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담/국내 드라마 시청담

애인 있어요 29,30회) 그녀가 돌아왔다

도희(dh) 2015. 12. 15. 06:36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도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애인 있어요 30회 -

 

 


 

 

 

 

미안하지만, 

난 너를 사랑한 기억이 없어.

 

- 애인 있어요 29회 / 도해강 -

 

도해강의 기억이 돌아왔다. 은솔을 죽이고도 자기는 죗값을 다 치뤘다며 뻔뻔하게 자신의 죄로 인해 자식을 가슴에 뭍은 어미인 그녀의 앞에 나타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분노하는 그 인간으로 인해, 기억을 잃었어도 가슴에서는 지우지 못한 은솔에 대한 죄책감과 고통이 되살아나며, 도해강의 기억이 돌아왔다. 돌아온 기억을 끌어안고 해강이 향한 곳은 과거의 시댁, 최진언의 본가였고, 그 곳에서 전 시아버지 최만호에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을 약속받게 된다. 그렇게, 4년 전 사고 전날까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노라 말하는 그녀가, 돌아왔다. 

 

해강은 중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4년 전의 그 사고 바로 전날의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노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차갑고 냉정한 모습으로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초토화 시키고 있었고, 다시 시작된 그녀와의 사랑에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는 진언을 향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쏟아냈다. 4년 전 그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돌려주며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게 된다. 그녀를 떠보는 이들에게 짙은 냉기를 풍기며 천년제약에 대한 욕망과 최진언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았다.

 

본방 당시 초반부를 놓친 나는 당연히 도해강의 말을 믿었었다. 그러나, 다시보기를 통해 초반부를 보고 그렇게 복습을 하며, 도해강은 지난 4년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억이 돌아온 순간부터 최진언의 본가에 들어서는 도해강의 표정과 연출이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에 따라 보니 그저 통쾌하기만 하던 도해강의 행동이 어딘가 어긋났음이 느껴졌다. 4년 전에서 시간이 멈춘 도해강이라면 최진언을 향해 그런 분노와 증오를 뿜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없는 세상에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중국으로 떠나기로 한 것도, 그녀가 공항으로 향하던 차를 돌린 것도, 모두 최진언 때문이었으니까. 또한, 독고용기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쉬웠다. 과거, 독고자매의 엄마인 규남이 해강에게 용기의 존재를 차마 말하지 못한 채 숨긴 이유와 묘하게 어긋났다고 해야할까. 

 

은솔을 잃은 상처가 되살아나며 그 고통이 극대화되는 순간, 해강은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수줍게 사랑을 고백한 남자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이별해야만 했는지. 자신을 향해 따뜻한 눈빛으로 사랑을 말하는 그 남자가 헤어지기 전 얼마의 시간동안 얼마나 차가운 눈빛으로 증오를 말했는지. 그리고 자신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지치고 수치스러웠는지. 그 혼란 속에서 해강은 결심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되돌리고, 내가 저지른 악들을 씻어내고, 내 동생을 지키고, 그리고, 그 남자와 헤어지기로. 그 것을 위해서 호랑이굴로 들어가야만 했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위로해줬던 그 따뜻했던 지난 4년의 기억을 잠시 잊은 척 하기로. 그렇게, 버리려고 했다.

 

 

버리러 온거에요. 전부 버리러.

그러니까 백석 변호사님도 절 버려주길 바래요. 

그럼, 버릴까요?

 

- 애인 있어요 29회 / 도해강 -

 

 

 

나야, 석아. 

나라구. 온기라구.

 

나 좀 도와줘,

석아. 

 

이제라도 내가 내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내가 저지른 악들을 하나씩 씻어나갈 수 있도록, 

불쌍한 내 동생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남자랑 이별할 수 있도록,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 석아.

 

- 애인 있어요 30회 / 도해강 -

 

그러나, 도해강은 버릴 수가 없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득한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등대가 되어준 지난 4년의 시간, 그 속에서 자신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며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준 등대는, 그녀가 다시 4년의 시간을 잃었노라며 차갑고 지독하게 굴어도 여전히 같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등대가 되어 그녀를 비춰주고 있었다. 모든 기억을 잃었노라며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 뿐이라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시작하자며, 그렇게 친구가 되자며, 차근차근 그녀의 마음에 온기를 채워주겠노라며, 나는 할 수 있노라며, 너는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겠노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해강은 버릴 수가 없었다. 버려지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등대가 비춰주는 불빛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앞에 놓여진 아득하고 막막한 현실을 헤쳐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도움을 청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그였다.

 

 

자신이 온기임을 밝히며 석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해강.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석이. 그리고, 그런 석이를 바라보며 마주 고개를 끄덕이는 해강. 그렇게 슬픈듯 기쁜듯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의 지난 4년이 얼마나 서로에게 소중한지, 느껴졌다. 두 사람의 관계와 그 속에서 형성된 감정을 그저 남녀의 관계와 감정따위로 단정짓기에 두 사람의 4년은 너무나 따뜻하고 깊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것. 해강이 지난 4년의 기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 속에 온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석이는 그녀를 잃지 않은 것에 대한 기쁨과 그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고, 그녀의 결심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 피어난 온기를 애써 식혀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 위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앞으로도 참 많이 고단하고 버거울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이 무너지지 않았을런지. 

 

4년의 기억을 잃고 가슴 속의 온기를 지우고 모든 것을 버리려는 해강 앞에서 보여준 석이의 말과 행동들. 그 눈빛과 눈물. 아득하고 막연한 길 위에서 해강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가 석이여야만 했던 이유, 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또한, 지난 4년간 해강에게 석이가 어떤 존재인지, 그러니까 해강이 자신에게 있어서 석이의 존재를 등대라 표현한 것에 대한 의미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석이는 다시 해강의 등대가 되어주기로 한다. 이제는 그녀가 가야할 길을 명확히 알기에, 그가 비춰주는 불빛은 제대로된 방향을 향할 것이다. 

 

 

백석    밥맛 도해강씨, 

당신도 내가 낯설겠지만 나도 당신이 무지하게 낯설어요.

동생이 날 일부러 카페로 불렀나봐요. 

내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하려고, 

간단히 버리게 하려고.

 

도해강    그래서, 버렸나요?

 

백석    버리고 있는 중이에요. 

얘들 다 마시고 얘들하고 같이 쓰레기통에 버리려고요.

 

도해강    내 물건도 아직 못버려놓고 잘도 버리겠네요. 

하나도 안버린 것 같은데. 그대론거 같은데. 

왜 못버리고. 버리라고 하면 버려야 될거 아니에요. 

저딴게 뭐라고 여태...

 

백석    버렸는데, 저 자리 주인이 돌아오고 싶어하면 

그땐 어떡해요?

 

도해강    안질려요, 나한테? 만정이 떨어져야 정상이 아닌가?

 

백석    4년 전에 이미 질리고, 정 떨어지고, 다 했어요. 

이미 겪었어요. 난 도해강 씨. 

그때도 무지 재수없고 밥맛이었어요. 

에휴, 백세시대에 4년이 뭐라고. 까짓거 다시 바꿔보지요, 뭐. 

그래도 이번엔 노하우가 있으니까. 나만의 메뉴얼도 있고. 

처음보단 훨씬 수월할 것 같은데, 난.

 

- 애인 있어요 30회 -

 

 

- 온기 -

 

##. 그리고-.

 

#1. 위의 장면은 진리와 카페에서. 뒤늦게 발견한건데, 해강의 옆, 벽에 써있는 문구, 차 한잔의 '온기'로 사랑을 나누다. 이 문구가 어쩐지 그녀는 '온기'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시절 했던 말들을 툭툭- 내뱉으며 그녀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도 재미있었음. 

 

#2. 해강이 가장 먼저 자신이 '온기'임을 밝히며 지난 4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있음을 알린 존재는 석.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원래의 그녀답지 않은 과장이 있음을 깨닫게 된 진언. 모든 기억을 잃었을 적에도, 4년의 기억을 잃었다고 우기는 현재도, 가장 먼저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최진언이었다. 역시, 남주라서 그런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역시, 최진언이 싫다. 상대의 감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밀어붙히며 우겨대는 그가 늘 불편했고, 불쾌했는데, 이번에는 역겹기까지 하더라. 그 와중에 해강이는 그렇게 밀어붙히는 감정에 다소 흔들리는 듯 했지만. (...아이고, 해강아;)

 

#3.그런데 말이다. 기억을 잃기 전의 해강이 그 오랜 시간동안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안했다고 하지만, 해강은 마지막 순간 진언에게 '사랑'을 말했었다.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도 '사랑할꺼야'라고. 아마, 진언은 그때 해강의 애달픈 진심, 그 감정을 외면했으리라. 만약, 그 말을 귀담아 듣고 마음으로 기억했다면, 4년 전에서 시간이 멈췄다며 그녀가 쏟아내는 증오에 상처가 아닌 위화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4년 전 그녀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리 없을테니까. 그녀의 과장된 행동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어긋난 감정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확신을 가져야했던 것이 아닐런지. 근데, 그건 그것대로 싫었을 것도 같다. 호텔씬에서 무조건 들이대는 그를 보며 역겨움을 느낀 걸 보면. 어쨌든 위화감을 느끼며 들이댈 그가 벌써부터 거북한 걸 보면.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고, 최진언은 그냥 최진언이라 싫은가보다...나는.(...) 그래도, 도해강은 최진언이 좋단다. 그래도 사랑을 한단다, 도해강은.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밀어붙히는 그에게 흔들린단다, 도해강은. 어쩌랴,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4. 해강이가 진언을 향해 쏟아낸 독설들은 백프로 진실은 아니겠으나, 백프로 거짓도 아닐 것이다. 그를 향한 증오와 분노, 그를 향한 과거의 사랑, 그를 향한 현재의 사랑, 그 수많은 감정들이 그 마음 속에 쏟아지고 뒤섞이며 주체하지를 못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왜 내가 너를 사랑하게 내버려뒀니, 라는 그 날의 분노는 진심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때, 안대 벗겼을 때 눈가가 촉촉했던 것도 그렇고. 냉기로 가득했던 그 시절엔 그 분노와 증오마저 삭히며, 의지와 상관없이 끝나버린 사랑에 집착하고 매달렸다면, 온기로 가득한 현재는 그 분노와 증오를 감추지 않은 채, 이제는 다시 시작된 사랑을 자신의 의지로 끝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강이 진언이 했던 말을 되돌려줄 때마다 내 속이 다 후련하더라.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았음. 물론, 해강은 그를 향한 비수가 고스란히 그녀의 심장에 꽂혀 상처를 입는 듯 했지만. 

 

#5. 기억이 돌아왔어도 지금의 해강은 그 시절의 해강은 아닌지라, 위악을 떠는 그녀가 안쓰러웠고, 그녀의 독설이 츤츤거리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용기를 향한 독설은 언니로서의 진심어린 조언으로 들렸고, 설리를 향한 독설은 사랑으로 인해 망가진 그녀의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최진언의 자리를 뺏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하고자 하는 일에서 최진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런지. 덜 상처입게 만들고 싶었을테고, 결국은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에서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버리는 조건으로 놓아버린 그의 삶을, 4년 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듯 했다. 돌려주고자 하는 듯 했다. 4년 전까지 그녀가 지켜줬던 그의 삶을. 결국, 해강에게 진언은 함께 길을 걷는 존재가 아닌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인걸까,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 그 시간 속에서 저질렀던 악들을 진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그녀가 해야할 일들은 그녀가 저지른 악들과 마주하고 그렇게 하나 하나 씻어내며 인생을 바로잡는 일일테니까.

 

#6. 그러고보니 4년 전, 해강은 아버지 독고지훈의 특허권을 봤고, 최만호와 민태석의 대화를 엿듣던 중 아버지 독고지훈의 죽음에 얽힌 사건의 전말도 듣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보고 들었다면, 기억이 돌아온 현재, 그 조각들을 하나 둘 맞추며 아직 자신은 모르는 '진실'을 찾게되겠지. 도해강의 머리와 온기의 심장을 가진, 완전체가 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며... 

 

#7. 우주를 바라보는 해강의 눈빛과 눈물이 너무 아프더라. (ㅠ) 그리고, 단순한 용기와 복잡한 온기의 케미가 정말 좋았다. 

 

#8. 내가 이 드라마의 로맨스 부분에 어느정도라도 공감을 했더라면 엄청나게 덕질을 했을 것 같다. 내내 불편하고 불쾌함에도 스토리 전개가 궁금해서 띄엄띄엄 꾸역꾸역 보던 중, 오랜 만에 마음에 드는 회차 나왔다고 별별짓을 다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제 20회 남았다.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인생을 바로잡고 악들을 씻고 용기를 지켜주고 진언과 이별을 한 도해강이, 독고온기로서 동생 용기와 조카 우주와 엄마 규남과 따뜻하게 살았으면 한다. 온기있고 용기있게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남자랑 이별할 수 있도록...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

 

- 애인 있어요 30회 / 도해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