박혀버린다. 극본이 좋으면 '밥먹었냐' 라는 말 한마디가 명대사가 된다던 서영은(온에어)인지 이경민(온에어)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 말이 문득 떠오른다.
윤혜의 뜬금없는 "나랑 잘래요?" 발언에 당황해 가드레인을 박아버린 재광. 어색한 공기를 어쩌지 못한 채, 재광은 윤혜에게 사진을 보라며 카메라를 넘기고 차 밖에 있었다. 카메라 안에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들 뿐. 문득, 이 남자가 궁금해진 윤혜는 물었다. 그리고 재광은 언제나처럼 능글거리며 넘어가려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윤혜는 알아듣지 못할 7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재광. 그리고 윤혜의 질문에 대한 대답회피로 '왜 나랑 자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예상치못한 윤혜의 대답은 재광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순간, 윤혜는 물었다. 왜 자신은 앞모습을 찍었냐고. 그렇게 내내 갖고있던 재광에 대한 의문을 하나 둘 물어가는 윤혜였다. 완전히 얼어붙은 재광과 때마침 도착한 보험사 차량은 재광에게 숨통을 틔워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재광의 잊혀지지 않는 뒷모습은, 7년 전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나가던, 그렇게 강물에 뛰어들던 윤혜의 뒷모습이었다. 본방 당시에는 잊혀지지않는 뒷모습의 주인공이 윤혜니까, 앞모습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명령이었나보다. 전화로 '사진은 찍지 못했다'라고 보고했던 걸 보면. 그러고보면 재광은, 전날 윤혜의 뒷모습을 찍으려다 실패했더랬지; 그 곳에서의 씬도 참 좋았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이틀. 이틀이란 시간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은 다른 듯 호감을 느껴가는 중이었다. 이틀이란 시간동안 재광은 살인자의 딸이 되어 살아가는 윤혜의 힘겨운 삶을 지켜보고 있었다. 알아가고 있었다. 삶에서 한발짝 떨어져 살아가며 세상을 차단한 자신과 달리, 삶 속에서 세상을 차단하는 윤혜를 통며 재광은 정말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언제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윤혜는, 재광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자신을 밝혔다. 그리고, 재광 또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살인용의자의 딸과 피해자의 동생. 어느 쪽이 더 아플까, 라는 말은 우습다. 아픔과 고통의 무게를 누가 감히 어떻게 측정한단 말인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두 사람은 '보통의 연애'를 시작할 것이다. '보통의 연애'를 하기위해서 7년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미스터리 감성멜로라고 했으니까.
윤혜의 아버지가 박아놓은 나무판자를 떼어내려는 재광. 드릴로 나사를 풀고 윤혜에게 망치를 건네받는 순간, 닿은 손길. 그리고 그 순간의 미묘한 감정. 어떤 설레임이 주는 어색함. 이 드라마는 이런 찰나의 순간에 느낄법한 감정을 잘 잡아낸다.
그리고,
1)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위주로 극이 흘러갔는데, 특히 윤혜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아마도 재광의 정체는 1회 후반에 밝혀지는 극적장치였기에 의문의 남자즈음으로 흘러가게 했기에 그런 것도 있는 듯 싶다. 아마, 2회엔 재광의 감정선도 1회보다는 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윤혜 역의 유다인씨의 섬세한 연기로 인해 아물지 않은 오랜 상처가 더이상 덧나지않게 꼭꼭 감싸고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윤혜가 재광에게 설레임을 느끼게되는 그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2) 윤혜 앞에선 능글거리면서, 홀로 있을 때는 다크분위기 뿜어내는 재광. 처음엔 그저 능글거리던 재광은, 조금씩 윤혜를 겪어가며 그 아픔을 알아가며 순간순간 얼어붙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당혹스럽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느낌이 와닿아서 좋았다. 연우진씨 연기도 참 좋았음.
3) 역시, '드라마 스페셜'은 나에게 실망을 주지않는다.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내내 조마조마했고 어느순간부터 안타깝고 아파하며 봤던 드라마. 남은 3회차도 기대된다. '난로'의 헛헛함이 채워져버렸... (난 쉽다니까;;)
4) 신선하고 풋풋하며 연기잘하는 배우를 알게되어서, 만날 수 있어서,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두 배우의 작품을 어설프게나마 봤지만 새삼 반짝거리는 보석을 발견한 기분! 이 또한 '드라마스페셜'의 장점이니...(!)
5) 보려고 쟁여둔 아이들이 많아서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왠지 영화 '혜화,동'을 봐야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6) 가해자의 가족이기에 겪어야 할 고통과 아픔. 예전에 소설 '편지'에서 그 고통과 아픔을 읽으며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7) 보는내내 안타까웠던 이유를 하나 더 찾자면, 재광과 윤혜가 너무 잘 어울려서이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해선안될 아픈 사랑을 하게된다는게 정말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달까? 억지춘향식 해피엔딩을 좋아하진 않지만... 윤혜아빠의 사정 뭔지 꼭 밝혀지고 무죄였음 싶기도 하다. 그럼, 완전 오작교되는건가? ...새드라면 꽤나 먹먹해지겠지만 여운이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다. (...새드엔딩이 휘몰아치는 여운에 허덕였던 2월;;)
8) 연출이 너무 좋다. 정말 섬세하고 이쁘달까? 게다가 전주라는 공간적 배경도 참 좋고. 겨울의 끝자락이 주는 차갑고 쓸쓸한 분위기는 윤혜와 재광의 현재와 잘 어울리는 듯도 싶다. 풍경을 아름답게 잡아줘서 전주에 꼭 가보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난 부분적으로 클로즈업된 것이 참 좋다.
드라마 시작에 나온 마주잡은 두 손(이 포스팅 메인이미지), 음료값을 계산하려다 세개의 손(윤혜,재광,수퍼아저씨)이 마주한 순간, 망치를 건네주며 얼결에 잡아버린 손, 왠지모를 설레임과과 쑥쓰러움에 어쩌지 못해 등 뒤로 숨겨버린 손, 망치를 들고있어 어쩌지 못한채 쑥쓰럽게 그 자리에 멈춰버린 손, 오래도록 나무판자에 박혀있던 나사가 재광에 의해 풀리는 순간의 클로즈업과 귀고리 (그 순간엔 나사와 귀고리에게도 감정이 있는 듯 느껴졌다;), 아침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눈부신 창가, 햇살이 눈부셔 어쩔줄 몰라하며 잠에서 깨는 윤혜의 얼굴, 재광의 책 표지에 있는 재광의 프로필, 2회에 나오는 신발(예고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 본방서 어떤 느낌일지 기대!!), 등등, 그런 씬을 보면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을 그냥 놓치지않는, 감성이 느껴져서 말이다.
9) 아, 두번째날 재광과 관광지를 돌며 재광과의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슬핏- 미소짓는 윤혜가 참 이뻤다. 활짝 웃지못해 보일듯 말듯 미소만 짓는 윤혜가, 재광에 의해 활짝 미소짓는 날이 왔음 싶다. (...두 사람 사이의 벽이 너무 단단하고 날카로운데, 그럼에도 두사람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줬음하는 그런 마음ㅠ)
10) 1회가 두 남녀의 만남과 감정선에 집중이 되었다면, 2회에선 재광의 정체를 알아버린 윤혜와 정체를 들켜버린 재광의 갈등이 그려질 듯 싶다. 그리고, 재광모와 윤혜부가 등장예정이어서 고요한 호수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은.
11)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윤혜를 보면 '참 예뻐요'(뮤지컬 '빨래' OST)가 생각난다. 그래서 어제 버젼별로 몇개 찾아들었음. 최근 드라마 '왓츠업'에서 대성ver.도 나왔었음. 그런데, 난 뮤지컬 '빨래' 아직 안봤다는게 함정.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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