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소설

책) 골든슬럼버 -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야.

도희(dh) 2010. 5. 20. 06:39
 
 

골든슬럼버 / 이사카 고타로 지음 / 김소영 옮김.


1. 2009년 말, 이웃이신 판야님께 받은 선물.

작년 말, 게으른 내가 나름 자주 찾아뵙는 이웃이신 판야님께서 2주년 이벤트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덥석 참가해서 이렇게 감사한 선물을 받아버렸다. 이벤트 선물인 책과 판야님의 크리스마스카드와 수제쿠키!!!

카드는 무척 감사히 받았고, 책은 읽는내내 즐거웠고, 쿠키는 무척 맛있었습니다^^!!!

당시 책을 찍어둔 사진이 엉망인지라, 그나마 괜찮지않은 것인데 덥썩 올리는 중.
역시, 나는, 사진에 소질이 없다라기 보다는 참, 노력을 안한다. 잘 찍는다는 것에 대해서.




2. 크리스마스 테러사건, 그리고 전신스캐너.

2009년 12월의 크리스마스. 미국비행기 테러 미수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참 미안하게도 나는 그 것을 몰랐다.

-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무리 큰 사건이 터져도, 회사에 가고, 일도 하고 말이야. 전기뱀장어 구경도 가고. 전쟁이 터졌다고 해도 결국 그날 미팅은 그대로 추진될 것도 같고, 개인 생활과 세계란 것이 완전히 별개가 됐어. 사실은 이어져 있는데. (p. 153)

라는 히라노의 말처럼... 미국 자기네들 한테는 그 사건이 무척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멍때리던 하루를 보내던 날이기 때문인 듯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뉴스를 통해서 알았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서 '전신스캐너' 란 것을 도입한다고 했다.  이미 했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난 왠지 그 것이 참 불쾌하더라. 내가 살면서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나 둘 생기면 언젠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 그 것이 당연한 과정이 될 것만 같기도 하고.  뉴스에서 잠시나온,  그 나라의 신문에 그려져있던 "앞으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다이어트 하셔야 겠어요"라는 비아냥섞인 그 것은 내내 잊혀지지가 않는다. 배타고 다녀야 하는건가...ㅡ.ㅡ?

그 나라에서 '전신스캐너'에 대한 인터뷰를 했었다.
어느 시민은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말을 했고, 또 어떤 시민은 테러방지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 하더라.  그렇게,  불쾌함을 감수하고라도 우리는 안전을 지켜야해요,  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서서히 무의식적으로 그 것이 당연해지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골든슬럼버>  속의 '시큐리티 포드' 와 겹쳐지기도 했다.

시큐리티 포드.
범죄자를  잡겠노라는 핑계로 거리 곳곳에 대놓고 도청장치와 카메라를 단,  그들 말로는  최첨단이라고 말하는 기계.  책 속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 것이 자신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전,  이라는 말 속에서 '범인에게만 적용되는 거니까' 라며 모르는 척,  아니 아예 모르는대로 그 기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증명할 수 없는 나의 안전과 거북한 사생활 침해 중에서, 사람은 증명할 수 없는 안전을 택하게 되는 것이가보다. 그 거북한 일이 나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야, 라는 자기암시와 함께.




3. 거대 조직으로 인해서 설계된 인생, 그 것을 이기는 방법.

2009년 하반기 [아이리스]라는 드라마가 꽤나 인기몰이를 했었다. 나야 드문드문봐서 정확한 내용을 알지못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이래저래 주워먹은 지라, 어느정도의 내용은 파악하는 편이기도 했다.

[아이리스]에서 주인공 현준은, 아이리스라는 거대 조직이 미리 그려놓은 설계도대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 것은 현준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튼... 현준의 삶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결국 아이리스가 그려놓은대로 움직이고 조종당하는 삶인 듯 했다. 그리고, 현준이 그 것을 알게되면서 그런 삶, 그런 운명을 거부하고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추격하다가 결국은 그들에 의해서 의미없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현준은, 아이리스를 이기지 못했지만...  승희가 현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암시는, 그래도 현준주니어가 세상에 태어나 그 것들을 이을 거라는 듯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준은 졌지만 그래도 이겼노라 하는 듯 했달까...? 드라마 [아이리스]는 그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알고보면, 별 의미없는, 시즌2를 위한 떡밥이었겠지만..;;

아오야기 마사하루.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총리암살범으로 지목당한다. 그 것은 보이지않는 거대한 조직이 그를 범인으로 만들기위해 모든 설계를 마친 후였다. 그리고 그는, 그 거대 조직의 설계대로 죽어줘야만 했지만, 그는 살아남기위해 달려나갔다. 처음에는 그 상황과 당당히 맞서려고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살아남으려고 했다. 바다에서 커다란 고래를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치는 일이라는 모리타의 말처럼, 그의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 말한다.

'도망쳐!'




4. 인간 최대의 무기는, 습관과 신뢰.

그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뭔가 대단히 뛰어나고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습관과 신뢰. 그 것이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이 모두 그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며 추격했지만,  그 속에서도 그를 믿어주는 이들은 많았다.

오래 전부터 그를 알아온 사람들, 지금의 세상이 어딘가 비틀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사람들과 사람들이 모여, 알게모르게 그가 도망쳐서 그들에게서 이길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 라고 모리타는 말했다.
마사하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쌓아온 습관과 사람에 대한 신뢰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마사하루를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그의 습관을 기억해내고 그에 대한 신뢰로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것이 그가 도망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런지...

그리고, 마사하루의 시점과 함께 하루코의 시점을 넣은 것은, 그 '습관과 신뢰'라는 인간 최대의 무기를 좀 더 정확히 알려주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나저나, 하루코도 참 대단한 듯.




5. 어쩌면...

곤도형사는 흔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20년 후의 기록을 보면,  곤도형사는  그 사건이 흐른 1년 후 옷을 벗었다고 한다. 그 이유와 글 몇줄에 표현된 그의 행동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시야를 피해서 달아나는 마사하루를 도우려는 하루코의 모습에서 뭐가 깨닫게 된 듯 하달까...? 아마, 그날 하루코가 '정말 마사하루가 범인이라고 믿으냐'라고 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는 흔들렸고, 그렇게 마사하루를 도우려는 이들과 마주하면서 그에게도 마사하루가 범인이라는 확신이 무너져내린 것이 아닐런지.

근래들어서 책을 자주 안읽는 편인데, 이래서 내가 책읽는 걸 좋아했었어, 라는 느낌이 새삼 들기도 했다. 
글 한줄 속에서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가정과 감정을 끄집어내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재밌달까...?  원래 책에 낙서도 안하는데, 요즘은 기억력이 안좋아져서 밑줄긋고 그 옆에 짧게 몇자 적고 그러고 있었다. 으음, 노트라도 하나 곁에 둬야하나, 라는 생각 중.




6. 끝으로...

난 정말 책 감상 같을 걸 쓰는 소질은 없는 것 같다. 쓰면서도 '나는 지금 뭐라는 거니?'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요약정리란 것과 요약정리스러운 책감상은 언제나 힘들달까...?

존  F  캐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이 소설은,  오즈월드 그리고 비틀즈의 노래를 자주 언급하며 이 이야기가 그려지는 방향을 말해주고 있었다.  책 제목이자 비틀즈의 노래인 '골든슬럼버' 는 참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노라고 책은 내내 이야기한다.

마사하루는 결국 이겼다. 그 것이 최선이었고, 그래서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줍잖게 대응하다가 죽어버려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기보다는, 끝까지 도망치고 살아남아서 그들의 설계를 엎어버리는 것. 그 것이 마사하루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긴 것이다.

바다에서 갑자기 고래를 만난다면 당신은 어떻게하겠는가? 갑자기 집에 불이 나버린다면?  갑작스런 자연재해,  폭설로 집이 무너지고 폭우로 집이 떠내려가게 된다면?  당신 발 아래의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갈라진다면?  이런 갑자기가 당신 앞에서 마주한다면?

마사하루에게 일어난 일은 그렇게, 그냥. 어느날 갑자기와 마주한 것이었다.  부딪히고 마주하며 풀어낼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갑자기.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갑작스레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일에 마주하면  할  수 밖에 없는 그 것,  달아나는 일,  도망치는 일,  그 것밖에 없는 것처럼...  그는 그저 그렇게 무조건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도망치는 것은 결코 비겁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나타나 나를 먹겠노라 쫓아오는 고래에게... 미친듯이 솓아붓는 폭우와 폭설에게... 갑작스레 갈라지는 땅에게... '잠깐만 좀 멈추고 나랑 대화좀 하자. 난 좀 살아야겠거든?' 하며 협상할 순 없는 거니까.

으음,  뭐,  그런 갑작스런 일을 하늘의 뜻인양 받아들이며  '나는 이대로 여기 있겟습니다'  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좀 어줍잖은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살아남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기싫어한다는 걸  나는 정말 어설프고 어줍잖은 경험으로 깨달았고,  그 후로  '언제죽어도 상관없잖아' 라는 생각을 하고살던 나는 '나도 죽음이 두려웠었어.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그리고 나는 그런 인간이고.' 라는 걸 잘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중이니까... (웃음)

마사하루, 참 잘했어요.


* 작성일 : 2010/01/13 17:33 

* 덧으로 : 작년 말에 선물받고 올 초에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녀석인데, 그쪽 포스팅 비공개로 돌리면서 이쪽으로 옮긴 것이랍니다. 여담으로 최근 후배냥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견을 섞어가며 해줬더니 '내용은 대충 들었으니 저는 원본으로 읽어야겠어요' 라고 말했다나 뭐라나;

*드라마 리뷰는 금- 검프, 토-신언니, 일 or 월-드라마 스페셜 2화  이렇게 올리겠습니다. (사전 예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