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오빠가 가고 니가 풍경을 잃어버려도 겨울 바람이 불면 얘들은 언제나 여기서 이렇게 소리를 낼거야
1>
처음, 영이의 뇌종양 사실을 알게된 수는 아마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영이의 뇌종양이 재발한다면? 일이 좀 더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이제 함께할 시간이 한달 조금 남은 지금, 통증을 호소하는 영이가 어쩌면 뇌종양이 재발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영이와 함께하는 순간의 수는, 78억의 목숨값은 완전히 잊은 채, 어떻게하면 죽고싶어하는 이 아이가, 살고싶어질까, 라는 생각으로 그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듯 했으니 말이지.
살아있으니까 살고싶은 그에게 자꾸만 너따위가 왜 살고싶냐고 묻던 세상과 달리, 영이는 그러니까 너도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영이의 위로는 아물지 않는 수의 깊은 상처에 이제 겨우 딱지를 생기게 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수는 늘 죽고싶어하는 그녀에게 자신이 떠난 후에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고싶어 하는 듯 했다. 더이상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잃은 그녀에게, 의지를 심어주려고 하는 듯 했다.
산 정상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나중에 오빠가 가고 니가 풍경을 잃어버려도 겨울 바람이 불면 얘들은 언제나 여기서 이런 소리를 낼 것이라며, 영이 너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 니가 지금 이걸 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하지만 이것보다 내가 너에게 진짜 보여주고 싶은 건 영이 바로 너라고. 니가 그 어떤 것보다 아주 아주 예쁘고 멋진 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그녀가, 잃어버린, 지워버린, 그렇게 잊혀져간 삶의 의지를 찾길 바라는 듯 했달까?
그리고, 영이의 생일선물. 수의 진짜 생일은 아니었지만, 그 것은 수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아닐까, 싶었다. 삶의 의미 없이 그저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그에게, 너의 탄생을 축복한다는, 그 자체가, 넌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위로, 처럼 보였으니까.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오빠를 위한 영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수에게는 애초에 없었던 삶의 의미가 되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온 마음을 다해, 위험을 무릅쓰고 (영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위험이었다) 무언가를 준비해준다는 것. 그 마음을 받아본 것은 얼마만일까? 마음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은 적이 그에게 있었을까?
수는 영이에게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풍경을 선물했고, 영이는 수에게 방울이 달린 팔지를 선물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흔적을 남겼다.
나도 이 책의 남자 주인공처럼 기억실조증에 걸리면 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설까? 아니. 난 별롤 거 같다. 찾고 싶은 기억이 없거든. 아니다. 너에 대한 기억은 찾고 싶겠다. 넌 어때?
2>
수에게 영이는 여자다. 처음부터 여자였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에게 영이는 여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이를 향한 마음이 무의식 중에 넘쳐흐르고 겨우 억제하고 있었다. (...짜식;) 그렇게, 영이에게 더는 다가가지 말라는, 위험한 놀이가 위험 수위를 넘고있다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계 경보를 분명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기억실조증에 걸려도 찾고싶은 기억이 없기에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싶지 않다던 그가, 그래도 찾고싶은 유일한 기억이 영이였으니까.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처음으로 이 위험한 놀이에 영이보다 자신이 더 처절히 다치리란 확신이 들었음에도 .. 그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놀이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섯살에 시력을 잃고 왕비서에 의해 집구석에 가만히 틀어박혀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붙박이 가구처럼 쳐박혀 살아야 했던, 그렇게 집과 복지관 그리고 아주 가끔 중태의 카페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렇게 세상에 대한 면역력 없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여섯살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만을 붙들고 살아왔던 영이는, 수의 앞에서 영이는 여섯살 어린 소녀다. 그래서 영이에게 수는 여덟살 오빠다. 그래서 영이는 수 앞에서 스스럼 없었다. 아니, 어떻게, 왜, 어쩜, 저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은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의 단조롭지만 서늘한, 사방이 가로막혀 세상과 차단된 무균실에서 살아왔던, 그렇게 과거의 기억만을 끌어안고 살아온 영이의 삶을 조금도 들여다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내 삶의 잣대로 재고 판단한 당신의 오만이고 편견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조금.
그리고, 난 어쩐지, 영이가 진실을 눈치채고 조금씩 그를 경계하고 지켜보는 것으로, 그 꽉 막힌 무균실에서 벗어나 조금씩 세상의 먼지에 익숙해지며 6살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는건 아닐까, 그렇게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약의 진실을 알고, 무철을 찾아가고, 그렇게 조금씩 수의 정체를 의심할 계기가 될 9회가 굉장히 중요할 것만 같았다.
내가 사랑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처음으로 이 위험한 놀이에 영이, 그 아이보다 내가 더 처절히 다치리란 확신이 들었다.
+ 그리고 +
1> 영이의 그 두통은 정말 뇌종양의 재발일까? 사실, 난 뇌종양을 믿지 않았었는데 진짜였다.(...) 아무튼, 영이는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자 수와 공동으로 소유한 약을 먹으려고 했지만.. 예고를 보니 실패한 듯. 사실, 이거 먹고 죽으면.. 이 드라마 8부작이 될테니까. 아니, 그렇게되면 이제 영이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수사극이 되려나? (..는 그냥 하는 헛소리;)
아무튼, 약의 정체는 밝혀질 듯 싶고.. 영이는 크게 뿔이 난 듯 싶은데.. 이쯤에서 영이는 그 약이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여섯살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그저 수의 되도 않는 말을 꿋꿋하게 믿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 끝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영이가 뿔난 것은, 자신에게 그런 약을 건넨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고싶다던 그가 그런 약을 지녔다는 것은 아닐까, 등등. 뭐, 9회 보면 밝혀지려니;
2> 수 만큼이나 배우의 삶을 사랑한다는 소라는 이대로 끝이려나? 그런데, 수는 소라한테 왜 78억을 내놓으라는 말을 안하는걸까? 흠.. 아무튼, 김사장 또한 수에게 그 돈을 받기보다, 어떻게든 수를 세상에서 없애고 싶어하는 듯 했다. 아마, 그 78억을 수가 정말 꿀꺽했다기 보다 그게 진소라의 함정이었다는 걸 알고있는 건 아닐까? 진소라의 마음을 완전히 잡기위해 78억을 핑계로 수를 없애려는 건 아닐까, 등등. 수 또한 그 것을 알고있는 건 아닐까, 뭐 그런저런 생각들.
3> 왕비서와 약혼자씨, 장변호사와 중태, 각자의 위치에서 서서히 오수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수는 오수대로 왕비서와 약혼자씨의 약점을 파헤치고 있었고. 그런데, 왕비서는 약혼자씨에게 오랜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저, 그가 가진 야망의 크기를 알기에 조종하기 쉽다고 여겼고 그래서 영이의 곁에 두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달까? 만약, 그렇다면.. 약혼자씨에게 오랜 연인이 있고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음을 알게된다면 왕비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오수의 상처에 대한 의심이 깊어져 그에 대해 파헤치던 중태로 인해 장변호사가 오수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이제, 수의 실체를 알게된 장변호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 그러고보니 장변호사가 어쩌면 수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지도 모른다는 건 영 틀린 답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도 장변호사의 선택은 어쩐지, 영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이를 위한 선택이 될 것 같다. 그래야, 남은 극이 전개될 것 같고.
4> 수는 어떻게든 영이를 살게 하고싶어하는 듯 싶었다. 그래서 그를 무시하는 무철의 누나까지 찾아가고,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무철까지 찾아가며, 영이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려는 듯 했다. 그런데, 수가 그러면 그럴 수록, 어쩐지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영이의 일 앞에서는 그에게 78억의 목숨값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니까. 어쩐지, 수가 삶의 의미를 찾으면 찾아갈 수록... 그는 삶의 끝에 다다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무철이는 그런 수에게서 무엇을 보게될까?
무철이는, 삶의 끝에 서 있었다. 그 삶의 끝에서, 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시험일까. 무철이는 정말로 수를 죽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수에게서 어떤 답을 얻고싶어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수가 찾아가는 삶의 의미가 어쩐지 무철이 원하는 답이 되어줄 것만 같다는 생각도, 조금은 드는 중이다. 어쨌든, 무철이 이 남자.. 왜 이렇게 멋지고 아프냐..(ㅠ)
5> 7회 산장의 위로씬과 8회 산정상의 풍경씬은 정말 최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가 없는 서로에게 삶의 이유를 던져주며 위로를 해주는 그들의 모습과 마음이, 내 마음에 맺혔다. 그렇게 사무쳤다. 일단, 나에게 있어서 이 드라마 최고의 장면이다. 앞으로 남은 절반에서 이 장면들을 뛰어넘을 씬들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왔으면 좋겠다. 아.. 정말, 참 많이 위로를 받는다. 수를 향한 영이의 위로에서, 영이를 향한 수의 위로에서.
6> 영이 또한 수의 실체에서 서서히 접근을 해가려는 듯 한데.. 지금까지가 영이를 향한 수의 심리를 중심으로 그려졌다면, 이제 과거에서 벗어난 영이가 수의 실체에 접근해가며 온 감각으로 그를 바라보며 변화할 그 심리가 어떻게 그려질지도 기대된다.
7> 리뷰를 쓰기 전까지는, 아..역시 너무 좋았는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 꾸물꾸물, 이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주절주절 정신이 없다. 뭐 빼먹은 거 없나 생각해보는데.. 기억이 안나서 여기까지. 흠, 오늘 마음이 참 무겁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판단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거 생각하느라 늦장 부렸다는 핑계 + ? ...그나저나, 오늘 또 '일말의 순정' 못봤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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