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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페셜 42화 82년생 지훈이) 오늘도 달린다

도희(dh) 2011. 10. 28. 17:03

~ 드라마 스페셜 : 82년생 지훈이 ~
<< 오늘도 달린다 >>



0. 작품정보

- 제목 : 82년생 지훈이
- 극본 : 서유선
- 연출 : 송현욱
- 출연 : 허정민, 최윤소, 김승욱, 최성원 外
- 방송 : 2011년 10월 23일





1. 지훈이

나 김지훈. 올해 나이 서른.
꿈 속의 나 김지훈처럼 엄청난 부를 꿈꾸거나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매년 휴가계획으로 일년이 행복하고 다가오는 퇴근시간으로 하루가 행복하고
서울 수도권에 마이홈 마이카 단란한 네식구 꾸려사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나는 그 꿈을 이루기위해 오늘도 달린다.


수도권의 괜찮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2년 백수노릇 끝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훈이는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지훈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세 명의 비정규직 입사동기 중 한명만 정규직 전환을 해주겠노라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동료들과 경쟁하며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팔랑귀에 주변머리 없는 지훈이에겐 쉽지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결심한 여자친구는 그녀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지훈이의 애간장을 태우며 안그래도 힘든 하루를 더 고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2. 지훈이..
 
회장님, 하나만 여쭤봐도 되요?
회장님도 젊었을 때 이랬어요? 죽어라 뛰는데... 계속 그 자리였어요?
얼마나 더 아프고 얼마나 더 잃어버려야 .. 이제 저도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뭐 하나 되지않는, 인생 서른. 살아올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 무엇하나 이루지 못한 채 무언가를 이루기위해 달리는 후회와 좌절 그리고 시련만 가득한 인생 서른의 어른 그러나 여전히 아이,

지훈이는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달렸지만 언제나 제자리였다. 힘겹게 장애물 하나를 넘어 겨우 한걸음 내딛으면 또 다른 장애물이 그의 발목을 잡으며,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500억 자산가인 고객의 입맛을 맞추기는 쉽지않았고, 돈 오천만원이 없어서 좋은 조건의 집을 살 수 없었고, 허세와 투정이 심한 여자친구는 그의 능력을 핑계로 프러포즈를 보류하게되며, 지훈이는 이 모든 화살을 능력없는 아버지에게 던지며 화풀이를 해버렸다. 

언제나 고객 앞에서만은 친절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훈이는, 집에서는 그런 친절함과 성실함이 아닌 투정심하고 짜증부리며 틱틱거리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서 근래 종종 나오는 광고가 떠올랐고, 내가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존재 그리고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가족. 가족이기에 어떤 모습의 나라도 이해해주리라 믿기에 점점 소통이 단절되어가는, 그렇게 상처를 줘도 가족이니까 이해해줄 것이라는, 그런 모습. 가족은 늘 가장 가깝기에 가장 먼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젠가 다친 팔을 방치했다가 상태가 심각해져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게 된 어느 날, 모든 일이 한꺼번에 지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치료를 하려는 순간 걸려온 고객의 전화에 지훈은 치료를 포기하고 달려나갔고, 전날 모진말로 가슴에 대못을 박은 아버지는 위암재발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그리고, 전날 싸운 여자친구는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또다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훈은, 일과 사랑과 가족이라는 세개의 갈림길 앞에서 길을 잃었다. 





3. 지훈이!!!

24분 지하철을 타지못하면 7분 지각이다.
괜찮다. 7분 늦을지라도 30년을 내내 뛰어왔으니까.

아버지의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는 533개.
하지만, 장례식에 와준 사람은 이 중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뭐, 퇴직하셨으니까.

내 가족과 소통하는 일조차도 버거워하는 우리가 바다 건너 사람과 소통하길 바라는 이유,
그건 바로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간절한 속내가 아닐까.

이렇게 부대끼며 살다보니 인생은 안바뀌어도 하루는 바뀌고,
잊으면 잊혀지는대로 만나면 만나지는대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1982년생. 올해로 서른살. 나 김지훈.

스무살 땐 내가 날 잘 알았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서른. 인생의 또다른 시작, 어깨의 짐은 더욱 무겁고 발걸음은 신중해지는 나이.
힘든 일이 있었고 아픈 일이 있었고 괴로운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후회와 좌절과 시련으로 가득하지만,

지훈이는 오늘도 달린다.

지각을 핑계로 엄마의 걱정을 외면하던 지훈은 그 걱정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훈과 입사동기들을 살벌한 서바이벌로 내몬 회사는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와는 결국 헤어졌고 평소 그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던 회사 동료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훈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치열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훈은 살아간다. 늘 똑같은 오늘 속에서 다른 오늘을 찾아가며.

그렇게 82년생 지훈이는 살아간다.
그저 살다보니 살아진다, 라는 내가 정말 힘겨울 때마다 듣고 또 들으며 흥얼거리는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4. 그리고..

드라마라는 판타지가 있기에 현실을 고단함을 잊을 수 있고, 그렇기에 현실적이길 바라면서도 나는 온갖 우연이 남발하는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택의 길에서 결국 가족을 향해 달려가는 지훈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현실의 고단함을 담은 드라마가 드라마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그러나 역시,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지훈이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모를 희망을 봤다.

그리고, 멈춰서 내내 머뭇머뭇 거리는 나도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