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왕녀 자명고 35회 - 영리한 사기극, 자명고 시스템 전격가동!!!

도희(dh) 2009. 7. 11. 19:10

드라마 왕녀 자명고 35회.

오오~ 1회의 장면들과 하나 둘 겹쳐가며, 그 끝이 보이기는 한다지만... 극의 중간에 11개의 회차가 떨어져나가며 이미 만들어놓은 엔딩과 화면이 많이 튀기도하고, 캐릭터들의 상황과 성격도 좀 더 달라진 듯 하더군요.

이러다가, 화면이 튀는 것에 대한 부담을 안고, 캐릭들의 상황과 성격이 달라짐에  따라 재촬영으로 엔딩을 장식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미 그렇게 한 부분들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왕녀 자명고 35회에서는, 드디어 자명고 시스템이 전격가동되며... 사기극이 시작되어버렸습니다.
뭐... 전쟁하지않고 나라 지키자고 하는 짓이니, 사기극이란 말도 좀 웃기지만... 내가 받아들인 느낌,
그 것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종영 몇회 앞에서 자명고 시스템이 전격가동되고, 가동되자마자 무휼이 쫒아와서 자명고 구경하는 등등의 상황들이라니... 자명고가 좀 더 빨리 가동되어서 뒷 이야기가 조금만 여유있게 풀렸으면, 한결 마음편히 봤을텐데... 싶기도 하더이다.

앞으로 남은 4회차동안 꾸려나가야 할 이야기들은...
고구려가 낙랑을 쳐부수고, 낙랑국 왕족들이 모두 호동과 무휼의 손에 죽어나가고, 라희가 죽고, 자명을 중심으로 한 낙랑국 독립운동세력들이 활개치고, 낙랑을 받쳤음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호동의 입지와 그런 입지를 완벽히 다기지위해서 자명을 죽여야했고,그렇게 자명이 다시금 재회해서 비극적 엔딩을 맞이할때까지 걸릴 시간은 단 4회. 스피드한 전개를 기대하겠습니다, 라고 해야하나?










1. 네게 이 아비와 낙랑의 운명이 달렸다. (최리)

북을 울릴 수 있겠느냐?
자명아, 네게 이 아비와 낙랑의 운명이 달렸다. (최리)


왜 최리는 라희를 믿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낙랑국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던 그 옛날의 위엄넘치던 태녀가 아닌, 한 남자를 위해 태녀의 자리도 목숨도 서슴없이 내놓을 수 있는 태녀이기에... 믿음이 깨어진 걸까?
자명의 등장으로, 나라를 지키기위해선 끝없는 자기희생을 할 수 있다는 자명에 대한 믿음이 더 커서일까?

그런데, 그 희생이라는 것....
나 한몸 희생해서 나라를 지키겠노라, 하는 아름답다는 그 마음. 그 것도 어떤 의미로는 자기만족 아닌가?

라희가 점점 무너져가는 것은, 더 이상 태녀를 믿지 못하고 신녀에게 모든 직위를 넘겨주고 의지하는 듯한 그 행동들 또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밀보완을 위해서인지, 태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자명고 비밀프로젝트를 철저히 숨기고... 아니, 자명의 존재부터 태녀에게만은 철저히 비밀로 붙혀서 알 수 없게 만들어나가는 그 것. 그 자체가 태녀를 절벽 끝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었을런지.

신녀니 태사령이니 그딴 것을 절대로 믿지않던 최리는, 자명의 등장으로 인해서 낙랑국을 '신성한 국가' '하늘님의 보살핌이 있는 나라'로 만들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국'의 이미지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딱히 그 상황을 설명한 적은 없었지만,
최리에게 있어서 자명이 등장한 시점이.. 꽤나 고단한 시기였던건가, 싶었습니다. 고구려에게서 낙랑을 지키는 일이 꽤나 힘에 부치던 시기. 그렇기에 하늘의 계시 그딴 힘보다, 자신의 책략과 지도력등등을 믿던 최리는, 자명이 말하는 운명론과 하늘의 뜻에 감격하다 못해 쿵짝이 맞아서, 그 것이 낙랑을 위한 길이라며 가슴깊이 받아들인 것을 보면 말이죠.

고구려보다 잘 살고, 풍요롭고, 많은 백성들이 있으나... 고구려보다 군사력에서는 약한 나라.
아직은 고구려와 맞서싸울 힘이 없기에,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낙랑, 이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리는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자명고'는 꼭 필요한 존재였고 말이죠.

거짓된 신물의 등장.

그 거짓된 신물을 진실로 포장하여, 소문을 퍼뜨리고, 결국은 완전한 위장술(?)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르게 부풀리고 부풀려, 스스로의 나라를 신국으로 만들어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그 마음.
뭐... 그렇게라도 나라를 지키겠노라, 하는데 그닥 할 말은 없었지만서도... 힘이 없을 수록, 몸집을 더더욱 부풀려서 강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것이, 그렇게 스스로를 지킨다는 것이 그리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지만서도... 라희가 비아냥 거리 듯 말한, 영리한 사기극이란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이 다가오네요.


그나저나, 최리는 자명에게 너무나 많은 기대와 함께 의지를 하는 듯 하더군요.
국가의 가장 은밀한 부분들을 자명과 의논하고,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자명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모습은 ...
전 어쩐지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더군요.

초반촬영 분이어서 그런지, 자명은 뭔가 해탈한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하고.
현재의 자명은, 해탈하고 싶으나 속세의 인연을 모조리 끊고, 그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으나 도저히 놓지못하는... 번뇌에 휩쌓인 모습,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죠.

역시... 화면이 튀어요. 캐릭터나 감정선들도 그렇고. 드라마 초반부터 이즈음의 시점을 무척 기대했는데, 중간에 붕~ 떠버린 덕에 뒤죽박죽 엉켜버린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아쉽네요.

쭉 보아온 느낌의 자명이라면, 자명이 너 밖에 없다, 라는 최리에게 '네. 절 믿으세요'라고 어느정도의 자신감으로 대답했을 것 같은데... 초반의 자명은 뭔가 해탈한 느낌의... 뭔가 애절하고 절절해하는 듯 보였달까...?





자명에겐 뭔가 특별한 예지력이나 예언능력이 있는 건 아닌 듯 보였습니다.
2년의 시간, 자묵의 가르침에서 얻은 그 깨우침으로 '자명고'의 존재를 보고, 자명고 시스템을 구상하고 전략을 짜는 그런 잔꾀? 잔머리는 있는 듯 했지만,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예언하는... 흔히 생각하는 '신통력'이 있는 신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신녀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낙랑국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숨은 권력자, 처럼 보였습니다.
저... 이거 삐딱선인가요? 그냥 그리 느껴졌을 뿐입니다~^^

'자명고'라는 스스로 창조해낸 신물을 통해서,
낙랑국을 지키고, 자신이 본 그 미래를 바꾸고자하는 의지가 담긴 프로젝트처럼 보일 뿐.

사람의 눈과 귀와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왕자실은 말하곤합니다.
그리고, 믿을 것이 못되는 그 믿음은 때론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오곤 하기도 합니다.

자명고란 것을 믿지 못하기에,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는 무휼은 자신의 눈 앞에서 스스로 울어대는 자명고의 울림에 분노하게됩니다. 그리고, 호동은 이 자명고를 어떻게 부숴버리고 낙랑을 손에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 머리를 굴리게 되는 듯 하더군요.

그 나름의 신기술(?)로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 자명고.
스파이라고 해야할까? 무튼,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덫을 치고, 그 덫에 걸린 이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선물함으로써 거짓된 신물이 진실이 되고 믿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자명고의 비밀부대라고 하던가?
무튼, 먼지바람 속의 그들의 하얀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군사라는 이미지가 딱 떨어지게 이루어진 듯 했습니다. 이미 자명고의 공포를 가슴 속에 간직하고있던 군사들은, 공포심과 더불어 이미 만들어놓은 덫에서 환영을 보듯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말이죠. 공포심과 두려움, 그 것이 고구려군의 사기를 완전히 저하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런지.

이제, 낙랑국은 '자명고'라는 그 소문하나 만으로도, 절대로 함부로 자극할 수 없는, 하늘님의 보호를 받는 절대적인 신국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무휼과 호동은, 눈으로 직접 보았으되 그 자명고를 완전히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지않을 수도 없이, 그렇게 낙랑국을 칠 방법을 계획하게 될 듯 하고말이죠.

최리는 자명과 자명고로 인하여, 고구려의 위협 속에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을지도. 그리고 그 안일한 마음이, 비극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 되었을지도.

최리 및 낙랑국의 주요인사들은 자명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호동'을 견제하지만, 그 외의 자명고의 실체를 모르는 낙랑국 사람들은 하늘님이 내리신 '신물'의 힘을 너무나 크게 믿고있고, 하늘님이 내리신 '신물' 자명고가 자기들 나라 '낙랑'을 영원히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있으니 말이죠.

믿음이란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믿음으로 인한 한 순간의 안일함은 많은 것을 가리게 된다고 생각되어버려서 말이죠.
척박한 땅에서, 낙랑보다 작은 인구를 가진 고구려가, 감히 낙랑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은...
그들이 그만큼 절박해서가 아닐까.

자명고는 전쟁을 막는 신물이라고 하지만, 자명고의 위상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믿고있을 많은 이들은, 자명고를 믿기에 자신만만해질 수도 있고. 이건...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싶었습니다.

(아님 말구~:)








2. 조용하고 고요할 수록 들끓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자명)

왕자님이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았을 때, 그 때만 애써 고요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모릅니다. (자명)


사실, 자명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속세의 끈을 놓지못하고, 마음 속에 그 사랑을 지우지 못한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번민으로 가득차있는 자명처럼 보였달까....?

호동이 보이지않는 곳에선, 낙랑국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머리도 굴리며 이런저런 일을 도모하지만...
호동이 눈 앞에 서있는 순간, 그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그럼에도 표현할 수 없는,
호동이 스쳐간 후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여전히 사랑을 가슴에 품은 여인... 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듯 하더군요.

1회에 나온, 해탈해서 세상사 초월한 듯한 자명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지금의 자명은 꽤나 커다란 차이가 나고있습니다. 그덕에 작가의 원래 의도에서, 11회의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면, 자명은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겪고 신녀가 되어야했던 걸까? 싶기도 했고.

자명에 대한 생각, 자명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자명의 마음을 읽고 느끼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은 많으니...
나는 여기까지^^




지금 조금 끄적거릴 이야기는, 제가 간혹가다가 삐딱해지곤 하는데, 그런 좀 삐뚤어진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이 조금 들어가있을 듯 하니,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여주세요. 맘에 안들면 패스해주시고.

전, 인간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정말 100% 너무나 착하고 착해서 누군가를 위하며, 자신을 돌보지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것또한...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행동의 하나가 아닐런지. 내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일들.

희생이라는 것. 그 것또한 마찮가지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자명의 선택은, 운명론에 이끌려 만들어진 삶이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어나가는 삶이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로 간 것도, 호동을 버린 것도, 고구려를 떠난 것도, 낙랑으로 돌아온 것도,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도, 왕홀과 결혼하지 않은 것도, 스스로 죽은 이가 되어 신녀의 삶을 선택한 것도, 그 모든 것은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 이었다는 것이죠. 아, 자명은 '운명'이 강요했다, '운명'이 나를 이리로 이끌어서 어쩔 수 없었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까짓 운명의 이끌림을 받아들인 것도 스스로의 선택. 이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죽은 이로 살아가고, 공주의 자리를 갖지도 못한 채, 그리 숨겨진 왕녀로서, 낙랑을 지키는 신녀로서 살아가는 그 삶이, 그저 '희생'이란 이름으로만 있는 자리일까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운명에 수긍하며, 낙랑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 나를 버린 낙랑이지만 내가 돌아와서 내가 그들을 위해 내 사랑을 버리고 내 삶을 희생하고 낙랑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자기만족이 있는 건 또 아닐까?

뭐... 자명은, 그렇지않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가끔 자명의 표정에서, 낙랑의 숨겨진 왕녀이자 낙랑을 지키는 신녀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여서 말이죠.

이 부분이 의도된 설정인지, 정려원씨가 해석하고 그려내는 자명이 그런 것인지, 작가의 그런 의도와 정려원씨의 해석이 전혀 그런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력이 부족하고 미흡한 제가 그녀의 표정을 잘못 읽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공연이든... 창작자의 손을 떠나 이미 완성되어 세상에 내놓아진 이야기들은, 더 이상 그네들의 것이 아닌, 그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그리 받아들였습니다.




* 설명하긴 좀 힘든데, 역시 자명은 모하소의 딸,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가오는 상황을 벗어나지않고, 그 틀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듯한 모습이랄까? 그런 부분이 참 비슷한 모녀라고 생각해요.

몇몇 부분에서 느끼고있는데, 당장 떠오르는 부분은...
신녀의 운명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명이나, 신녀가 되고자하는 딸의 운명이 내내 아프지만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하소나. 왕자실이라면... 라희가 신녀의 운명이라해도 그까짓 운명따위 개나 주라며, 내딸 라희를 그딴 신녀로 만들 순 없다며 무시하고 짓밟아버리겠지? 라고 잠시 딴생각..ㅡ.ㅡ;


* 운명을 받아들이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신녀 자명과, 호동에 대한 마음의 끈을 미처 다 놓지못한 여인 자명은... 그래서 어딘가 틈이 느껴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틈이 매끄럽게 연결될 다리가 필요한 듯 한데.

* 운명론 어쩌구하면서 궁시렁거리니까, 제가 운명론에 무지 삐딱한 시선을 가진 사람같지만... 운명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도, 그 실타레가 잘만 풀려간다면 꽤나 좋아라하기도 합니다. 운명이란 건,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찌되었건 참 신기한 녀석이잖아요?

운명론으로 그려진 이야기에서 '운명이란 이런 건가?' 싶은 마음을 가졌던 건 어릴 때 읽었던 '은비가 내리는 나라'였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한 순간의 뒤틀림으로 생겨났으나, 그 뒤틀림조차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으며, 그렇기에 결과는 처음 정해진대로 돌아왔다, 라는 듯 했달까? 자명고가 이런 느낌을 주는 전개로 흘러갔다면, 전 자명고의 운명론을 나름 좋아라했을지도. 이 모든 것은 구멍난 11회의 흔적기만 할까? 싶은 지금.








3. 숨이 막힌다. (호동)

숨이 막힌다.
태추야, 뿌쿠가 누군지 ... 뿌쿠의 부모가 누군지, 제발 좀 찾아다오.
이대론,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호동)


오~ 저 턱선의 외로운 각도! 오~ 저 콧날의 날카로운 지성!!!
제가 좋아해 마지않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송'의 한 소절입죠...ㅋㅋ
오나라씨가 부르는 OST가 음원으로도 아마 있을텐데, 한번 찾아서 들어보세요.
맨 앞소절이니, 미리듣기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기다리실 것입니다... (ㅡ.ㅡ.;;;)

호동이의 옆모습을 보니, 한번 불러주고 싶었다능~ ; 무튼, 정면보다 옆모습이 더 멋지긴 하네요...^^;
(개인적인 의견.)

호동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호동이 아니지만,
사랑이란 녀석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변화시키는 건가, 라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4회라는 시간이 있기에 그 과정이 무엇이든 결과는 제가 원하는 호동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이 드라마는 '사랑'이란 족쇄로 그들의 운명이 비극으로 치닫는 듯 한 드라마지만, 제가 바라는 결과는 '사랑'이 '족쇄'가 아닌 '수단'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더 잔인할지 덜 잔인할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것이 그네들이 인생의 쓴맛을 보며 살아온 삶이 그릇되지 않았음을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니 말이죠.

호동은 슬슬 낙랑국을 치기위한 계획을 하나 둘 세우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예상치못한 '자명고'의 존재에 당황하며, 그 '자명고'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 자명고의 실체가 '자명'임을 알지는 못하지만, 자명고의 '주인'이 자명임은 알고있는 듯...
그렇게 자신을 버린 자명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그리 자신 마음 속의 분노를 고요하게 풀어내더군요.

호동은 여전히 자명의 실체, 자명의 부모가 누군지 모르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왕홀의 두번째 부인이 될 줄 알았던 자명이, 낙랑국의 신녀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뭔가 혼란스러움이 자꾸만 쌓여가는 듯 했달까?

숨이 막힌다, 라던 호동의 그 말에서...
자신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내는 라희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을 외면하는 자명에 대한 분노와 그럼에도 지워지지않는 사랑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닌가...?



* 호동이의 하얀갑옷은 참으로 화려하고 튀더이다.
* 호동왕자, 고구려로 돌아가서 올백머리 해주세요... 앞가르마 반머리, 화려한 의상, 어쩐지 튀어.
* 낙랑국의 의상은, 여자옷은 화려해서 이쁜데... 남자옷은 지나치게 튀는 이 느낌.
* 라희와 호동이 평화로이 진양궁을 거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어린시절 좋아했던 중국무협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 기묘한 느낌은 또 뭐란 말이가.

* 어릴 때 그거 참 좋아했는데... 판관 포청천이랑 의천도룡기랑 측천무후...ㅋㅋ
의천도룡기랑 측천무후는 전혀 기억이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기억만 난다고 해야하나?







4.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이 라희가 호동을 사랑하는 것. 그 것만이 중요해져. (라희)

어른이 되면서 우린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해요. 그 중에서 난, 사랑이 제일 절실했나봐.
사람을 마음에 담게되면, 기대가 커지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않으면, 좋다, 밉다, 증오한다, 많은 감정들이 오가지.
그리고, 그 감정의 선이 넘어서면, 그땐 이미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가는 중요치 않아져.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이 라희가 호동을 사랑하는 것. 그 것만이 중요해져.
뿌쿠를... 뿌쿠를... 마음에서 내려놔요.
그게 용서든 뭐든, 어떤 감정이든, 날 위해서 뿌쿠를 내려놔요. 사랑해요. (라희)


자명고에서 말하는 인생의 쓴맛이란 것은, 살아가면서 겪어온 그 상처를 말하는 것이겠죠?

그냥 제 3자의 눈으로 보자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사랑받지 못하고 왕이되고자 자라온 호동과 태어나자마자 산호뒤꽂이에 염통이 찔려 죽을 위기를 겪으며 죽음의 위협에 살아가며 자신을 알고자하는 자명에 비해서, 외삼촌을 죽이는 생모의 모습을 두눈으로 생생히 목격해서 일시적인 자폐증상을 보이고 설상가상 사랑하는 엄마 모하소의 사랑이 온전히 제 것이 아닌 것을 알아버린 충격에 아파했던 라희와 가족 간에 죽고죽이는 그 상황 속에 빠져버렸던, 형을 죽인 누나를 죽이려는 형수와 그런 형수를 죽이려는 누나. 그 피비린내나는 상황 속에서 형사취수혼을 선택해야했던, 그저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없어져버린, 낙랑국 대장군의 삶을 살아야만했던, 오랜 시간이 흘러도 누나와 형수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현재, 왕홀의 상처는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상처가 작나요?
전, 호동과 자명의 상처보다 그네들의 상처가 결코 작거나 미미하다고는 절대로 생각되지 않거든요.
다른 이들의 눈에 보여지는 그 크기가 다를 뿐, 그 깊이는 다 똑같다고 여긴다고 말해야하나?

왕홀과 라희는, 그래도 참 많은 사랑받고 자랐지않는냐고 물으신다면... 그저 웃지요.
사람의 행복의 잣대는,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기준의 되도않는 행복론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구구절절 원치않아도 해보겠지만, 여기선 그 되도않는 행복론을 논할필요가 느껴지질 않네요...ㅎㅎ)

무튼... 왕홀과 라희는, 마음마저 행복할 순 없이 살아왔을테니 말이죠.
성인이 되면서, 호동과 자명의 그 상처는 자꾸만 들춰내는데 반해서... 왕홀과 라희의 상처는 이미 다 아물어버린 듯이 그려지곤 하는데, 과연 그 것들이 다 아물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호동과 자명은 그 상처를 자꾸 들춰냄으로서 그 상처가 삶에 큰 작용을 하고있음을 보여준다면, 라희와 왕홀의 상처는 더더욱 덮어줌으로서 그들의 상처는 드러나지않는 무의식 속에서 그 상처들이 작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 표현하지 않은 것이라면, 내가 그리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정말 그리 표현하신 거라면, 그 표현이 너무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ㅡ.ㅡ;


일시적인 자폐, 자라면서 잊혀지고 어쩌면 본인 스스로 이겨냈다고 하겠지만,
그 것 말이죠...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는 잊고살아가면서도, 살아가면서 평소에는, 겉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의 무의식 중에 엄청난 작용을 하거든요.

라희의 사랑에 대한 굶주림은, 그런 무의식이라 여겨지고 있고...
적국의 왕자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라희에 대한 왕홀의 경멸이랄까? 그런 결벽증적인 모습또한, 어린 시절의 상처와 자라온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말이죠. 누나의 일을 그냥 덮어두고 모른 채 하지만, 배신, 이라는 것이 가져오는 결과, 그에 대한 경멸이랄까? (아님 말구)

그러나, 언젠가도 말했듯이...
인생의 쓴맛으로 표현되는, 나의 상처가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다른 이들과는 비교하며, 내 것이 크네, 니 것이 크네라고 비교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라희를 향해 인생의 쓴맛을 모른다던 호동의 그 말이, 내내 거슬렸었고 말이죠. 호동은, 라희의 삶을 온전히 모르면서 그녀의 화려한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있었으니.

사람이 다 그렇죠, 뭐.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 드라마는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이해한다, 짠하다, 그러지만.. 제가 저 속의 인물이었다면 저 또한 라희를 그리 아무 부족한 것 없이 온실속의 화려한 꽃으로만 바라봤을지도.


제가 라희를 짠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그런 부분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자명의 상처를 마음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려 하 있다면... 라희의 상처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자명보다 라희의 상처가, 저에겐 더 크게 다가올지도. 이건, 개개인의 차이이니까 가타부타 하지말아주세요^^

늘상 생각하지만, 자명을 사랑해주는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든 밖에서든 많으니까,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데 참 부족한 저여서, 라희에 대한 제 마음을 그렇게 논리적으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그냥 나 하나쯤은 무조건 적으로 라희를 이해하고 사랑해주고 싶어서 말이죠. 아... 이건 엄마의 마음인가...ㅋㅋ




너의 죄가 뭔지 알아?
너만을 바라보는 호동을, 나 혼자 지켜봐야 했지.
내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라희는, 호동의 마음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 알아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호동을 자신의 마음에 완전히 들여놓은 후에 알아버린 건 틀림없을 듯. 내내 호동의 사랑을 의심하던 라희가, 그 사랑을 완전히 믿은 후에, 호동을 사랑하게 된 후에 알아버렸을지도. 그 마음을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버렸기에, 라희는 그 상황에서 호동에게 사랑을 고백했겠죠.

니 마음이 어디에있든, 이젠 상관없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그 것 하나면 된다. 라는 듯이.

호동또한 이 말속에 라희의 마음을 읽었는지, 읽었기에 그리도 숨이 막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라희에게 더이상, 호동이 자신을 사랑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그 끊임없는 사랑확인은 필요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이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그 것 하나만 중요하다라고 하니 말이죠.

그리고, 그 말의 깊은 곳엔,
나는 니가 나를 사랑하지않는 걸 이미 알고있지만 신경쓰지 않을꺼야. 대신 나한테 들키지만 마.
라고 들리는 듯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라희는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치졸한 짓.
바람난 남편을 잡기 위해서, 그 내연녀를 찾아가서 응징하는 본처처럼, 자명을 찾아가 행실 똑바로하라고 차갑게 경고까지 하게되니 말이죠. (근데... 왜 남편이 바람났는데, 내연녀를 응징할까? 남편을 응징해야지!!!)

자명과 다시금 재회한 날 정신 못차리고 자명을 바라보던 호동의 시선에서, 호숫가에서의 밀회에서, 신당에서의 밀회에서, 왕홀과 행복하게 미소짓는 자명을 정신못차리고 바라보는 호동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희는, 그냥 모른 척 외면해버리고 말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본 적이 없었다는 듯이.

라희는, 호동이 끝까지 자명을 향한 시선과 마음을 거두지않을 것이란 것을 알겠지만...
호동이 자신을 속이고있음을 이미 알아버렸지만, 끝까지 모른 척 눈감아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거짓을 모른 척 눈감아주면서도, 그 사랑이 온전히 자신에게 오길 바라는...
(그 독기와 살의와 분노는 자명에게 표출할지도...;)

그런 라희의 모습은, 어쩐지 마지막 희망인 썩은 동아줄을 잡고서 살고자 애쓰는 듯 하달까...?


하지만... 라희가 자명고를 찢는 건, 사랑 그 하나 때문만은 아닐 듯 합니다.
이 부분은, 라희가 자명고 찢고, 낙랑국 멸망시키고, 자결하고나서 생각해보죠...뭐..ㅡ.ㅡ;

아아... 이제 4회분량만 남았다고, 벌써부터 아이들 죽는 것을 생각하는 저랍니다~:








4. 너의 그 시끄러운 북소리, 잘 들었다. 허나, 난 너의 그 영리한 사기극을 믿지 않는다. (라희)

다시는 내가 이성을 잃게 만들지 마라.
원후마마를 위해 한 번. 널 죽이려했던 내 어머니의 죄를 비는 마음에서 한 번.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니가... 나와 한 아버지의 피를 이은 동생이란 것에서 한 번.
딱 세 번만 용서해주마. 호숫가와 오늘, 벌써 두번이다.
신녀님, 부디 자중하십시요. (라희)

아무리 인정하기 싫으셔도, 전 언니 동생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몸과 태녀마마는 낙랑국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명)


잠깐... 라희가 언니라니... 자명이 라희더러 '언니'라고 할 때마다, 내가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라희는 왕자실의 도움으로 미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살아왔고, 자명은 살아님기 위해서 여기저기 굴러서 그렇다, 라고 생각해봅니다.

라희는, 무엇을 믿고싶지 않은 것일까요...?
자명을 믿고싶지 않은 것일까, 운명을 믿고싶지 않은 것일까...?

아마, 자명을 믿지않으면서, 운명이란 녀석도 믿지않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 건... 왕자실의 삶은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진다는 가르침과 더불어 지금은 '신탁'에 의지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런 것에 질색팔색했던 최리의 영향도 꽤나 큰 듯 했습니다.

그러니, 자명고따위 믿지 못한다며, 자명을 무시하는 라희의 행동은...
자명에 대한 미움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믿음과 배움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일이기에 더더욱 자명에게 비아냥거리고, 자명고를 믿지 않노라 당당히 말하는 것은 아닐런지.

자명의 입장에선 저렇게 자명을 믿지못하고 질색팔색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라희가 참, 그닥스럽겠지만...
라희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저 상황에서 라희가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면서 곧바로 수긍하는 것도, 웃기지않는가? 지금은 사랑에 살짝 눈이 멀어가긴하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태녀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녀인데, 여왕이 되기위한 삶을 살아온 그녀인데,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자신의 가치관과 줏대라는 것이 있을테니 말이죠.

최리는, 자신이 자명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서 단시간에 아주 갑작스럽게 신탁에 의지하는 왕이 되어버렸지만, 자라는 내내 자신의 뜻과 가르침을 이어받았을 태녀또한 '내가 이러이러해서 신탁에 의지하게 되었으니 너도 그러도록하자' 라고 설득 혹은 상황설명을 했어야했는데, 그런 과정을 다 생략하고 '나는 왕, 너는 태녀. 그러니 나의 뜻을 무조건 받들라'라고 했으니 라희가 더더욱 비뚤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이 부분, 저는 참 그닥스러워서 말이죠. 태녀를 배척하고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일을 진행시키는 저 상황이 말이죠. 그러면서 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녀를 내내 꾸짖기만 하고. 뭐.. 아마 자명의 등장과 호동을 탈출시킨 그 날 이후로, 최리도 왕홀도 라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기에 발생한 일이란 생각도 들긴 들지만.


무튼, 라희는 자명에게 살의를 느끼는 듯 했습니다. (역시, 왕자실의 딸..ㅡ.ㅡ;)
그러나... 또한 자명에게 미안함과 미미하게나마 핏줄의 이끌림 비스므리한 것도 있었겠죠.

자명의 존재가 라희에게 의미하는 것.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지금은 미워하고 싶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모하소 엄마의 딸이자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위해서 갓태어난 자명을 죽이고자 지은 죄와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인정해야하는 한 핏줄이라는 점.

그 것이, 그 살의를 멈추게 하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게된 듯 했달까...?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라희와 자명은, 한 사람이 살아야 한 사람이 죽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며 살아가야하는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라희와 자명은, 그래도 어린 시절의 첫 만남은 안좋았으나... 두번 째 만남으로 나름 좋은 기억을 지닌 채 자라왔었는데... '호동'의 존재가 그녀들을 갈라놓은 듯 싶기도 하고.

라희가 자명을 경계하듯, 자명도 라희에게 '난 당신 동생, 우리는 자매, 우리는 함께 낙랑을 지켜야해요'라고 말하긴해도 그다지 라희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뭐랄까... 운명이 그러라니 그러겠지만, 나도 사실 당신이 내 언니인 것도, 내가 당신과 함께해야하는 것도 크게 내키진않아, 라는 듯 할까?

호동의 마음이 자명에게 있음을 알기에 더더욱 자명이 싫은 라희처럼,
호동 곁에 서있을 수 있는 이가 라희임을 알기에 자명또한 라희가 그리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듯 합니다.

설상가상... 생모인 모하소의 극진한 사랑마저, 라희와 둘로 나눠가져야하니..
아무리 속세를 끊고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신녀라지만... 그 마음 접는 게 쉬울까~;

얘들은, 마음 속 어딘가에 '핏줄'의 이끌림이 잔잔하게는 흘러가는 듯 한데...
서로에게 가진 그 적대감과 분노와 증오와 경계와 질투 등등, 그동안 쌓아온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 그 이끌림은 모든 걸 잃은 후에야 겨우겨우 느끼게 될 듯 싶습니다.

자명을 찌르고 나서야 호동의 초상화에 술잔을 던지며, 나라고 동생 죽이고 싶었겠느냐며, 버럭거리고 눈물짓는 라희처럼. (2회 영상이 없어서, 어렴풋한 기억만 되새김질 중.)









* 미숫가루... 잘못타서 걸쭉~ 해요. 얼음넣으니 좀 낫긴한데... 맛난게 타는 법 있나요?
가루넣고 우유넣고 얼음만 넣고 먹는데, 입에 안맞네요...ㅡ.ㅡ;

* 오늘도 라희사랑은 계속될 뿐이고...;

* 화면이 튀어요. 1회때 상황이 얼른 돌아오길 바랬는데, 화면이 튀니까 짜증스럽기까지.

* 이제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리의 최후가 다가오는 건가?
스폐셜에 낚여서 1회부터 기다리던 씬이었는뎅.

* 자명고각에 들어서기 전의 씬은, 재촬영한 듯 하더군요. 상황이 바뀌었으니.
1회를 돌려봤는데, 1회에 나왔던 뭔가 발랄하고 통통거리는 라희의 모습이 지금의 사랑에 날개꺽인 라희와는 전혀 달라서 또 색다른 매력이.

* 1회의 자명은 뭔가 해탈한 듯 해 보였고, 1회의 라희는 말그대로 천진난만해 보였습니다. 호동은 뭔가 비극에 물들어있는 듯 보였고... 원래대로라면 이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어야 했던 것일까...ㅡ.ㅡ???

* 해애우야... 네, 해야지? // 넵. >>> 해애우 연기에 대단한 박수를 표하며...ㅡ.ㅡ;
행복한 여자에서 봤던 사랑양 연기보다 더 놀라우십니다...ㅎㅎ // 아역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요즘 아역들의 연기력에 항상 놀라다보니, 가끔 너그러워지지가 못하는 상황도 오곤 하네요^^;

* 옆집 미실언니야랑 떡만이랑 아프다더군요. 재방사수하는 입장으로서, 언넝언넝 완쾌하길. // 근데, 좋아라하는 설원랑이 손 베였대서 그 부분이 더 걱정스럽기도. // 근데... 떡만이네는 얼마나 방영했다고 벌써부터 생방촬영이어서 사람 놀라게 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