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자 vs 그 문제를 푸는 자
한 여자가 살인을 저질렀다.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만약 이 여자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여자와 딸은 그 사람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수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공범인 딸 또한 말려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순간 벨이 울린다. 그리고 한 남자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그로부터 몇일 후, 알 몸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지문이 불로 지져진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그 시체의 신원은 곧 밝혀졌지만 범행 방법과 제 1용의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의 알리바이는 풀릴 듯 풀리지 않아 수사에는 진척이 없다. 담당형사는 답답한 마음에 종종 사건해결에 도움을 주었던 자신의 친구에게 사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그 친구는 어떠한 계기로 사건에 흥미를 갖게된다.
살인을 저지른 모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은 남자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든 자' 이고, 사건에 흥미를 가진 친구는 '그 문제를 푸는 자' 이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살인사건의 이유가 밝혀지고 시작된다. 하지만, 그 것 뿐이다. 알리바이는 어떻게 조작되었으며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기에 그 장소에서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었는 지는, 문제를 푸는 자의 풀이를 따라가며 조금씩 속도를 맞추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곳곳에 힌트를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문제를 푸는 자의 풀이를 정신없이 쫓아가던 나는 그가 내민 답에, 형사와 여자와 마찮가지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라는 마음과 함께.
2. 히가시노 게이고와의 세번째 만남.
<백야행><편지>에 이은 세번째 만남이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꽤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작년 말이었던가, 영화 <백야행>을 통해서 이 작가를 알게되었고 올해 어느 즈음 이 작가의 책 몇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책 중 하나가 <용의자 X의 헌신>이다.
당시 함께 샀던 <백야행>과 <편지>는 진작에 다 읽었지만, 책장을 덮고난 후의 여운과 울림이라고 해야할까? 그 것을 다스리는 시간동안 감상을 써야한다는 의지마저 다스리게 되어버린 듯이, 그렇게 마음에 새겨두고 지나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용의자 X의 헌신>을 다 읽고난 지금, 당시 구입한 책들 중에서는 <변신>만 남아있다. 아마, <변신>까지 다 읽고나면 나는 또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구입하게 될 것도 같다. 내가 이래뵈도 한 작가에게 꽂히면 질릴 때 혹은 실망할 때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대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꽂히게 하는 작가도 몇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3. 용의자 X의 헌신.
지난 주인가 지지난 주인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즈음 언제부터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노라 말하자 대부분 '재미있다' 라는 평을 내려주며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나를 흥미롭게 해줄까, 라는 기대감과 함께.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반부까지는 그리 나를 낚아주지 못했다. 완전히 집중하질 못해서인지 조금조금 나눠읽기도 하고 뒷 페이지를 슬쩍 펼쳐보고 조금은 시큰둥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뒷페이지를 슬쩍슬쩍 보는 건 습관 중 하나이다. 진짜 지루할 때나 너무 빨리 다음 상황이 궁금한데 책읽는 속도가 지독하게 느린 덕분에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나오는. 그래서 끝까지 결국 안읽은 책은 천사와 악마. 내가 책을 느리게 읽는 이유 중 하나는... 글 하나하나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읽으려는 버릇 때문인 것도 같다. 그냥 흘려읽어도 되는 부분을 반복하면서 말이지;)
아무튼,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책을 탁-, 하고 덮는 순간, 마음 속이 멍해지더라.
아, 이런 사랑도 다 있구나, 라면서.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을 하지? 이렇게까지 사랑을 할 수가 있지? ... 이시가미의 마음을 위하는 유가와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러지 말지 그랬어, 라는 생각. 나는 이시가미가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길 바랬는데 이제 이시가미는 행복하지 못한 거잖아, 라는 안타까움. 이시가미가 잘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그런 죄를 저지른 자가 행복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시가미가 그런 식으로라도 행복해졌으면 싶었다.
4. 그런 사랑이 하나 있었다.
한 사람을 지켜주고자 했다는 이유라고 해도, 그 이유 만으로 이시가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톱니바퀴는 없고, 모든 톱니바퀴들은 제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고 살아간다'
는 유가와의 말처럼, 이시가미가 그 톱니바퀴 하나를 자신의 판단으로 그 역할을 결정할 권한은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시가미가 행복해졌으면 했다. 그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하얀 종이와 연필, 그리고 수학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행복인 그는 그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못한 그는 죽음을 결심한 순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시가미의 사랑은 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크고 깊었던 것 같다. 그 사랑을 주는 이시가미 만이 그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신을 모두 불태워서라도 주는 듯 했지만.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타서 이제 재만 남아버린 이시가미가 나는 행복하길 바랬다.
그래서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유가와가 원망스러웠다. 같은 괴짜 천재. 이 세상에 마음이 맞는 몇 안되는 존재인 자신의 친구를 위한 마음. 이시가미가 원치 않더라도 그 것을 그녀에게 꼭 전달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유가와의 판단. 나도 그게 옳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시가미의 울부짖음을 보는 순간... 유가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진실은 밝혀져야만 하고, 개망나니 같은 자라도 그 죽음은 억울했을테니 범인은 꼭 잡아야만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 순간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은 영원히 감춰졌으면 좋을 법한 진실도 있다. 사실만 두고 진실은 덮어버렸으면 하는.
처음의 나는 유가와가 모든 진실을 밝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것이 이시가미의 사랑일지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쩐지 이시가미가 원하는대로 그렇게 마무리가 되길 바랬던 것 같다. 또한 자신을 도와주는 이시가미를 부담스러워하며 그 것을 자신을 옳아매는 족쇄처럼 생각하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그녀가 조금만 더 자기중심적인데다가 이기적이었다면 좋았을 껄, 싶었다. 유가와가 그저 한번만 눈을 감아줬으면 좋았을 껄, 이라는 생각과 함께.
삶의 이유.
온 마음에 수학 만이 있던 이시가미의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온 맑고 투명했을 삶의 이유는,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이, 내내 마음 한켠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럴 가능성도 없겠지만, 이런 사랑을 받고싶지 않다.
5. 그리고 덧.
1) 이 소설을 읽고있노라 했을 때, [일드 갈릴레오]를 추천받았다. 별 생각없이 넘겼다가 오늘 뭔가 재미난 것이 보고싶다던 동생과 일드를 훑어보다가 선택. 현재 1편만 봤다. 유가와가 주인공이라서 좀 놀랐달까나? 소설 속에서 내가 생각하던 유가와의 이미지와는 아직까지 긴가민가 스럽지만, 재밌었다. 다만, 유가와의 파트너 자리를 빼앗긴 구사나기는 책에서 보다는 뭔가 젠틀한 느낌?
2) 영화 X헌신은 아무래도 드라마를 다 보고나서 볼 듯 하다. 대충 영화정보를 살펴보니 소설의 영화화이면서 드라마의 극장판 정도로 볼 수 있을 듯 하니까.
3) 일본에서 영화 <백야행> 이 나온다고 한다. 드라마의 배우들은 아니라고 하고. 그러고보니 [일드 백야행] 을 봐야겠노라 생각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보질 못했다. 이런이런. 보고는 싶으나 우울하다는 말에 손이 쉽게 안간다는 게 옳은 것일지도?
4) 다음 번에 책을 주문하게 되면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을 우선적으로 사게 될 듯. 잊지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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