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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 거짓과 진실, 불신과 믿음 사이에서..

도희(dh) 2013. 2. 19. 06:30

살고싶어 하는 내가 죽고싶어 하는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분명 너무도 다른데 왜 였을까. 순간, 나는 그 여자가 나같았다.
처음으로 그 여자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오수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 -

 

영이가 과연 78억이나 되는 돈을 쉽게 줄까, 만약.. 영이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무철의 한마디. 그 순간 들려온 자신에게 온 목적이 돈이라면 지금 지하철이 오면 자신의 등을 밀어버리라는, 영이의 말은..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영이로 인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 수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달콤한 유혹에 잠시 흔들리던 수는, 스스로 승강장으로 나아가는, 그렇게 죽고싶어 하는 그녀에게서 살고싶어 하는 자신을 보게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 여자, 영이 궁금해진 수는 죽고싶어 하는 그녀에게 오빠가 되어 훈계하고 오빠가 되어 사과했다. 미안했다고. 내가 있어도 넌 어쩌면 별 수 없이 눈이 아팠겠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오빠가 너무 늦게와서. 이 말은, 따뜻한 오빠 코스프레를 위한 거짓이면서 내가 위장한, 내가 알고있던, 영이의 진짜 오빠 수(守)가 지켜주고 싶어했던 소중하고 그리운 동생 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라는 마음으로  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영이를 왜 죽이지 않았냐는 무철의 말에 그럴싸한 대답으로 둘러댔지만, 그 것은 그 순간의 판단이 아닌 그 순간이 흐른 후의 변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모든 걸 꿰뚫어보듯 그를 바라보며 나를 죽여주면 조건없이 내 유산을 너에게 주겠노라며, 이제는 오빠가 아닌 살인청부업자로 자신을 대하는 영이와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녀는 눈이 멀었을까, 말괄량이에 귀여운 어리광쟁이었던 아이는 어째서 온 힘을 다해 서슬퍼런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걸까, 왜 그녀는 그렇게까지 죽고싶어 하는 것일까. 사실은 아니라고 그 속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단은 풀린 실명의 의문. 왕비서와의 심도깊은(...) 대화를 통해 알게된 불신의 이유, 그리고, 우연히 들어서게된 비밀의 방에서 보게된 비디오를 통해 지금은 없는 그녀의 밝은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잃게되는 과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싸가지 없는 애 등쳐먹는 게 낫다며, 이 집안에서 믿을 사람이 없기에 영이가 수 자신에게 넘어올 확률이 높다며, 말할 때마다 어미의 끝에 힘을 주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며, 어떤 말에 영이가 자극을 받을까, 어떤 말을 좋아할까, 이를 앙 다물고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던 수의... 나를 믿고 닫힌 니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작정이라는 말이, 어쩐지 끊임없이 굴린 잔머리의 끝에서 나온 거짓과 진실의 모호한 경계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니까 걱정되고, 걱정하다 보니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보고싶고, 그렇게 좋아하는 감정이 시작된다는 진락(이꽃)의 말을 빌리자면 .. 오수는 이미, 시작된 것일테니까. 자신도 모를 어떤 감정이. 하지만, 남매 코스프레를 계속 해야만하는 그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행동과 말들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른 채 한참을 헤메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니네 정안인들은 보이지않는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하지?
아니. 우린 눈이 없는대신 귀가 있어.
니가 말할 때마다 어미의 끝이 너무 힘이 들어간게 난 걸려.
니 생각을 강요받는 느낌이거든.
이를 앙다무는 습관이 있지, 넌. 생각이 많다는 증거지.
내가 어떤 말에 자극받을까, 어떤 말을 좋아할까, 끊임없이 잔머리 굴리지, 넌.

- 오영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 -

 

왕비서에겐 까탈스러웠지만 밝은 아이여서 친구도 잘 사귀었던 영이는, 눈이 안보이고 나서 모든게 변했다고 한다. 영이가 부잣집 애니까 친구들이 대놓고 왕따는 안시켜도, 영이가 아끼는 인형을 가져가고, 더 커서는 돈, 가방, 반지, 목걸이를 가져갔다고 한다. 진심없이 눈먼 자신의 곁에 머무는 이들에겐 그에 합당한 댓가가 있어야 했다, 라는 걸 어려서부터 알게되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녀에게 완벽한 부정을 할 수 없는 건.. 영이의 유일한 친구인 미라,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동네오빠이자 (아마도) 집과 복지관 외에 영이가 갈 수 있는 제 3의 장소인 카페사장인 중태마저 왕비서가 건넨 돈으로 인해 자신의 곁에서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영이니까. 그것이 곁에 있는 모든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듯 싶었다. 정안인인 그들은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하지만 그녀에겐 눈이 없는대신 귀가 있으니까..

6살 어린 나이에 엄마와 오빠가 떠난 집에서 외롭고 쓸쓸해 울다지쳐 실명(왕비서의 말로는 실명원인이 뇌종양이라고;)을 하게된 가여운 영이를 야단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눈이 보일 때는 하루아침에 엄마와 오빠를 잃은 가여운 것이라고 야단칠 수가 없었고, 실명한 후에는 어린 나이에 앞이 안보이는 가여운 것이라고 역시 야단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온 영이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런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을 야단맞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처럼 굽신굽신, 오냐오냐, 조심조심 대하기보다 날선 감정에 날선 감정으로 대하는 수에게 더 서슬퍼런 날을 세우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좋아. 써. 유언장. 죽여줄게. 넌 계속 날 의심하고 시험하지?
내가 아무리 널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온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널 위해서라고 말을 해도 넌 끊임없이 내가 너한테 돈때문에 왔다고 믿지?

그래.

그럼, 유언장을 쓰고나서 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겠네. 그지?

그지.

- 수 & 영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아프고 지쳐버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너를 사랑한다고, 내가 온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널 위해서라고 말을 하는 오빠가 돈때문에 왔다고 믿으며 그를 의심하고 시험하는 현재의 영이는, 사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죽는데도 그런 거창한 이유없이, 아침에 눈을 떴으니까 살고, 숨쉬니까 사는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떴지만 여전한 암흑 속에서, 숨을 쉬는 곳곳에 돈냄새를 맡고 몰려온 이들에 지쳐 죽고싶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천만번 죽고싶어도 살아지만 사는게 인생이기에 함부러 말해선 안되는 죽고싶다는 말을, 자꾸만 하고 또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죽고싶다는 그녀의 말. 그 것은 거짓은 분명 아니겠으나 완벽한 진실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 그리고 결국 돈을 얻기위해 나를 죽이라며 오수를 자극하는 영이의 모습은 어쩐지, 내가 완전히 믿지못하는 너의 진심을 믿게해달라는 투정처럼 보였고, 그것은 또 어쩐지 들어가지 말라던 엄마의 비밀방에 들어가서 나를 좀 혼내달라고 울며 떼쓰던 어린 영이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뭐랄까, 수와 날선 감정을 대립하는 순간의, 영이는 어쩐지 즐거워보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지만, 영이는 자신의 의심과 시험이 잘못된 것이길, 보이지않는 눈 대신 들리는 귀를 통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틀린 것이기를, 그가 하는 말들이 그의 진심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를 믿지않는 마음과 그를 믿고싶은 마음으로 그와 함께하는 순간, 낯선 즐거움의 설레임으로 방심하게 되며 잃어버렸던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는 것도 같았고.


제 새인생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어요.
영이가 절 왕비서가 아닌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손을 꼭 잡았던 그 순간,
전 분명 보모가 아닌 엄마였어요. 이 집에와서 처음으로 피아노의 주인이 부럽지 않았죠.

- 왕비서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 -

 

왕비서에게 영이는, 삶의 이유였던 것 같다. 자신에게 까탈스럽던 영이가 눈이 멀게된 날,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왕비서가 아닌 아줌마, 라고 부르던 그 순간 그녀는 영이에게 보모가 아닌 엄마, 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빛 속에서 행복한 영이는 자신의 것이 아니지만 어둠 속에서 상처받고 아프고 힘든 영이는 내것이라는 듯, 영이가 앞을 보지못하는 것을 핑계삼아, 세상은 위험하다며 집구석에 틀어박혀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붙박이 가구처럼 쳐박혀 살아가도록,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그녀를 무능력하게 만들었다.

어둠에 갇힌 영이의 세상은 왕비서로 인해 설계되었고 영이는 왕비서의 설계대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그녀가 깔아놓은 길을 따라 걷고있을 뿐이었다. 집에는 왕비서가 있고 집 밖에는 왕비서가 건넨 돈으로 만든 친구 미라가 영이의 곁을 지켰고, 집과 복지관 외의 제 3의 장소인 중태의 카페또한 왕비서가 건넨 돈으로 존재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영이의 약혼자 명호 또한 사장의 자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왕비서에 의해 영의 곁에 존재하며 자신의 야망을 충족시키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영이를 통해 삶의 이유를 찾던 왕비서는 영이가 자신에게 완전히 기대지 않는 이유인 영이의 아버지인 오회장의 죽음을 방관했고, 이제, 갑작스레 나타나 영이를 이끌고 자신이 설계한 세상 밖으로 끌고나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가 그저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난폭한 로맨스'의 이모님인 양선희와 같이 소름돋는 짓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세상에서 영이를 지키기위한 그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기대된다. 그리고, 그녀가 영이를 통해서야 겨우 삶의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아, 지금까지 내 시선에 닿은 왕비서는 저렇게 보였고, 그래서 아직까지는 무열에 대한 집착으로 못할 짓이 없었던 난로의 이모님과 비슷한 존재일 뿐이다. 소름돋아; ...

 

그리고

1) 이 드라마의 매력을 하나 더 찾았다. 고전적 분위기. 의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극의 분위기는 물론, 배우들과도 잘 어울린다. 특히, 오수 역의 조인성씨. 더불어, 배우들 비주얼 찬양은 패스하기로 했다. 찬양하다보면 손가락이 아플 것 같아서.

2) 왕비서에 대한 건, 그냥 극을 바라보며 느껴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 뭐, 내 느낌이 틀렸다면 할 수 없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아마,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끊임없이 삶의 이유를 찾을 것이고, 그 것은 수와 영, 진성이와 희선이는 물론 무철과 왕비서도 마찮가지일 듯 해서,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어떻게 그러지고 극과 어우러질지도 궁금하다. 아, 변호사와 약혼자씨도 물론. 좀 더 비중이 있는 역할이라면 영이의 친구 미라와 카페사장 중태내외도?

3) 영이와 희선의 만남. 생각보다 이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영과 희선의 만남을 통해 잠깐 잠깐 나왔던, 수의 옛 연인이자 희선의 언니인 희주의 이야기도 풀리지않을까, 싶다. 희주 역의 경수진씨, 적도 이후 단막극 두어편 출연한 건 아는데 둘 다 안봐서.. 근 일년만의 만남이 설레인다. 경수진씨도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분위기있게 이쁘심.(!)

4) 영이의 숙제. 아, 본문에 글 쓸때 숙제부분 까맣게 잊고있었다. (긁적) 아무튼, 영이의 숙제에 대한 답은.. 왠지 솜사탕이 아닐까, 라고 생각 중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티져에 나온 솜사탕신이 너무 이뻐서....(어이;;;)

5) 경음악 좋다. (보컬곡도 점점 좋아지는 과정) 이 드라마 또한, 음악이 연기를 한다. 정말, 좋다ㅠ 지난 수목에 이어 이번 수목까지 음악까지 연기하며 극을 살리는 걸 보게되니 너무 기쁘다. 눈은 물론 귀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월화는 대체 왜ㅠㅠ (월화는 태백이 시청 중;)