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6회 : 최종회) 몽환적 해피엔딩, 없잖은 아쉬움 속에서 산소만 행복하다면야..

도희(dh) 2013. 4. 4. 19:45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 그럼에도 함께한 시간 속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사랑, 이라는 감정. 애증으로 켜켜히 쌓여버린 감정을 뒤로한 채, 영은 수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비틀어진 애정으로 영이를 소유하려던, 왕비서 또한 떠나보냈다. 그렇게, 서툰 방법으로, 어긋난 방법으로, 그러나 진심을 다해 영을 자신처럼 사랑해왔던 (나쁘게 말하면 집착?) 그들을, 영이는 자신의 곁에서 밀어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마음을 다해 자신을 걱정해주지만.. 영이를 자신처럼 사랑하지는 않는 이들을 곁에 남긴 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발을 내딛어 홀로서기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6살 이후, 늘 죽음을 그려왔던 영에게, 처음으로 살아야할 이유가 되어준 수를 떠나보낸 영이는, 더이상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늘 죽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살아갔던 그녀는, 그가 곁에 없는 세상을 굳이 살아낼 자신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차근차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그 순간에도 어쩌면 그가 달려올지도 모르는 기대감으로, 극단적 선택에 대한 두려움 보단 그가 혹시나 방문을 열진 않을까, 기대하며, 마치 단 한번도 죽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수의 극적인 등장으로 영이의 선택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 이별이 끝이 아니라는 못다한 작별인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서로에게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를 줬다. 영이는 수술을 받을, 그 수술을 통해 살 수 있으리라는 의지, 더이상 죽어도 그만이라며 늘 살고싶었으나 죽음으로 나아가던 수는 다시금 살아야만 한다는 의지, 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 그 의지가, 희박한 가능성 속에서, 결국은 살아낼 수 밖에 없었던,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웃을 수 있는...

마지막 16회가 그리 좋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피엔딩을 위한 과정, 처럼 느껴졌으니까. 강약조절도 아쉬웠고. 그러면서도, 혹시나, 15회를 방송한 바로 다음 날, 16회를 봤다면 조금은 다른 느낌과 깊이를 느낄 수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들었지만, 15회 방송 후 무려 일주일 후에 마지막회를 봐버린 건 사실이니.. 어쩌랴;

..그랬지만,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6살, 엄마와 오빠가 떠나고 서서히 시력을 잃고 뇌종양이 걸린 후, 늘 죽음을 생각하며 끝없는 암흑 속에서 서늘한 날을 세우며 살아왔던 영이가, 그 서늘한 날을 치우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빛을 바라보며 더이상 죽음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늘 추웠던 수가 이젠 더이상 춥지않아도 된다는, 영이 곁에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것만으로, 상관없지 않은가, 싶었다. 그래서, 깊은 여운따위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기만한 결말은 아니라며 덤덤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더불어 15회까지 매 회마다 기가 빨리게 만들며 여운을 남겼던 것과 달리, 마지막회에서는 전혀 여운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고.


그리고

1> 매 회마다 기빨려가며 본 건 사실이지만, 11회 이후로 애정도가 많이 식은 것도 사실인 듯 싶다. 이래저래 미루다가 결국 리뷰를 안써버린 날 보면. 왜, 그런걸까.. 라는 생각은 크게 안했는데, 감정선을 따라가다 지켜버린 것도 있을테고, 더 몰입해버린 다른 무언가가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 마지막회가 조금 더 극적이었으면, 엔딩이 가슴벅차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영이와 수가 절절하게 삶을 갈구하게 만드는, 그런 극적임.. 그 끝에서 결국 살아남아서 그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면. 그저 대화에서 대화로 이어지며,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하고, 그렇게 행복하기 위한 해피엔딩이라, 조금의 꽁기함(?) 느껴졌던 것도 같고. 15회까진 못느꼈던, 대사가 너무 많아... 랄까? 여백의 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등등의 생각도 들었다. (왕비서가 영이에게 사람은 혼자살 수 없어 어쩌구, 하는 말 또한 이 드라마가 주고자하는 메시지처럼 들렸고;)

3> 수는, 영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왕비서의 좋게 말해서 서툰사랑, 정확히는 영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비틀어진 사랑을 이해했던 건가, 라는 시덥잖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저 이쁜 영이가 고운 입으로 사랑을 속삭이고 신뢰를 듬뿍 주는데.. 어느 누가.. 등등의;

4> 마지막회까지, 12~15회까지 리뷰를 안썼으니.. 그 것까지 합쳐서, 다시한번... 영이 미모찬양! 아.. 진짜 이쁘다. 너무 이쁘다. 흑흑. 이랬거나 저랬거나, 여배우 얼빠로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영이가 촛점을 맞춰 세상을 바라보고, 수를 바라볼 때, 더 이뻤다. 정말 이뻤다. 반짝반짝. ...요런 미모찬양도 오늘이 끝이려니; (ㅎ)

5> 참으로 뜬금없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보고싶어지는 요즘, 이다. 유플에는 없어서 외장하드 속에 고이 간직한 녀석을 꺼내서 봐야겠는데, 고건 또 조금 귀찮아서. (하아;)

6> 그런데, 이리 뜯어보고 저리 고쳐봐도 내 눈에는 몽환적이긴 하지만 완벽하게 꽉 닫힌 해피엔딩인데, 엔딩논란은 대체 왜.. 스러워 갸우뚱 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일년 후의 연출이 꽤 독특하면서 괜찮았다. 영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저런 각도에서도 살아남는 영이의 미모에 새삼 감탄하며..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떠나간 빈 자리는 대략 3주간 매우 허전할 것 같다. 아니, 당장 오늘부터. <천명> 전까지는 수목은 당분간 쉴 예정인지라. 월화는 현재 보는 드라마 두편에 두편을 더 얹을 생각이라 정신이 없는데.. 수목에 월화 드라마를 조금조금 봐야할까, 책을 읽을까, 일찍 잘까.. 등등의 별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7> 아.. 무철이 얘기 깜박. 무철이 이눔시키ㅠㅠㅠㅠㅠ 누이 선의 말을 빌리자면 개같이 살다 개같이 갔다고. 그리고 내 눈엔 폼생폼사 무철이,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다 죽었구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그 더러운 세계에 발딛지 못하게 한 것에 앙심품은 어린눔이 시키, 살인자 안만들고 죽은 건, 왠지 16회차 내내 보고 느꼈던, 무철이 다웠다고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