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천명 10회) 장막 속에 가려진 진실에 다가서다

도희(dh) 2013. 5. 29. 18:40

 


분명, 거북 구(龜) 자는 없었다 했는데, 최원 그 자는 기어코 봤다.
지어낸 얘기라 하기엔 거북 구(龜)를 구덕팔이라 믿고 목숨걸고 양주로 갔으니...!

- 홍역귀 / 천명 10회 -

홍역귀란 별명답게(...) 최원을 다시 잡아들인 이정환은, 자기 딸의 목숨까지 걸고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영 찜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 도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비겁한 마음 - 그토록 자신하던 자기 촉이 틀릴까 두렵고 그 실수를 인정하는 게 죽기보다 싫은 - 한자락을 우영에게 들키게 되며, 속는 셈치고 그의 주장을 되짚어 보게되며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 그렇게 자신이 놓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진실을 다 알고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소윤파의 끄나풀인 곤오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채 짜맞춰진 거짓된 증거에서 결론을 내린 홍역귀가 답답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만으로 단정짓고 수사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증거를 통해 수사를 하고 그 것을 토대로 결론을 짓는 것이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죄없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않는 방법이라 여겼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자와 최원의 관계 및 최원을 구명하고자 하는 세자의 행보에 살을 덧붙힌 김치용의 말에 마뜩찮은 모습을 보이던 홍역귀를 보니, 거대권력에 의해 맑아야 할 진실이 흐려지며 정의가 꺽이는 것을 불쾌해하는 올곧은 사람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성품과 수사방식을 알기에 소윤파의 끄나풀인 곤오는 쉽게 홍역귀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었으리라.

홍역귀 인생에 양다리는 몰라도 헛다리는 용납못한다던 그는, 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라는 자신의 철칙에 따라 뒤늦게나마 발견한 증거들을 따라 장막에 가려진 진실을 향해 다가서게 되었다.


저들이 내 심장에 비수를 꽂은들 니가 내 뒤통수를 친 것만 하겠느냐?
그래. 니 딸을 살리기 위해 덕팔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저들의 거래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여, 내 뒷통수를 치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넌 딸을 둔 애비니까.
애비는 딸을 위해서 내가 죽을 수도, 남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 세자 호 / 천명 10회 -

랑이의 주머니에서 발견한 모란꽃 그림조각. 모란꽃은 세자의 계모이자 중전인 문정왕후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리고, 이 모란꽃이 문정왕후의 밀지에 사용된다는 것 또한 세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모란꽃 그림조각을 가지고 있는 최원(정확히는 랑이지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곤오가 스파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의구심은 들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조각들이 맞춰진 것처럼, 랑이의 주머니에서 나온 모란꽃 그림조각을 본 순간 그 또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막연한 두려움에 의해 조각들이 맞춰진 것은 아닐까, 싶었다.

곁에 있어달라던 자신에게 국본의 명보다 딸아이 명줄이 더 중요하다던 최원이었고, 불길 속에서 딸아이를 위해 함께 무사히 나가야 한다 외쳤던 최원이었고, 저하의 곁에서 무참히 희생양이 되신 건 제 조부 한분이면 족하니 그 곁에 추호도 있고싶지 않다 말했던 최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는 최원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덕팔을 죽일 이유가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가, 최원을 이해하고 또한 그의 말을 듣지않은 채, 자신이 맞춰놓은 조각에 빠져들어 깊은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가슴으로는 확 와닿지 않았으나 머리로는 어느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깊은 고독과 늘 목숨을 위협받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온 그가 마지막으로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을 받고자 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다 여기는 것이니... 오죽하랴.


 

그리고, 서방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민주부라는 분이 남기신 거북 구(龜) 자가 자기를 가르키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말입니다.
민주부라는 분은 사람들이 서방님께 거북 구 덕팔이라고 놀리는 걸 아주 싫어하셨다고 합니다.
서방님의 등모양을 가지고 그렇게 놀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그러신 분이 어찌 자기를 가르켜 거북 구(龜) 자를 남겼겠냐구요.

- 덕팔 처 / 천명 10회 -

진범이 덕팔도 아니고 따로 있는데 굳이 '거북 구(龜)' 자를 쓴 것이 이상하다 여기게 된 다인과 원은, 민도생이 남긴 사자전언이 덕팔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던 최원은 민도생이 어린 시절의 비밀장소인 구룡바위를 다르게 칭하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마, 그 날 함께 술을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 어린시절 비밀장소를 거북바위라 부른다는 것을 강조한 것, 그 바위 근처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살 집도 마련해 놓았다는 이야기, 를한 것은 민도생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게 될 때, 이 대화를 떠올려달라는 의미의. 그리고, 최원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제서야 그 날의 대화를 떠올리게 되며 그가 남긴 '거북 구(龜)'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고, 덕팔 처를 통해 덕팔이 남긴 말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사건을 풀 열쇠가 되어주는 '거북 구(龜)'를 푸는 열쇠는, 타인과의 교류, 였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었기에 내의원과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거북 구 덕팔을 떠올리지 못했던 최원은 유일하게 교류하던 이들을 통해 그 존재를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 답은 잘못된 것이었고 그 답을 얻기위해 교류를 하게된 덕팔을 통해 최원은 또다시 힌트를 얻게된다. 그런 최원을 보며 그는 정말 랑이 외의 타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의원에서 그를 가장 잘 알고 신경쓰고 배려해주는 민도생의 성품조차 잘 알지 못하고, 그가 강조했던 말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걸 보면.




신뢰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 관계가 쌓이고 시간이 쌓여야 보이는 것이지.

- 구가의 서 16회 / 이순신 -

어린 시절, 정치적 상황에 의해 손목이 잘리고 목숨까지 잃게된 할아버지를 보며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는 듯 없는 듯 최원은, 사랑하는 딸 랑이를 살리기 위해 내의원에 들어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타인과의 교류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의원의 본분을 져버리지 않았던 그는 다인과 거칠 그리고 덕팔처와 그 아기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그가 살인자가 아닌 증좌가 바로 최원 그 자신임을 증명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고 그와의 관계가 쌓이고 시간이 쌓여간 이들은 그의 무고함을 믿어주며 누명을 벗기위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최원은 다시 잡혀왔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최원과 아무런 연관이 없기에 오로지 증거에 의해 사건을 수사하고 그를 범인으로 결론지었던 홍역귀는, 최원이 도망자 생활을 하는 동안 최원을 구명하고자 애쓰는 다인을 보아왔고, 최원에게 미안해하는 세자를 봤고, 그의 무고함을 외치는 그의 가족들과 하루 하루 관계를 쌓아가고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최원이란 한 사람을 조금씩 바라보고 또한 알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딸 랑이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되었고, 그렇기에 그가 자기 딸의 목숨까지 걸고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찜찜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반면, 최원의 무고함을 믿어주던 세자는 결국 최원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민도생을 죽인 범인은 아니나 덕팔을 죽였다 믿으며. 덕팔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뒷통수를 쳤다고 믿는 것으로. 세자와 최원 사이에 쌓인 관계와 시간이란 것은, 최원과 최원의 조부에게 진 마음의 빚을 끌어안고 그를 곁에 두고자 했던 세자와 그런 세자를 밀어내며 멀리하려고 했던 것이니 말이다. 최원이 세자를 온전히 믿지 못한 원인이 세자에게서 비롯되었듯이, 세자가 최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세자를 탓할 것이 아닌 최원 자신이 쌓은 관계의 잘못이리라.

이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짓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원이 '거북 구(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교류, 그리고 그 교류를 통해 관계와 시간을 쌓아가며 믿음과 신뢰를 얻게된다는 것이라 말하는 듯 했다. 그렇게,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회초리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개를 모아 놓으면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어쩐지 이 드라마는, 억울한 누명을 쓴 최원이 도망자의 신분이 되어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성애를 그린 드라마이기도 하면서, 할아버지의 일을 통해 세상사에 멀미를 느낀 그가 딸 랑이와만 함께하는 세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왔던 최원이 이 사건을 통해 세상 밖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그의 성장담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문득, 드는 중이다.


그리고-.

1> 홍역귀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최원. 그런 최원에게 날 믿지 못했던 것이냐, 라고 묻는 홍역귀의 질문은.. 나는 너를 믿어줬는데 넌 어째서, 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최원이 홍역귀를 믿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어떻게든 누명을 벗고 살아서 나가야만 했던 최원은 일단 모두를 의심하고 봐야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2> 최원이 그리 먼 곳까지 도망을 가지 않게되며 다인과 최원의 로맨스도 간간히 이어지는 중이다. 로맨스가 중심은 아니지만 그들의 관계와 시간이 쌓일 수록 그 로맨스에도 힘을 싣게되는 듯 하달까? 의외로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3> 이 드라마 '천명' 속 여캐릭터들은 모두가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한 바가 있으면 실천에 옮기는 행동력이 있다. 위로는 문정왕후에서 아래로는 랑이까지. 게다가, 드라마 방영 전 매우 미안하게도 약간의 우려를 했던 다인이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헤쳐나가며 원을 돕는 행동력있는 여성이라니! 사극 속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난 적이 있던가, 라는 생각 중. 반면, 남캐릭터들은 상황 속에 빠져서 그 상황에 의해 움직이는 듯 하여 약간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중이다. 그 속에서 슬슬 의지를 갖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니 이 또한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런지.

4> 홍역귀가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극이 좀 더 흥미롭게 흘러가는 듯 했다. 최원의 무죄를 믿게되었고 소윤파의 끄나풀인 곤오의 정체까지 알게된 홍역귀의 행보가 기대되는 중이다. 소윤파가 일을 좀 더 쉽게 해결하고자 했다면 곤오보다 홍역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편했을텐데, 곤오만 끌어들인 걸 보면.. 수사관 홍역귀는 그들의 손에 닿을 수 없는 올곧음이 있는 이 같았다. 우의정인 김치용에게 당당히 손바닥에 자상이 있는지 여부를 보여달라며 자신의 용의선상에 올랐음을 돌직구로 날리는 것도 그렇고.

5> 전체적으로 돌직구 드라마. 조금은 애둘러가는 방법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의 일부를 싸매고 시청자들과 함께 진실을 찾기위한 추리를 해가는 드라마였다면 좀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등등. 극적인 느낌이 덜하다고 해야할까?

6> 딱 절반까지 왔다. 적이었던 홍역귀는 아군이 되었고, 아군이었던 세자는 적이 되었다. 스스로 스파이를 자청한 다인은 적이 내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게되었고, 랑이의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천봉이 수장으로 있는 '심곡지사'의 돈줄을 책임지고 있는 도적 거칠은 김치용의 이름에 반응하며 그와 악연이 있음을 알렸고, 권력을 향한 욕망이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문정왕후는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최원은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 홍역귀는 그의 무죄를 밝혀줄 수 있을지, 랑이는 살아날 수 있을지, 거칠은 심곡지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 그리고, 세자는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서 보위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인지.. 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