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9회) 무너진 믿음 사이로 깊어진 불신

도희(dh) 2013. 3. 13. 17:59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던 영이는, 오빠 수와 공동소유한 그 약 - 죽고싶을 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맘이 아주 편해지는 -을 찾았다. 그렇게, 수의 허락없이 그 약을 먹으려는 순간 등장한 수는, 약의 내용물을 뺀 빈 캡슐만 영이에게 넘기며 위험한 순간을 넘기는 듯 했다. 했지만, 시각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들이 예민한 영이는, 수가 캡슐에서 약의 내용물을 빼내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그렇게나 믿었던 오빠라는 이 남자 또한 내 눈이 안보이는 것을 이용해 나를 속이려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테고, 그렇게 너무나 견고해서 바늘 구멍하나 없을 것만 같았던 수를 향한 영이의 믿음이 무너졌다. 수의 진심은 더이상 영이의 마음에 닿지 않는 듯 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닿는 마음에 혼란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고.

한번 무너진 믿음 사이로 새어들어오기 시작한 불신은 순식간에 불어나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별스럽지 않게 넘긴 수와의 대화, 왕비서와 수의 관계, 왕비서를 통해 들은 내가 몰랐던 그날의 일, 그리고, 약의 성분.  이 모든 것은 수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와 분노 그리고 슬픔이 되어 영이의 마음을 덮쳤다. 그래도, 마지막 하나, 그가 나의 진짜 오빠일 것이라는, 그렇게 추억은 조작할 수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왕비서의 제안을 거절한 영이는 무철을 통해 또다른 수에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수는 어제까지 그렇게나 따뜻하고 맑은 웃음을 짓던 아이가 갑작스레 처음 남매로 마주한 그 때처럼, 아니 그 때 보다 더 서늘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대하는 영이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진심을 전해도 왜곡하고 거부하는 영이가 괘씸하고 서운하고 속상하지만, 동생이기에 아니 정확히는 사랑하기에, 그녀의 모든 행동을 그저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듯, 그렇게 당해주며 걱정하고 신경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1> 서로를 통한 변화. 수의 충고로 인해 영이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영이의 위로를 통해 수는 희주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가둬뒀던 과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는 끝없는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무철과 마주할 수 있었고, 영이는 낯선 거리에서 낯선 이의 도움으로 목적지로 향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2> 수와 공동소유한 약이 동물들 안락사 약이라는 것을 알게된 영이. 그리고 그 순간, 영이를 찾아온 수. 뭐랄까, 그 순간 만큼은 영이의 입장이 되어버려서 수의 등장이 공포스러웠다. 결국, 나를 죽이지 못했으나, 한순간이나마 나를 죽일까, 라며 망설였던 사람. 그렇게, 내 손에 그 약을 쥐어준 사람, 에 대한 공포. 지금까지의 다정함, 지금 이 순간의 다정함을 더이상 믿을 수 없는, 불신. 보이지 않는 세상 뿐만 아니라 마음 속까지 암흑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3>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조금씩 각자가 얻고자하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진실을 증명할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이득을 위해 진실을 증명하는 순간 누군가는 파멸하지 않을까. 난, 어쩐지 모두가 무너지고 파멸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크던 작던. 그리고, 그 첫번째가 약혼자씨가 아닐런지. 진성과 희주가 잡은 증거. 그리고 약혼자씨가 무리해서 밀어붙힌 어떤 일이 장변호사와 왕비서의 귀에 들어가게 되며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 등등.

4> 아이같이 순수한 영이도 물론 좋았지만, 차갑게 날이 선 얼음공주같은 영이가 왠지 더 좋았다. 수와 영이가 다정할 때는 그 관계 속에서 풍경소리다 들리는 듯 한데, 수와 영이가 날선 대립을 할 때는 파멸음이 들리는 듯 하달까? 9회를 보는 내내, 수의 입장에서는 속상하고 안타깝고, 영이의 입장에서는 화나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좀 오락가락하며 본 것도 없잖아 있고.

5> 후반부, 영이의 위기에 잠시 이성을 잃은 수. 순간, 너무 멋져서 흠칫, 거렸다. 그리고, 영이. 왕비서의 비호 아래 심리적으로는 지옥이었을테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곱디 곱게 살아왔기에,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제대로 부딪힌 첫번째 경험, 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순간, 또 한번 정확히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나를 속인 수에 대한 그 공포와 두려움과 분노와 슬픔, 그 모든 감정이 그 순간 나타난 수에게 향한, 영이의 울음섞인 감정의 폭발. 그런 영이를 바라보는 수가, 그렇게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는 영이가, 참 안타깝고 아프고 뭐, 그랬다.

6> 이 드라마의 패턴이 있다면, 행복한 순간 뒤에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쌩뚱맞아 보였던 진성과 희선의 행복한 한때가 괜히 불안해지고 있다. 이미, 진성에게 따뜻한 봄날이 쉽게 찾아오지는 않으리란 떡밥은 여기저기 깔려있는 상황인지라.. 이제 이야기의 절반이 지났고, 좀 더 극적인 상황들을 위해.. 진성이에게도 힘든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런지.

7> 진소라는 역시, 미친냔이었던지라 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저 구역에는 미친냔들이 왜 저리 많을까, 등등의 생각들은 일단 접어두고. 진소라가 옥죄는 것도 모자라, 진실을 파헤치려는 왕비서와 장변호사, 수를 불신하는 영이. 보다가, 수가 그냥 이대로 다 내려놓고 떠나버렸음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얼른 78억 챙겨서 튀어! 라고 말하고 싶었달까? 그런데, 온 마음이 영이로 가득찬 수는, 78억보다, 내 목숨보다, 영이에게 빛을 찾아주고, 영이의 삶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 더 중요해보였다. 영이가, 그런 수의 진심을 왜곡할지라도.

8> 보는 내내 긴장되던 9회. 이런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지난 주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휴. 불신이 쌓여버린 수와 영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될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증명하고자 증거를 찾는 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등등.. 꽤 재밌다. 점점 더 재밌어지는 중. 이렇게 스토리가 아닌 인물들의 감정에 촛점을 맞춰 따라가는 드라마는 매우 오랜 만은 듯 싶다. 그런데, BGM이 초반에 비해서 점점 별로가 되어가는 건 왠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