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령
기괴하고 감히 사람의 접근을 허하지 않는 험한 산세. 태고적부터 산을 지는 영물들만 때때로 출몰한다는 바로 그 곳, 이름하여 달빛정원. 그 달빛정원에는 천년 전부터 지리산을 수호하는 신수 구월령이 홀로 살고 있었다. 무한한 삶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월령에게 유한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은 늘 흥미로운 존재이자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신수인 자신과 인간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지루한 삶의 작은 유희거리로 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유일한 친구 소정의 걱정을 들어가면서 까지. 그리고, 소정이 '두번다시'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아마도 월령은 그 전에도 인간사에 개입한 적이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닥친 비참한 운명을 끝끝내 거부하는 윤서화의 존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홀로 외로이 살아왔음에도 굳이 인간이 되고싶다는 생각은 하지않았던 구월령은, 윤서화를 마음에 담게되며, 그녀와 함께 늙어가는 평범하지만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원하게 되었고,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구가의 서'를 얻기위한 백일간의 치성에 들어가게 된다. 유일한 친구 소정의 간곡한 청을 뒤로한 채, 백일간의 기간동안 감내해야할 불편함을 끌어안고, 혹시나 실패할 시에 얻게될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화
조관웅에 의해 누명을 써서 역모죄로 참형을 당한 윤참판의 딸, 윤서화. 귀하고 곱게 자란 서화는 하루아침에 춘화관의 기생이라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양반으로 나고 자란 그녀의 자존심은 수치목에 묶여 치욕스런 사흘밤낮을 보낸 후에도, 결코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동생의 목숨과 자신의 자존심 사이에서 동생의 목숨을 선택한 그녀는 힘겹게 관기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했지만.. 원수인 조관웅과의 초야를 치뤄야한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과 몸종 담이의 도움을 받아 운명으로부터 달아나게 된다.
더이상 달아날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내일이 있다는 담이의 말을 뒤로한 채 죽음을 선택하려는 그녀 앞에 나타난 월령. 조금은 엉뚱하고 순수한 월령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달빛정원에서의 삶은 평온했고, 서서히 그녀가 잃어버린 미소를 찾아줬다. 그리고, 마음껏 웃기 힘들었던 단 하나의 걱정인 가족들의 안부를 월령을 통해 전해들은 후 안심하게된 서화는, 역적죄인의 딸이자 도망친 관비의 신분따위 상관없다는, 곁에서 지켜주겠노라는, 월령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관기의 운명을 끝끝내 거부한 그녀는, 기괴하고 감히 사람의 접근을 허하지 않는 험한 산세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달빛정원에서 월령과 영원을 함께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진실
혼인 후 석달의 시간이 흘렀고, 월령이 인간이 되기까지 열흘하고도 하루가 남은 어느 날.. 월령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홀로 나물을 캐러 간 서화는, 아직까지도 산을 이잡듯 뒤지며 그녀를 추적하는 관군들에게 들키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정체를 말하지 않은 채 흐른 석달의 시간, 그리고 인간이 되기까지 열하루가 남은 그 날, 관군들에게 끌려가는 그녀를 지켜야한다는 본능은 그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그렇게 금기를 깨트린 채 인간들에게 정체를 드러내는 것과 함께 살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과 월령의 정체를 감당해내지 못한 서화는 스스로 담평준을 찾게되고, 그 곳에서 만난 조관웅을 통해 동생과 몸종 담이가 이미 죽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었다. 그 순간, 서화는 모든 이성적 판단이 끊어졌을 듯 했다. 자신의 정체부터 가족들의 죽음까지 모조리 숨긴 월령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구미호의 꾐에 속고 미혹되어 살아온 자신이 한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미혹하고 또 속여온 그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의 서화에게는 월령의 모든 행동이 명백한 배신이었을 것이다. 그로인해 서화는 관군들을 달빛정원으로 안내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진실 속에, 눈에 보이는 거짓 속에, 숨겨진..
오직 서화만을 걱정하고 위하고 사랑하는 월령의 진심을 읽어내지 못한 채...
선택
서화의 선택은, 모든 금기가 깨어진 상황 속에서 월령이 천년악귀가 되는 걸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산산히 부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서화의 배신에 혼란스러워진 월령은, 여전히 알지 못할 그녀의 배신에 대한 이유를 물으며, 그녀를 향한 진심을 내뱉으며, 천년악귀가 되지않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방도를 스스로 놓았다. 왕자를 찌르지 못해 스스로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서화의 심장을 찌를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천녀악귀가 되어버렸다.
인간과의 사이에 있는 분명한 경계, 서화를 사랑하게 됨으로서 허물어진 한번의 경계는 두번, 세번, 그렇게 무너져 천년의 시간동안 산을 지키며 외롭고 쓸쓸하지만 평화롭게 살아왔던 월령의 운명 전체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그저, 인간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운명
기생라는 운명을 거부했던 서화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월령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이 아닌 신수라는 것을 알게된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의 운명을 거부했다. 기생이라는 운명도, 신수의 처라는 운명도, 괴물아기의 어미라는 운명도, 귀하고 곱게 자라온 자존심 강하고 어린 서화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또한 무거웠던 것 같다.
월령이 사라진 후에야 그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된 서화는, 담평준의 배려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임신기간 내내 아이를 지우려고 독초를 씹어먹고 수십번 높은 곳에서도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살아있는 뱃속의 아기를 차마 낳을 수 없었던 서화는 양잿물까지 마시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아무도 모르게 낫 하나를 쥐고, 월령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찬, 여전히 그의 숨결이 남아있을, 어쩌면 그녀 인생의 마지막 행복으로 반짝일, 또한 끝없는 후회와 한숨으로 가득차있을 달빛정원으로 향했다. 괴물을 낳아 기를 수 없었기에, 그래서 뱃속에서 죽이려했으나 끈질기게 살아남은 아이를, 태어나자 마자 제 손으로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서.
참 모진 어미,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서화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조금의 장애가 있어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 괴물로 태어날 아기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지레짐작이 그런 모질고 독한 선택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괴물아기의 어미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겁나고 두려웠던 것도 그 선택에 대한 비중 큰 이유가 되겠지만.
서화가 낳은 아기는 괴물이 아니었다. 월령을 잊지 못하는 달빛정원 속 정령들(이라고 생각;)은, 아기의 얼굴조차 확인하지 않고 낫부터 드는 모진 어미로부터 아기를 지켰고, 그제서야 어미는 아기의 얼굴을 보고 절규를 했다. 괴물이 아니라고. 그러나, 홀로 강한척, 센척, 하지만 결국.. 짓눌린 운명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약해빠진 인간이었던 어미 서화는, 반인반수의 아기를 홀로 키우며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수와 혼인을 했고 신수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상황에서, 자신의 손으로 키우면 그 모든 눈초리와 손가락질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걱정되고 두려웠는지,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온전한 사람의 아이로 자라게 해달라는 이유로, 제 품에서 떼어내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버렸다. 아마, 아기를 구해달라는 정령들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소정의 품에 안겨주고, 서화는 스스로의 운명을 향해 걸어갔겠지. 기생의 운명도, 신수의 처라는 운명도, 반인반수의 어미라는 운명마저도 거부한, 서화가 걸어들어간 운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무튼, 그렇게,
기괴하고 감히 사람의 접근을 허하지 않는 험한 산세,
신수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끝이 났다.
그리고
1> 이 드라마의 절대악 조관웅. 어느 따스한 봄날, 담장 너머에서 환히 웃고있던 친구의 딸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이가 탐나서 친구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이고, 그 친구의 딸을 관기로 만드는 악랄한 인간. 아마, 서화가 탐난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윤참판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인 덕에 승진까지 한 걸 보면.. 겸사겸사였던 것 같다. 그의 악랄함에 대한 변명은 필요가 없어보이지만, 어쩐지 출신의 한계로 인한 자격지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떤 악랄한 짓을 해도 괜찮다는 듯한? 아무튼, 조관웅의 악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듯!
2> 고지식하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담평준. 월령과 서화와 마주쳤던 그때, 딱 한번 모르는 척 눈감을 줄 아는 융통성을 가졌더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결국, 담평준에 의해 월령의 정체가 밝혀졌고, 도력이 강한 그의 검에 의해 월령은 사라졌다. (그때 월령은 내상 - 외상은 도깨비불로 치유 - + 멘붕으로 더 쉽게 당한 듯;) 그리고, 그 곳, 달빛정원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없이 살아왔던 담평준의 인생에 큰 무언가를 던져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자신의 기준에서 옳다고 믿는 그 판단이라는 것에 대한, 그가 삶을 살아가는 커다란 잣대, 그 가치관이 휘청이지 않았을까, 등등.. 그러고보니, 담여울이 담평준의 딸이니.. 최강치와 담여울의 사랑도 그리 순탄치는 않을 듯 싶다. 소정의 예언도 있고;
3> 부모 대의 이야기가 뻔한 듯 싶었지만, 그래서 더 재밌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대했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그 기대 이상에는, 전설을 전설로 만들어주는 시비한 느낌이 가득한 연출의 몫이 가장 컸던 듯. 남은 22회차 내도록 아마 이런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뭐.. 어느정도만 가도 재밌게 볼 것도 같다.
4> 방송 전, 우연히 본 캐릭시놉에서 구월령 캐릭터가 꽤나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 매력적이었다. 큰 부상을 입고 사라진 후, 숲의 도움으로 긴 수면기에 접어든 구월령. 잠이 깬 후의 그는 아마, 천년악귀가 되어있겠지. 천년악귀가 된 후의 월령의 캐릭터도 기대가 된다. 아무튼, 월령 때문에 아련아련ㅠㅠ
5> 서화의 선택과 행동이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다. 보는내내, 두려움과 공포와 분노 그리고 사랑, 월령을 향한 복잡한 애증의 감정 속에서 혼란스럽고 힘겹고.. 또 아플, 서화의 감정이 어느정도 이해해가며 봤으니까. 다만, 월령이 보여준 서화를 향한 사랑이 너무 순수하게 이뻐서, 그렇기에 고작 열흘을 남겨두고 모든 걸 잃게된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배신을 당했음에도 너무나 사랑하기에 차마 그녀를 찌를 수 없어 천년악귀의 길을 가게된 그가 너무 아파서, 서화를 이해하먼서도 간간히 튀어나오는 욕은 막지 못했다. (...) 어쨌든, 서화가 짊어진 그 운명이란 것은.. 어린 서화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가혹했을 것이다. 아기를 두고 떠난 서화는 어떤 인생을 살아갔을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게 될까..?
6> 슬프고도 아련한 월령과 서화의 전설처럼, 강치가 그려나갈 전설또한 재미있길 바라는 중이다. 아무튼, 훗날 월령과 서화가 강치의 존재를 어떻게 깨닫게 될지 궁금했는데, 소정을 통해 알게될 듯 싶었다. 소정은 뒤에서 강치를 지켜보며 보살피는 듯 했으니까. 사실, 그냥 소정이 데려다 키워도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랬다면 서화의 바람 -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온전한 사람의 아이로 크게 해달라는 - 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키우는 것 자체가 홀로 살아가는 소정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을테고.
7> 이상하게 서화의 동생에겐 그닥 감정이입이라거나 정이 안갔는데, 담이는 안쓰러웠다. 그 아이의 인생이 너무 가여웠다고 해야할까...(ㅠ) 그저, 몽둥이 찜질 몇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선택은...ㅠㅠ 그리고, 도련님(서화동생)의 죽음은, 그럼에도 꿋꿋히 살아가던 그녀가 더이상 삶을 살아갈 의지조차 앗아갔다.. 아마, 담이는 그 도련님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지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드라마는, 순간순간의 여백 속에 상상력을 덧칠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듯.
8> 2부작으로 생각하고 부담없이 봐도 괜찮을 드라마. 오랜만에 아련한 감정을 꽤 오래 품고 있다. (라고 해봤자 현재 이틀째;) 스포를 자근자근 밟고 봤음에도 이렇게나 좋고, 또 이마만큼이나 아련한 감정이 오래도록 남을 줄이야.. 아, OST도 좋다. 에덴. 사극에 영어로 된 노래라니, 스러운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몽환적인 느낌이 구월령이 사는 달빛정원과 참 잘 어울린다고 해야할까? 그 노래만 들어도 아련아련... 구월령ㅠㅠ 아, 그리고, 유동근씨의 나레이션도 좋았다. 오래된 전설을 들려주는 느낌, 그리고, 이 드라마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도 한몫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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