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한가한 극장

영화) 부당거래 : 뒷맛 씁쓸한, 그대로의 현실-.

도희(dh) 2010. 11. 26. 08:33

2010. 11. 20 Pm. 21:20
명동 CGV

※ 스포가능성이 있을 거에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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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보고싶은 영화는 아니었는데 (사실은 그 존재자체를 몰랐다) 그다지 보고싶은 영화도 없어서 (초능력자, 소셜 네트워크, 부당거래 세개만 걸려있었음;) 영화 <부당거래>를 보게되었다. 첨엔 <소셜 네트워크>를 볼까 했으나 좌석이 마뜩잖아서; 그렇게 티켓을 구입하고, 부랴부랴 팜플렛을 보면서 감독과 배우에 대해서만 가볍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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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이 있다. 이름은 최철기. 이 사람은 빽도 줄도 없다. 배경이 없다. 그래서 늘 승진에서 물먹는다. 꽈당, 미끄러진다. 그리고 또 미끄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승진을 보장해준다는 상부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어느 사건을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건을, 어찌되었든, 해결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깐 발을 담궜다가 빼내어 깨끗히 씻어내려고 했던 진흙탕은, 늪이었다. 벗어나려고 버둥거릴 수록 그를 더욱 깊이 잡아당겼다. 겨우 빠져나왔다고 여긴 순간, 그의 온 몸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씻어낼 수가 없었다. 

옳지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았다.  부당했다.  늪에 빠진 그는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이성을 잃고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 늪에서 빠져나와 온 몸에 뭍은 진흙을 씻어내고자 하는 그가 가여웠다.  그리고, 나는 그랬다. 그가 얼른 그 늪에서 빠져나와 그 누구도 모르게 깨끗히 씻고, 원하는 것을 얻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가길 바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내내 그랬다.

그의 결말이 안타까웠고, 영화의 결말이 씁쓸했다. 되는 놈은 뭘 해도 되고,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구나. 그리고 철기는 안되는 놈이 어떻게든 되는 놈이 되고자 버둥거렸고, 나 또한 안되는 부류에 속하기에 그의 버둥거림이 이치에 맞지 않다하더라도, 한번 잘 해봐, 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황정민이란 배우는 신기하고 재밌다. 황정민이 보이질 않는 듯 했다. 나에게 황정민이란 배우는 언제나 동백씨인데, 동백씨는 없었다.  한계단 오르기위해서 잠시 현실에 타협하면서 점점 꼬여가는 상황에 어쩌지 못하는 철기만이 존재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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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검사가 있다. 철기와 달리 배경도 있고 빽도 있고 줄도 있는 검사, 주양.

주양을 연기하는 류승범이란 배우에 대한 매력, 그리고 그가 표현하는 캐릭터의 개성에 나도 모르게 킥킥 웃으며 바라봤으나, 뭐랄까,  좋다싫다의 감정과는 좀 다른, 그런 짜증스런 그런 것이 있었다.  짜증인가?  그 것과도 좀 다른 듯 한데.. 영화가 끝나고 주양을 연기한 류승범이란 배우는 꽤 인상적이고 좋았지만.. 주양이란 캐릭터 자체는 한숨나오게 답답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양, 숨막히는 듯한, 뭐... 그랬다.

주양이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서 분노해도 철기만큼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주양을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를 별 생각없이, 때론 한숨섞인 킥킥거림으로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그 씁쓸함으로 알았다. 주양은 뭘 해도 되는 놈이라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철기와 달리, 주양은 앞으로 넘어져도 폭신폭신한 에이스(?) 침대가 그를 받쳐줘서 어디 하나 다치질 않을 녀석이란 것을 알고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 중으로. (그에반해 철기는 아마 앞으로 넘어지면 완전 딴딴한 돌침대가 그를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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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재미없다로 나눠 대답하라면,  재미있는 영화다.  그런데 그저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어딘가 조금은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씁쓸하다.  그 씁쓸함의 이유는 아마,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이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과 그리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느 사건을 덮기위해서 다른 사건을 터뜨려서 앞의 사건을 흐지부지 시키는 일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알만하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어제는 어느 살인자가 정신병을 핑계로 사형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3차 정신감정에서 이상 없음이 밝혀졌다는 기사가 났다. 또 어떤 살인자가 DNA검사로 인해서 3년만에 붙잡혔다는 기사도 났다. 순간 이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는 현실이었다. 조금 비틀려있을 뿐, 현재 대한민국 어디선가 일어나는.

단 한 줌의 판타지도 존재하지 않는 영화.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쪽이 답답하고, 영화가 끝난 후엔 씁쓸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이 영화를 꽤 오래 (이틀?) 곱씹게되고,  '재미있다/없다' 라는 두개의 평 으로 나눠서 말하라면 재미있다, 에 손을 들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