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왕녀 자명고 34회 - 알고있으나, 전혀 알지 못하는 척하는.

도희(dh) 2009. 7. 11. 00:33

드라마 왕녀 자명고 34회.

조금 늦게, 왕녀 자명고를 보고나서 감상을 쓰고 있습니다.
뭐랄까...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어서인지, 한 껏 높아진 기대치를 다 내려놓고 봐서인지, 꽤나 재밌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다음 주엔 아주 오랫만에 '왕녀 자명고'를 닥본사 하게될지도...ㅎㅎ

자명고 34회... 라희와 모양혜 때문에 눈물짓게 된 회였습니다.
항상 말하지만, 전 라희의 시점에서, 그녀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를 보고있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그래도, 처음인지 오랫만인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자명이 참 가엾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기도 했던 34회 였습니다. 손에 쥐고싶으나 쥘 수 없어 그 사랑을 흩날려 보내는 그 심정이... 어쩐지 느껴졌달까...?
(약간 너그러워 져버린 듯..ㅡ.ㅡ;)


왕녀 자명고 34회는,
호동이 정식으로 낙랑국의 백성이 되고 왕자가 되어, 라희의 공식적인 약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명고 프로젝트가 서서히 가동되기 시작하며, 끝을 향해 달려가더군요.










1. 행복해요. 내가 살아온 그 어떤 날보다. (라희)

내 어머니가 말이다, 죽이고 싶을만큼 미운 인간이 없는데, 어찌 죽을만큼 사랑을 할까... 하셨는데,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구나. 널 내 손으로 죽이고 싶게 만들지 마라.
원후마마를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으니.

어머니가, 싫어질 것 같습니다. 원후마마는 위선하는 분입니다. (라희)


라희는 언제부터 자명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라희는 바보가 아니고, 백치가 아니기에, 아마 꽤나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싶더군요.
아니... 자명이 신녀가 되어 나타난 후로, 낙랑국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태녀인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배제하고서라도 낙랑국을 휘젓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서히 감을 잡았을지도.

라희에게 자명은 '위협'이 되어 다가왔을 듯 합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것. 나는 딱히 그리 여기지는 않지만... 어쩐지 이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것. 라희가 자명의 것을 빼앗았다, 라는 그 것을... 라희라고 떠올리지 못했을까.

라희가 자명을 미워하는 건, 호동과 모하소 엄마에 대한 소유욕 및 사랑이 깊이 관여되었을 듯 느껴지지만...
라희가 자명을 인정할 수 없는 건,
자신이 자명을 인정하는 순간... 자명은 원후의 딸이고, 자신은 차후의 딸이기에... 정통성이라고 해야하나? 그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듯 느껴졌거든요. 그 정통성이라는 것... 왕될 자들에겐, 꽤나 중요한 것으로 작용되는 듯 하더군요.

아무도 모르고, 몇몇 사람들만 아는 진실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않은 그 마음,
인정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되어버리기에 인정할 수 없는 그 마음. 어쩐지 알 듯하긴 한데... 
이 부분을 표현하기가 참 난해해요. 아... 지식의 부족. 독서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며!!!

자명을 향한, 모하소를 향한, 최리를 향한 라희의 가시돋힌 말들 속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잃어버리는 듯한, 흔들리는 입지에 대한 그 불안감이 느껴졌다, 라고 말할 수 밖에.

그리고 라희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아도...자신의 위치가 자꾸만 흔들리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일에 태녀인 자신보다, 신녀의 입김이 우선시 된다는 것이 내내 화가나있는 상태에서, 호동의 생사와 자신의 혼인문제를 신녀의 입김으로 결정지으려는 모습에서 그 분노가 폭팔한 것은 아닐런지.

그렇게 라희는, 자명으로 인해서 하나 둘 잃어가는 것들을, 호동을 통해서 채워가고 싶어하는 듯 보였습니다.

언젠가, 라희는 사랑에 참 목말라하는 아이, 라는 듯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어쩐지... 라희는 손에 쥔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면서... 호동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듯 했습니다.
호동의 사랑보다 아버지와 낙랑국 백성들의 사랑이 더 절실하다, 말하던 라희는...
이제 호동의 사랑을 더더욱 절실하게 바라고, 그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고 싶어하는 듯 하니 말이죠.

최리를 향해, 호동을 죽인다면 태녀자리따위 버리겠노라던, 자신도 죽겠노라던 라희를 보며...
꾹꾹 눌러담고, 참아가며, 자명의 존재로 인해서 흔들리는 자신의 정통성, 점점 좁아져가는 그 입지를 모르는 척 해오던 라희는... 호동의 존재가 어떤 시발점이 되어, 자명에 대한 분노를 뿜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버렸달까?
만약, 호동의 망명사건이 없었다면, 라희는 왕홀이든 누구든, 낙랑국에 도움이 되는 그 누군가와 혼인을 하고, 비록 그림자같은 여왕이라고 스스로 여길지라도, 모른 척, 평안한 척, 그리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라희에게 호동은, 온전히 모조리 자신의 것이었던 아버지 최리와 엄마 모하소와 낙랑국 백성들의 사랑이 둘로 나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 그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라희의 사랑만큼은, 늘 진실하다, 라고 여겼던 저였지만...
지금 이 순간 바라본 라희의 사랑은, 마음에서 부터 서서히 말라가는 사랑을 다시금 채우고싶은, 온전히 자신만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는 듯한 느낌이 슬쩍 들어버렸습니다. 그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라희도, 준영이 관계연속중독증에 걸린 것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있다는 그 중독증이라는 것...
사랑에 관한 중독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에 사랑을 채우고 또 채워 그 사랑이 메마르지 않길 바라는 라희는, 하나의 사랑이 마음에서 메말라감을 느끼면, 또 다른 사랑으로 마음을 채워나가고자하는... 그러나, 호동은 라희가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었고, 호동의 사랑마저 메말라버리면 라희는 살아갈 수 없기에, 호동의 사랑을 얻고자, 그 사랑을 잃지않고자 그리 악을 쓰는 것은 아닐런지.


이번 왕녀 자명고 34회의 라희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결론은... 라희가 참 짠하게 다가왔다는 것과, 보는내내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다 풀어내지 못하는 비루한 글솜씨라뉘..;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금 필히 느끼고 있습니다~;








2. 왕자를 살리는 것은... 제 마음 어딘가에 아직도 끊지못한 집착 때문입니까... (자명)

왕자를 살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까... 태녀의 뜻입니까...
제 마음 어딘가에 아직도 끊지못한 집착 때문입니까...

미련을 다 떨쳐냈는 줄 알았는데, 마음이 이렇게 아픈 걸 보니... 다 떨쳐내진 못했나 봅니다.
이 신녀... 공부가 너무 부족합니다. (자명)

자명은 정말, 속세의 일들을 모두 털어내어 버렸을까...?
혹시, 호동에 대한 마음을 다 떨쳐내지 못한 것처럼, 왕자실에 대한 원망도 다 떨쳐내지 못한 건 아닐까...?

자명을 향한 라희의 그 가시돋힌 말들이, 자명과 모하소에겐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혔을지도 모르겠으나...
자명에게 정말 그런 마음이 한치도 없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전 자명에게서 순간순간, 라희를 향한 경계심이 느껴지곤 하거든요.
저만 그런 걸지도...ㅎㅎ

어쩌면, 자명은 가만히 자신의 가야할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낙랑을 지키고자 걸어가는 그 길은, 라희가 걱정하는 그 것, 낙랑국의 실질적인 태녀이자 숨겨진 여왕이 되는 길이 되고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죠. 원해서 가는 길이 아닌, 가다보니 그 길이었다는 듯이.
바다 위의 배는 가만히 있으나, 바람이 그 길을 잡아가는 것처럼...
최리는 가만히 있었으나, 그 주변에서 불어대는 바람으로 어느순간 왕이 되어버린 것처럼.

전... 라희의 가시돋힌 그 말이, 자명에겐 어쩐지 억울할지도 모르고, 모하소에겐 당치도 않은 오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그런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자명의 뜻을 받드는 이들은, 그저 자명이 라희를 도와 자명을 구해줄 자, 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라희가 아닌 자명을 주인으로 모시는 듯 했으니 말이죠.
최리또한 나라가 위험한 순간, 태녀 라희가 아닌 한낱 신녀인 자명을 믿을 듯 하고.

자명은, 이 것도 운명이라 말하려나?

그래, 여전히 자명이 걸어가는 그 운명론적인 그 길을 나는 여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 치자.
그저 보이는대로 ... 자명은 고구려와의 전쟁을 막고자하는, 그렇게해서 낙랑국의 멸망을 막고자하며, 자신 앞에 펼쳐진 노란 길을 그저 걷고있다고 치자. 비극적 운명을 벗어나려 할수록 더더욱 발목을 옭아메는 그 것, 그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치고 생각해도, 자명고의 존재의 등장은,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도 붕~ 뜨는 듯한 이 마음은, 35회를 보면 조금 가라앉겠죠?
(아직, 35회를 못봤음!!!)


처음인지, 기억하지 못할 아주 오랫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명이 짠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자명을 바라보는 저에게 내심 당황하기도 했고.

솔직히, 여전히 호동과 자명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그 사랑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쩐지 가슴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물론, 자명의 뿔피리 소리를 따라 그 장소로 와버린, 그렇게 그 두사람의 밀회를 목격하고 몰래 바라보는 라희가 더 걱정되어 어쩔 줄 몰라하긴 했으나.

사실은... 호동이, 자명을 향해 그리 차갑게, 그 것이 거짓일 지라도, 그리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줘서, 어쩐지 가슴아프게 다가오면서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고맙기까지했습니다. 그 둘을 바라보는, 라희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말이죠. 

라희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 존재를 눈치챘음에도 인정치않으려던 자명의 존재처럼,
호동의 사랑이 자명을 향해있음을 여자의 직감으로 알아버렸지만,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했습니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걸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데~ 예고를 보니, 그 마저도 곧 물거품이 될 듯 싶더군요.



자명과 호동의 그 절절한 사랑을,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마음으로는 크게 와닿지않는 저이지만...
그렇기에 많은 분들이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로 이해하면서 자주 잊기도 하고, 그렇게 사실은 그들의 사랑이 그리 절절하고 가슴아픈 적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언젠가 자명이 자신의 신분을 알고난 후의 그 상황은 참 그닥스러웠으나,
그 눈물이 가슴아팠던 그 어느 날 처럼...

그리움을 참지못하고 뿔피리를 불러 호동을 불러내고, 호동에게 마음에도 없는 가슴아픈 조언을 하며, 그렇게 돌아서는 호동을 바라보며, 손에 쥐고싶으나 쥘 수 없어서 그 사랑을 흩날려 보내야하는 그 마음이, 그 눈물이... 어쩐지 아프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저 녀석도 참 짠하다, 싶었달까?

자명의 캐릭터는 가슴 한켠에 내내 아쉬움으로 남고있습니다.
조금만 더 개연성이 있고, 탄탄했다면, 공들이 시간이 있었다면...
라희 못지않게 아프게 남을 아이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전혀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 문득 떠오른 건데, 라희와 자명의 관계는.. [빛과 그림자]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네요.

* 이 두 아이의 관계가, 옆집에 사는 덕만과 천명처럼 '공공의 적'을 두고 만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래도 핏줄의 이끌림에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뻔한 관계보다... 자신의 이익과 입지를 먼저 생각하고 경계하는 그 관계도 나쁘진 않아요. 어쨌든, 이 두아이는 옆집의 덕만천명이 처럼 쌍둥이가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생모'로 인해서 서열이 정해진 아이들이기도 하니까.

* 옆집 천명덕만 자매, 좋아라해요~ㅎㅎ 자체발광 오오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미실언니야도 좋고, 유신랑도 알천랑도 그닥 나쁘진 않지만...  역시나 전 [설원랑-보종]부자가 더 좋네요...ㅋㅋ (이상한데 잘 꽂혀서 말입죠~// 쌩뚱)







3. 내가 어떤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태추 넌 알지 못한다. (호동)

단군왕검이시여... 이 몸, 피를내어 맹세하나이다.
신 호동, 이 검으로 낙랑을 지키고 때가되면 고구려와 요동을 쳐, 아바마마 손에 바치겠나이다. (호동)

고구려의 왕을 고집하지 말고, 낙랑국 왕의 아버지가 되어주십시오.
좋은 남편, 좋은 아비로서, 왕자님께서 대무신 폐하께 받지 못했던 그 따뜻한 아버지의 정을
태녀마마와 함께낳은 아이에게 쏟으며, 위로받으며, 살아주십시요. (자명)


호동이 수염을 깎았습니다.
전, 나라를 바꾸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뜻에서 하는 의식, 이라고 여겼는데... 단군왕검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 그 말이 그 말인가...?

면도거품 뭍은 호동을 손수 닦아주는 왕자실과 그 것이 어쩐지 쑥쓰러운 듯 미소짓는 호동에게서, 진심어린 민망한 미소를 느껴버린 듯 했습니다. 저 녀석, 저런 거 처음 이겠지? 싶기도 했고.

호동은 낙랑국의 '왕자'의 신분으로, 태녀의 약혼자의 신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최리는, '자명고'의 존재로 인해서 그 냉철한 판단력이 살짝 흐려지고,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싶었습니다. 호동을 완전히 믿진 못하지만, 호동을 경계할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아닌가?)


자명은 호동이 고구려의 왕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설득하려 하더군요.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는 그 욕심을 버리고, 완전하게 낙랑국의 사람이 되어, 살아달라고.

호동은, 낙랑을 부수고 자명을 차지하고자, 무리한 수를 두면서까지 낙랑국으로 망명을 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호동이 부수고자하는 낙랑국이 자명의 나라임을 알아버렸다면, 호동은 멈추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갖고자했던 목표물이지만, 자명이란 존재 덕에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
호동이 그저 '왕'이 되고자하는 이가 아니라, 고구려의 '왕'이 되고자하는 자이기에...
고구려의 '왕'의 자리보다, 고구려를 먼저 생각하는 타고난 고구려의 왕자이기에, 호동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전 호동의 죽음에 참 많은 의미를 넣어줬음 좋겠다, 싶습니다.
그저 자명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그 모든 걸 놓아버리는, 사랑에 눈먼 왕자가 아니라, 죽음은 고구려를 위한 선택이고, 사랑이 그 죽음의 수단이 되길 바란달까...?

자자... 1회를 일단 떠올려보며....
자명을 죽이면, 고구려의 왕이되는 길이 조금 더 쉽겠지만, 자신이 다시금 살아서 돌아간다면 고구려가 흔들릴 것이 뻔하고, 그렇기에 고구려가 평안하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랑또한 제 손으로 베지않는 길... 그런 죽음이길 바라고 있달까...?

고구려의 왕이 되고자했고, 고구려의 왕 이전에 고구려와 고구려의 백성을 위하는 왕자이기에...
고구려의 분란을 잠재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자살, 그 수단이 자명이고 사랑이길 바라는 건...
좀 무리일까...?

내가 지금까지 내내 바라본 호동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호동, 내가 생각하는 호동은... 그럴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내가 기존에 알고있던 죽음의 이유, 부모에 대한 효로 자결을 택할 녀석은 아닐게 뻔하니,
고구려의 분란을 잠재우기 위한 죽음을 선택해주길 바란달까...?

이제 마지막이 다가온다고,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호동의 죽음을 떠올리는 저입니다..ㅡ.ㅡ;


호동은, 낙랑에서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왕자로 지내면서, 무엇을 보고 배우고 얻게 될까?
아버지 무휼과 다른 최리에게서, 어머니 송매설수와 다른 모하소와 왕자실에게서...
그는 난생처음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건 아닐까...?

호동이, 그 따뜻함에 취해서, 고구려따위, 아버지와의 밀약따위, 연극따위 다 집어치우고...
그냥 그렇게, 거짓이 진실인양 그리 살아주길 바라는, 그런 말도안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늘상 느꼈지만, 호동의 의상에서 다시한번 느낀 것은... 낙랑의 의상은, 풍족한 나라라는 상징인지, 참 화려하더군요. 고구려의 의상이 심플하다면, 낙랑의 의상은 화려하달까...?

우리 호동왕자는, 고구려 패션이 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 1人으로서...
머리 올려묶고, 심플한 의상입고 말을 달려봅니다. ...;;;

앞가르마, 어쩐지 어색하고 촌시러운 듯 해서, 나홀로 속상하다고 해두죠... 뭐.







지난 날, 제가 가르치며 모셨던 호동왕자님은 이미 졸본서 자결하셨습니다.
고구려 사신 을두지, 낙랑국의 왕자님께 예를 올렸습니다. (을두지)


을두지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실망감...?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숨겨진 의미....?

을두지는 고구려에서 유일하게 호동이 왕이 되길 바란 자, 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호동이 왕이될 것을 믿어의심치 않으려는, 호동의 선택을 믿는 유일한 이라는 생각도 종종 들었고. 을두지에게 호동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왕이 되어주리라는 확신이 있는 듯, 그리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다른 이들과 달리, 호동을 보호해주고 지켜주고자 하는 듯 했고.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 (맞나? 그리 기억되는데...) 자신의 가르침과 뜻을 달리한,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어야하는 적국으로 망명가서 그 나라의 '왕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가르침을 져버린 호동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눈물마저 흘린 걸까...?

아니면, 호동이 자라온 그 환경, 어리디 어린 나이부터 겪어온 굴곡진 삶, 그 상처와 아픔을 잘 아는 을두지기에... 호동이 이젠 낙랑국의 왕자로서, 그 굴곡지고 험난한 삶에서 해방된 모습을 보며, 을두지의 그 눈물에선 호동의 선택에 대한 실망감과 안타까움과 더불어, 이왕 선택한 그 삶이 이젠 편안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들어있진않을까, 싶더군요.

우리 왕자님, 이제 마음만은 조금 덜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가르침을 져버린 제자에 대한 실망감 등등의 꽤나 복잡한 마음이 담긴 눈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님말구~;;;)


어쨌든, 알고있었으나... 호동을 위해서나, 무휼을 위해서나... 을두지가 죽지않아 참 다행입니다.







4. 믿지 못하시는데도 이렇게 잘 해주시니,
믿게되면 소자 얼마나 행복한 아들이 될까 궁금해서요. (호동)

왕자님은 모르시겠지만, 그대에게 절실한 건 고구려도 여인의 사랑도 아닌... 어머니의 품일 것입니다.
원후마마는 더없이 사랑이 깊으신 분이고, 차후께서도 자신의 진정한 아들이 되어준다면
그 누구보다 왕자님을 사랑해 줄 겁니다. (자명)


모하소에게 자명과 라희는 똑같은 아픔으로 새겨진 딸들인 듯 하더군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모하소에게 자명과 라희는 똑같이 아픈 손가락인 듯 했습니다.
그래서, 자명과 라희 중 그 누구도 버릴 수 없다, 라고 하더군요.

엄마의 마음은 그러한 듯 하더이다.
내 딸들이 사이좋게, 오순도순,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그리 다정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언니는 동생을 귀하게 여기고 따뜻하게 감싸주길 바라고, 동생은 언니를 잘 따르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여느 엄마라고 다를까...?
그리고, 모하소의 마음또한, 자신의 두 딸이 다정한 자매로 살아가길 바라는 듯 했습니다.

라희를 위해선, 똑같이 아픈 손가락으로, 같은 무게의 같은 아픔이, 모하소의 그 사랑이 자명에게만 온전히 향해있지 않음이 참 다행이지만, 자명을 바라보자면... 그녀는 또 얼마나 아플까...?
속세를 벗어던진 신녀의 신분이지만, 그리 애타게 찾아헤메이던 엄마의 사랑이 온전히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미 왕자실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라희와 나눠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아프게 다가올 듯 하더군요. 자명이 세상사 초월한 신녀라고 하더라도, 한 어미의 자식인 이상 그런 부분에 상처를 안입는 건 아니리라 생각되므로.

아니, 어쩌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않는 모하소의 그 사랑이, 두 딸에겐 더더욱 상처가 되어 돌아올 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엄마를 싫어하게 될 것 같다고, 엄마는 위선적이다, 라던 라희의 말이 마음에 걸려버린 모하소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않지만, 라희를 위해서 '호동'과 라희의 결혼을 '태모'로서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승마저 베어버린 호동을 믿고싶은 마음이 더 큰 듯했던 최리는, 그런 모하소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거기엔, 태녀의 자리에 있는 라희가 사랑에 눈이 멀어가는 것은 못마땅하나, 라희의 존재가 가져오는 그 무게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한 몫하겠죠.



그리고,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옛 말처럼... 호동이 내내 거슬리고 탐탁치않던 왕자실은, 세상 그 무엇하나 두렵지않으나, 유일하게 무서운 존재인 '라희'를 위해서 호동을 챙겨주게 되더군요.
호동의 옷을 지어주고, 호동의 얼굴에 뭍은 면도거품을 닦아주고, 그의 옷을 입펴주며...
라희를 향한 그의 마음이 진심이고, 라희을 울리지않길 바라는... 마음.

누구보다 호동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던 왕자실이었지만, 그렇기에 매설수와 밀약을 맺고 전쟁까지 불사한 왕자실이지만, 라희의 남편이 될, 남편이 된 호동에겐 그 누구보다 무한한 애정을 쏟을 듯 하더군요.

호동은, 졸지에... 너무나 넘치는 사랑을 줄 두 엄마를 갖게되었습니다.
자명의 말대로, 호동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엄마의 사랑이라면... 그래서, 낙랑국의 왕자로 살아가는 내내 과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게 될 호동은... 또 어떨까...?

호동의 배신에, 아마 호동에게 무한한 애정을 줄듯 한 두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자식의 눈물이 가슴아파, 자식의 모진 말이 비수가 되어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어쩐지 믿음이 가지않음에도 딸의 그 마음을 위해서 그 사랑을 맺어주는 모하소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 사랑을 얻겠노라 마음아프게 외치는, 어느새 훌쩍자란 딸의 그 사랑이, 제발 온전히 제 딸의 것이길 바라는 마음에 ... 그 상대에게 딸의 행복을 다짐받는 왕자실.

여전히 미심쩍어하면서 호동을 바라보는 모하소와 모든 걸 포기한 듯 딸의 행복만 바라는 듯한 왕자실.
두 엄마의 사랑이, 각기 다른 형태와 무게로, 라희와 호동을 감싸는 듯, 보였습니다.








5. 잊지않으려고 발버둥쳤건만, 잊게하는 것이 세월이 더구나. (모양혜)

세월이 지나면 다 잊어진다.
기억은 남겠지만, 마음은 해안의 자갈처럼 세월 속에 떨어져 나가고 닦이고 변하기 마련이다.
이 모양혜도 니 형님이자, 나의 남편인 왕굉 대장군을 그리 잊었다.
잊지않으려고 발버둥쳤건만, 잊게하는 것이 세월이 더구나. (모양혜)

나이때문도 아니고, 형수님이 빼어나게 아름다우신 분이 아니어서도 아닙니다.
제가 형수님을 여인으로 사랑할 수 없는 건, 제겐... 이 홀이에겐...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홀이, 살아있는 동안 그 어느 여인에게도 줄 수 없는 존경과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왕홀)


이 장면은, 옆진 덕만이네 이야기를 보다가 광고하는 시간에 짬내서 미리 본 장면이었습니다.
끝이 향해지니, 모양혜의 그 마음이 왕홀에게도 닿게 되더군요.

그 마음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모양혜와 그 마음을 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왕홀.
왕홀에게 모양혜는 어머니이기에 그 사랑을 받아딀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모양혜또한 그런 왕홀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순간의 몰입도가 꽤나 좋아버려서, 이 장면이 어쩐지 뜬금없고 쌩뚱스럽게 느껴진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왕홀이 라희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호동과 라희의 결혼발표 후에, 왜 왕홀을 달래주는 건가~ 싶기도 했고.
자명이 신녀가 되어 가질 수 없는 사랑이 되었기에 그 마음을 달래주려면, 2년 전에 했어야지~ 라고 혼자 궁시렁...ㅎㅎ // 급히 모양혜의 사랑을 마무리짓기 위한 단계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찌되었든, 개연성 따위 다 던져놓고...  
이 씬 자체는, 배우들의 연기때문인지, 모양혜에 대한 나의 애정이 넘쳐흘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몰입하며, 모양혜의 그 마음이, 그 슬픔과 아픔이 느껴져서 눈물까지 지으며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아닌 어미가 되어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마냥... 행복할까...? 글쎄...


* 수염 난 홀이, 아아~ 어쩐지 늙어보입니다.

* 내내 호동을 경계하는 홀이의 매의 눈빛.







6. 낙랑의 백성이 믿고, 고구려의 군사가 믿고, 그런 믿음이 신물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오. (호동)

내가 믿고 안믿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오.
낙랑의 백성이 믿고, 고구려의 군사가 믿고, 그런 믿음이 신물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오. (호동)

그리고, 자명고 프로젝트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이미 자명고는 다 만들어져있었고, 그 존재가 '소문'이 아닌 '실존'한다는 것을 알려야하니 말이죠.

고구려와의 전쟁을 막고자 만든 자명고.
라희도 호동도 무휼도, 자명고의 존재를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늘 전쟁의 위험에 사는 백성들과 군사들만이 믿을 뿐.

낙랑국 백성들에게 자명고는 자신들을 '전쟁'에서부터 지켜주는 고마운 신물이고, 고구려 군사들에게 자명고는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하는 '전쟁'에서의 두려움을 주는 두려운 존재일테니 말이죠.

낙랑국에겐 희망이고, 고구려에겐 절망이 되어, 사기를 떨어뜨릴 존재.
신물은 '믿음'이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호동의 말처럼, 자명고는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피하고자, 낙랑국을 지키고자 만든 자명고는...
무휼을 자극했고, 호동이 조금이라도 손쉽게 낙랑국을 칠 방안을 떠올리게 하는 듯 했습니다.

인간이란 어딘가 기댈 구석이 생기면, 긴장감을 풀고 마음을 놓아버리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저인지라.
신중하고 날카로운 지혜 및 책략 등등으로 영리하게 낙랑국을 다스리는 듯하던 최리는, 자명과 자명고의 등장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 어딘가 기댈 수 있는 곳을 만들어버렸고, 자명고만 있다면... 자명만 있다면... 조금은 안심이 되어버린 최리이기에, 자명고가 찢어지고 자명이 사라지는 순간, 그리 넋놓고 고구려에게 당해버릴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라희를 통해 낙랑을 얻고자했던 호동이, 조금 더 쉽게 라희를 이용하여 낙랑국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자명고가 있든없든, 낙랑국은 호동에게 고구려에게 홀랑 넘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긴하지만... 자명고의 존재가 그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싶거든요. (아님 말구~:)












* 아... 자명고 감상은 쓰는 것이 때론 너무 벅차곤 합니다. 마음이 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말이죠.

* 독서의 중요성을 느끼던 오늘, 이었습니다.

* 그래도, 드라마가 좋아서 그런지, 하고픈 말이 참 많은 드라마이기도 해요.

* 35회까지 보고 주루룩 올릴 생각이었는데, 희열님의 스케치북을 봐야하므로....;

* 최리대왕, 일일극 '다함께 차차차'에서 비밀을 쥔 존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ㅎㅎ
차차차는 뒷 이야기가 뻔히 예상이되는데, 전개가 더뎌서 참...;;; // 만짱 아님 절대 안볼 드라마..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