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여인의 향기 9, 10회
나 좀 살려주면 안돼? 니가 나 좀 살려주라고. 너 의사잖아.
나, 살고싶다, 은석아. 살고싶어, 은석아.
나 좀 어떻게.. 나 좀 어떻게 해줘... 은석아... 제발...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왔다. 억울하고 화가났고 서러웠지만, 생각보다 그녀는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살고싶다고 울부짖으며 살려달라 버둥거리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루를 일년처럼,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이연재씨는.
그녀라고 왜 살고싶지 않았겠는가.
여행에서 돌아 온 어느 날, 갑작스런 복통으로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던 그녀는 그 것이 죽음과는 별개의 것이란 것을 알게되며 안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독한 통증은 그녀에게 죽음의 공포이자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그 통증이 자신의 병과 관계가 없다는 것과 주치의이자 동창 은석의 단호한 다짐또한 그녀를 안심시키는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 순간, 그리고 그 후로 그 어떤 통증도 없었던 그녀에게 죽음은 현실이 아닌 막연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주어진 6개월의 시간은 내일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않기 위한 정리의 시간으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아버지의 암투병을 봤기에 살고싶다 외쳐봐도 예정된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되려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연재씨는.
그런 그녀가 살고싶다고 울부짖었다.
어느 날, 통증이 찾아왔고, 남겨질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죽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 순간, 살고 싶었던 듯 싶었다,
이연재씨는.
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고, 아무런 미래도 꿈꿀 수 없다고.
죽기 전에 다시 이런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지욱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연애를 시작한 연재는, 세상에 다시없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이 아닌 오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연재는, 지욱과의 오늘을 바라보며 그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조만간 자신에게 다가 올 약속된 휴식을 잊은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는, 지욱 아버지와의 만남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지욱의 마음과 그 상처를 보며, 문득, 내일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늘에 의해 만들어질 내일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연재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재의 입장에서, 라고 말은 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때때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것들을, 연재는 이제서야 겨우 깨달았던 듯 싶었다.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던 연재는, 이제서야 이제 막 자신과 연애를 시작한 이 남자, 강지욱이 홀로 남겨진 후에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아픔 속에서 살아가게 될 지를 알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을 함으로서 깨달았던 듯 싶었다.
한 남자를 사랑하며, 그저 오늘 만을 바라보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 남자와의 내일을 꿈꾸고 싶어진다는 것을.
내가 너무 싫어.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싫어.
내가 이런 사람이어서, 사랑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어.
막연했던 죽음이 현실이 되어 연재와 마주서게 되었다.
그리고 연재는 그 죽음이 두려우면서도 아프게 다가와버린 듯 했다. 자신 만을 바라보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주변을 바라보게 된 연재는, 이제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마음에 새기며 죽음과 마주하게 된 듯 싶었다. 그러면서도 연재는, 죽음으로 인해서 이 사랑을 놓아야하는 현실이, 너무나 아팠던 것 같다.
난, 연재가 얼른 자신의 병을 엄마에게 알렸으면 싶었다.
아버지의 암투병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고있었고, 그 날의 기억을 직접들으며, 엄마에게 그 고통을 또 주기 두려워서,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는 자신의 암을 알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것이 과연 엄마를 위한 것일까, 싶어졌었다.
암덩어리가 커지며 연재에게 남은시간은 5개월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동안 연재는 치료를 받으며 사랑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하나 둘 정리해나가겠지. 그렇다면, 그녀의 남은 사람들에게도 그녀를 정리할 시간을 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의 엄마에게도 딸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라는.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죽어버린다. 그 것이 암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딸의 남은 시간동안 그 무엇도 해주지 못한 채 떠나보내게 된다면, 그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교통사고처럼. 그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딸을 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달까?
사람은, 죽음 앞에서 조차도 이기적인 존재, 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되었다.
죽음 앞에서 이기에 더 이기적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오로지 나를 생각하며 너를 바라보고 나를 통한 너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하고있는 듯 싶었달까?
누구나 나의 상처가 너무 아프면 상대의 상처따위엔 관심이 없어진다. 그 것이 죽음 앞에서는 더 하겠지.
나를 위해 사랑을 했고, 나를 위해 사랑을 놓고, 나를 위해 침묵하고, 나를 위해 울고, 나를 위해 기댄다.
너의 마음을 살펴 볼 여유조차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해.
이제, 지욱이 연재의 병을 알게되었다. 아마도 지욱은 연재의 곁을 지키지않을까, 싶었다. 약속받은 죽음과 갑작스런 죽음은 다른 것이기에, 갑작스레 엄마를 떠나보내며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한 지욱은, 약속된 시간 속에서 연재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며 떠나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이 또한, 연재를 위한 것이며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 (오늘 나 왜이럼?)
어쩐지, 연재의 암투병기가 아니라, 연재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루어내며 그렇게 하루를 일년처럼, 십년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었다. 러브스토리는 영화일 뿐 현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드라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에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계속 쓰다보면 무슨 헛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서 끝.
덧1) 은석이 분량 너무 적음. 근데 난 은석이가 가장 좋다. 사실, 은석이 땜에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고 있음. ...은석이가 좋다기보다는 엄배우가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덧2) 그래서 연재가 '니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왠지 미웠다. 제 마음 한톨 주지도 않으면서, 은석의 마음을 조금도 들여다봐주지 않으면서, 니가 있잖아, 라니!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파하는 것이 싫고 또 힘들면서 은석인 의사니까 괜찮아, 이런거니... 라며;
덧3) 은석이는 연재를 통해 변하고 있는 듯 싶었다. 이제 은석이도 기적을 바라게 된 듯 싶었달까?
덧4) 덧은 오로지 은석이를 위한 건가? ㅋㅋ
덧5) 이 드라마는 진짜 너무 뻔하게 흐른다. 죽음이란 소재가 없었다면 정말 어찌되었을까, 싶기도.
덧6) 지욱에게 이별선언을 할 때 흘러나온 BGM. 목소리가 익숙했는데 내가 생각한 분이 아닌 JK김동욱. 하긴, 그분이 OST 불렀으면 또 기사로 촤르르 쏟아졌겠지; 암튼,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진짜 비슷하구나, 라고 새삼 생각했다. JK김동욱씨는 오스타에서만 열심히 봤던 분인지라 가요부르는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 좋아하던 드라마 OST를 불렀던 것은 먼 훗날 가끔 알게되는 진실이고. 그보다, 들으며 설마 제목이 '버킷리스트'이런 거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 ...내 예상을 뛰어넘어주지 않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인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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